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사태 보름 넘기는데···정부는 “업무복귀 먼저”만 반복

송진식 기자 2022. 12. 8.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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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호 경제부총리,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8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관련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을 마친 뒤 브리핑실을 나서고 있다. 성동훈 기자

화물연대 총파업이 보름을 넘기며 지속되는 동안 정부가 취해온 태도는 “업무복귀(파업철회) 먼저”라는 여섯글자로 압축된다. 강경대응 일변도에 대한 우려에도, 산업계 생산 차질 등 피해가 확산되는데 따른 대책을 묻는 질문에도 정부는 앵무새처럼 이 여섯글자를 반복했다.

정부는 화물연대와 대화나 타협을 할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다. 파업을 ‘불법행위’로만 규정해 인식했고, ‘법과 원칙’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화물연대를 처벌하고 압박하는데만 몰두했다. 상황에 따라 ‘말뒤집기’를 하거나 필요에 맞게 원칙을 훼손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파업을 북한의 핵 위협에 비유하는 등 노동계에 대한 ‘색깔론’까지 꺼내들며 강경대응을 주도하고 있는 터라 화물연대 파업사태가 원만하게 해결될 가능성이 현재로선 ‘제로(0)’에 가깝다.

■정권 바뀐 뒤 180도 달라진 정부

문제의 발단인 ‘안전운임제’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취임 직후 국정과제로 도입을 약속했고,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3년간 한시도입하기로 한 제도다. 8일 국토교통부가 2018년 4월 배포한 안전운임제 도입 보도자료를 보면 당시 정부는 “화물차 운임은 운송업체 간 과당 경쟁과 화주의 우월적 지위로 인해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칠 정도로 낮은 수준”이라며 “안전운임 도입을 통해 화물시장의 근로여건이 향상되고, 낮은 운임을 만회하기 위한 과로·과적·과속운전 관행이 개선되는 등 안전한 도로교통의 기반이 마련됐다”고 밝혔다.

윤 정부 출범 후 정부 입장은 180도 달라졌다. 파업 첫날인 지난달 24일 정부는 담화문을 통해 “안전운임제는 교통안전 개선을 위해 도입된 제도”라며 “제도 시행 결과 안전 개선 효과가 불분명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정부가 인정했던 화물시장의 저임금 구조나 화물노동자 근로여건 문제 등은 모두 빼고 ‘교통안전 개선용’이라고 말을 바꾼 것이다.

이같은 ‘말뒤집기’는 계속됐다. 시멘트 운송 화물차주에 대한 ‘운송개시명령’을 내리는 과정에서 문자메시지를 통한 통보가 문제가 됐다. 국토부는 처음엔 “본인동의 없으면 효력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가 다음날 “동의 없어도 효력이 있다”며 문자 통보를 강행했다.

안전운임제의 3년 연장을 놓고도 말이 오락가락한다. 파업 초기 때는 “추가 3년 연장을 해주겠다”던 정부는 파업이 길어지자 “안전운임제를 아예 폐지하는 방안도 고려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이날 국토부 백브리핑에 나선 김수상 교통물류실장은 안전운임제 폐지 여부 관련 6~7차례 계속되는 질문에도 “업무복귀가 먼저”라며 말을 돌렸다.

화물연대 파업 15일째인 8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서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선전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도로나 교량 등의 보존 및 안전문제로 도로교통법상 최대 40t으로 규정된 화물차 중량제한도 “긴급상황”이란 명목아래 48t까지 완화했다. 일부 교량 통행 시 안전 우려 등이 제기되자 국토부는 “기존에도 44t까진 허용했다”는 황당한 대답을 내놓았다. 도교법에서는 중량위반 차량 단속 시 무게 계측과정의 오차 등을 감안해 10% 범위 내에서 단속에 유연성을 두도록 하고 있는데, 국토부는 이를 중량제한완화의 근거로 든 셈이다.

■장관은 ‘노조 갈라치기’, 대통령은 ‘색깔론’

정부 관료들은 화물연대와 노동계를 향해 과격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주무부처 수장인 원희룡 장관은 초기부터 “이기적인 집단” “귀족노조”라며 화물연대를 비판하더니 지난 7일에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화물연대가 일부 노동귀족의 지배를 받고 있다”며 ‘노조 갈라치기’에 나섰다.

일방적으로 사측에 해당하는 화주(기업)만 만나고 다니는 원 장관의 ‘현장점검’도 논란이 일고 있다. 반면 노동자측에 해당하는 화물연대에 대해 원 장관은 만남은 커녕 “대화할 필요도 없다”는 입장을 유지 중이다. 정부가 노동문제에 있어 ‘갈등의 중재자’가 되기는커녕 일방적으로 사측(기업)편에 서서 문제의 책임을 화물연대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건설·정유·철강 등 사측 역시 문제해결에 나서기보단 파업으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거나 정부 뒤에서 “엄정한 처벌”만을 촉구 중이다.

정부의 대응 기조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가 작용하고 있다는게 노동계의 공통적인 분석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4일 열린 파업관련 관계장관회의에서 “화물연대 파업은 북한의 핵위협과 마찬가지”라며 엄중대응을 주문했다. 정부가 첫날부터 중앙재해대책본부를 꾸려 파업대응에 나서고, 공정거래위원회가 동원됨은 물론 공기업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까지 “화물연대에 손해배상청구를 하겠다”고 나서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초강경대응이 이어지는 배경이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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