한전법 개정 별안간 무산, 채권시장 “레고랜드 사태 재발” 발칵…산업부·기재부 ‘청천벽력’

세종=박소정 기자 2022. 12. 8.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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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법 개정안, 무난 통과 예상됐으나 본회의 ‘부결’
산업부 “한전 적자보전 자금운용 방안 제한적 골치”
기재부 “고물가, 급격인상 곤란한데”…당혹스런 정부
시장 “‘한전 디폴트’ 우려…'레고랜드’처럼 출렁일까”
청천벽력입니다. 한전 ‘디폴트’(채무불이행) 나면 전기 공급 끊기는 겁니다. 하필 또 연말이고 겨울인데…. (한전법 개정안) 재발의 한대도 국회까지 최소 3개월. 그 사이 한전이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지 또 골치입니다.
정부 관계자의 말

한국전력공사의 회사채 발행 한도를 5배 확대하는 한국전력공사법(한전법) 개정안이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좌절됐다. 여야 합의로 본회의에 회부됐던 터라 무난한 통과가 예상됐던 만큼, 부결 소식을 맞닥뜨린 정부는 ‘청천벽력’이라는 분위기다.

정부는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해당 법안을 재발의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다시 본회의 상정까지 현실적으로 최소 3개월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그사이 한전이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가 당국의 주요 고민거리로 부상할 전망이다. 고물가에 겨울철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는 이 시기, 전기요금을 급격히 인상할 수 있을지도 당국의 우려 지점이다.

시장도 이번 사태를 긴장하며 바라보는 분위기다. 이미 ‘레고랜드 디폴트 사태’로 한차례 ‘패닉’을 경험했던 우리 자금시장이, 이번엔 ‘한전 디폴트 사태’와 관련한 불안으로 출렁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다.

서울의 한 다세대주택 전기 계량기 모습. /뉴스1

국회는 8일 본회의를 열고 한전법 일부 개정안에 대해 재석 의원 203명 중 찬성 89명, 반대 61명, 기권 53명으로 부결했다. 현행 한전법은 한전의 사채발행(신규+연장) 한도를 공사의 자본금과 적립금을 합한 금액의 2배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개정안은 해당 한도를 ‘5배’로 상향하도록 하는 내용과 함께, 긴급할 경우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승인을 받고 최대 6배 범위에서 발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번 한전법 개정안 통과가 필요했던 이유는, 순차적인 전기요금 인상을 위해서였다. 한전의 대규모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간 억눌러온 전기요금을 인상하는 것이 근본적 해결책이 맞지만, 고물가 등 현재 여건을 고려하면 급격한 인상이 어려운 실정이다. 순차적 인상을 위한 시간을 벌 방법이 필요했고, 사채 발행 한도를 확대하는 것이 그 대안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반대 토론으로 상당수 민주당 의원들이 반대나 기권을 택했고, 결국 부결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양이 의원은 “전기는 요금에 원가 반영이 안 되면 결국 세금으로 메우는 것”이라며 “올해 예상 적자인 30조원을 메우기 위해 대략 ㎾h(킬로와트시)당 60원을 올려야 한다. 그 이후에도 적자를 줄일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한전의 사채 발행 한도를 확대하는 법안 개정이 부결되면서, 한전의 채무불이행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에선 당혹스럽다는 분위기다. 한 산업부 관계자는 “굉장히 실망스럽고, 우려가 크다”며 “어찌 됐든 최대한 빨리 발의를 다시 해야 하지만, 물리적으로 한전 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자금을 운용할 방법이 굉장히 제한적이다. 그것이 가장 큰 고민 지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0회 국회(정기회) 제14차 본회의에서 한국전력공사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찬성 89인, 반대 61인 기권 53인으로 부결되고 있다. /뉴스1

현재로선 전기요금 인상밖에는 답이 없다. 문제는 인상 폭이다. 정부 관계자는 “당장 전기요금 인상이 불 보듯 뻔한데, 하필 수요가 급증하는 겨울철에 지나친 전기요금 인상은 국민에 큰 영향을 미칠 것 아니냐”라며 “이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올리라는 것은 굉장히 정치적인 행태다. 대체 누구를 위한 결정이냐”라고 했다.

한국가스공사도 비슷한 사안을 안고 있다. 역시나 가스공사의 사채발행 한도를 상향하는 한국가스공사법 개정안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위에 올라 있는 상태다. 같은 논리로 이 역시 무산된다면, 한전채와 가스공사채 발행 모두 위기를 맞게 되는 셈이다. 정부 관계자는 “상상하기도 싫은 최악의 상황이지만, 한전 디폴트 사태가 현실화하면 전기 공급은 못 하는 것”이라고 했다.

시장에서도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제2의 레고랜드 사태’처럼 비화할 수 있다는 걱정이다. 한 채권시장 관계자는 “최악의 경우는 한전이 부도를 맞는 것인데, 물론 그것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작지만, 시장은 그런 뉴스가 나오거나 우려만 있어도 발작을 일으키게 된다”며 “시장에 좋을지, 나쁠지 말하기가 어렵다. 내일 시장 상황을 지켜보려 한다”고 말했다.

한편 한전은 국제 연료비 폭등에도 불구하고 수년간 요금 인상을 억눌러와, 유례없는 적자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3분기까지 누적 영업손실은 22조원에 육박하며, 연말에는 그 적자 규모가 3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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