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 금융안정 지렛대냐, 금융자본 지배도구냐···BIS의 진짜 얼굴은?

최수문기자 기자 입력 2022. 12. 8.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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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젤탑(아담 레보어 지음, 더늠 펴냄)
가장 오래된 국제금융기구 BIS
각국 중앙銀 통화 결제·관리 맡아
막대한 권한에도 운영방식 '베일'
美·유럽 소수 국가가 정책 좌지우지
"업무공개 확대·민주적 통제 필요"
스위스 바젤에 위치한 BIS 본부 모습.
BIS를 만든 네 주역이 1927년 뉴욕에서 모였다. 왼쪽부터 얄마르 샤흐트 독일 제국은행장, 벤자민 스트롱 미국 뉴욕 연준 총재, 몬태규 노먼 잉글랜드은행장, 샤를 리스트 프랑스은행장.
1930년 4월 BIS의 첫 이사회가 진행중이다.
[서울경제]

국제 금융기구로 ‘국제결제은행(BIS)’이라는 곳이 있다. 가장 오래된 국제 금융기구데 현재 스위스 바젤에 본부를 두고 있다. BIS와 관련된 것으로 ‘BIS 자기자본비율’이라는 기준이 있다. 건전성을 담보하기 위해 은행들이 위험자산의 8% 이상 자기자본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이 규제가 금융위기를 초래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의 은행들이 이 규정을 1990년대 초부터 지켜야 했는데 이것이 주변국들의 유동성 축소를 불러왔고 결국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로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신간 ‘바젤탑-국제결제은행의 역사, 금융으로 쌓은 바벨탑(원제 Tower of Basel)’은 이런 BIS의 비밀을 파헤친 책이다. 저자인 아담 레보어는 영국 출신의 작가 겸 저널리스트로, 파이낸셜타임스·이코노미스트 등에 기고했고 여러 권의 논픽션 작품도 썼다. 저자는 “‘정치적 중립’을 구호로 기술관료적인 전문가주의와 배타적인 비밀주의를 내세운 BIS가 글로벌 금융을 지배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업무 공개를 늘려야 하고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책 제목인 바젤탑은 기독교 성서에 나오는 ‘바벨탑’을 패러디한 것이다. 하늘에 도전하려는 의지로 세운 바벨탑이 무너졌듯이 여기 ‘바젤탑’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암시다. BIS 본부가 있는 곳이 바젤이고 또 본부 건물이 18층 탑 모양이어서 ‘바젤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국제결제은행(BIS)는 이름 그대로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를 결제하고 관리하는 업무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은행들의 은행이라는 취지다. 자기자본비율 등의 규제도 이런 과정에서 나왔다. 국경을 넘나드는 자금을 결제하면서 막대한 수수료를 챙긴다. 다만 정확히 어떻게 운영되고 세부적인 일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한국은행은 1997년 회원으로 가입됐고 현재 BIS 회원 중앙은행은 63곳이다.

BIS가 처음 설립된 것은 1930년이다. 당시 제1차 세계대전 패전국 독일과 승전국인 영국·프랑스 등 연합국 사이에 전쟁 배상금 문제가 이슈였고 독일이 연합국에 배상금을 지급하는 통로로 만든 것이 BIS다. 당시 독일 제국은행장 얄마르 샤흐트와 영국 잉글랜드은행장 몬태규 노먼이 구상했다.

다만 독일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배상금 지급을 거부했고 이에 따라 국제결제은행의 존립근거도 사라졌다. 모든 조직이 그렇듯이 스스로 존재이유를 만들어낸다. BIS는 여러 중앙은행이 보유한 금을 예치 받아 그 신용으로 자금의 결제를 하는 일을 시작했다. 유럽 금융업자들의 사교 모임이자 정보 교류 무대의 역할도 하게 된다.

독일 때문에 시작된 BIS는 독일 때문에 곤혹을 당한다.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 전쟁수행을 통해 자금을 끌어들이는 역할에 BIS가 이용된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금융가들은 독일에서 사업을 하면서 역시 BIS를 활용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BIS는 난관에 봉착한다. 전후 부흥과정에서 국제통화기금(IMF)와 세계은행(WB)가 새로 세워지면서 기존 BIS의 필요성에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BIS가 찾은 역할은 전후 유럽의 부흥을 돕는 대부자였다. 그리고 유럽통합 과정에서도 금융가들을 모으는데 한몫을 한다.

BIS가 각국 중앙은행의 모임이라는 원래의 역할은 계속 이어졌다. 각국 중앙은행의 모임이라는 것은 결국 중앙은행장들의 모임이라는 이야기고 이는 중앙은행을 지배하는 금융가들의 모임에 다름이 아니었다.

저자는 “BIS의 기능과 본질은 20세기 들어 성장하기 시작한 금융자본의 이해와 뗄 수없는 관계에 놓여 있다”고 주장한다. 20세기 초는 자본일반의 지배에서 금융자본의 지배로 넘어가는 문턱에 해당한다. 이런 금융자본의 이해와 운명을 같이하는 초국적 금융자본 계급이 탄행했다. “이 계급의 이익에 적합하도록 설계된 조직이 BIS”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BIS는 “민간기구로서, 은행을 감독하고 자기자본을 규제하면서 지렛대의 역할로 글로벌 금융안정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주장한다. 또 BIS의 규제는 강제력이 없고 또 개별 국가의 금융정책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도 없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저자는 “BIS는 내부적으로 중앙은행들 사이에서 위계를 철저하게 세우면서도 동시에 초국적 금융자본 계급에 유리한 방향으로 국가의 금융정책들이 수립될 수 있도록 조율해왔다”고 말한다. 실제로는 미국과 유럽의 소수 국가들이 BIS 결정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개별 은행들이 BIS 규제를 지키지 않는 것은 이런 선진국 금융시스템에서 퇴출된다는 것과 다름이 아니다.

BIS의 주요 무기는 배타적인 비밀주의와 함께 기술관료적인 전문가주의라는 것이 저자의 평가다. 무엇을 하는지 외부에서는 모르기 때문에 비판을 하기도 힘들다. BIS가 이제껏 견제에서 벗어난 이유다. 저자는 “금융을 이해하려면 중앙은행을 알아야 하고 중앙은행을 이해하려면 BIS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수문기자 chsm@sedaily.com, 사진제공=더늠

최수문기자 기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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