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함께 울며 공감하는 마음이 아쉽다

이호승 기자(jbravo@mk.co.kr) 2022. 12. 8.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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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후 40여 일
유족 먼저 찾은 고위직 없어
진상규명·처벌 중요하지만
공감하는 모습 부족도 아쉬워

2022 카타르월드컵의 뜨거운 열기, 화물연대와 민주노총 파업의 혼돈. 어지러움 속에서 한 해가 지나간다. 그 속에서 10·29 이태원 참사의 아픔도 우리 기억 한편에 잠시 밀려났다. 하지만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될 일이다.

참사 발생 40여 일. 그간 무엇을 했나. 경찰 특별수사본부가 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지만, 손에 잡힐 성과물은 내놓지 못했다. 그마저도 몇몇 주요 피의자들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며 수사 차질이 염려된다.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국정조사는 어떤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안을 놓고 삐그덕대기만 할 뿐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소중한 시간만 흘려보낸다.

실체적 진실은 모호한 결론으로 대체되고, 수사의 칼끝은 꼬리만 자르고 멈추지 않을까 두렵다.

진상을 명명백백히 밝히고 책임이 있는 이들에게 책임을 지우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여기에 더해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고위 공직자들이 유가족들을 대하는 태도다.

사실 참사 이후 정부 대처 자체는 나름 발 빠르게 이뤄졌고 큰 빈틈도 찾기 힘들었다. 사고 수습과 유가족 지원, 보상 등의 업무는 삐그덕댐이 없이 원활히 돌아간 듯하다. 대통령은 애도 기간 매일 분향소를 찾아 조문을 했고, 책임자로 거론되는 고위 공직자들도 빠짐없이 애도하고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켜봐야 하겠지만 유사한 대형 참사를 막기 위한 안전대책 마련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중요한 또 다른 것을 놓치진 않았을까. 수습과 지원 못지않게 중요한 게 감성적인 위로다. 국가가 진심으로 희생자와 유가족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있단 확신을 줘야 한단 얘기다.

하지만 유족들을 먼저 찾아가 만나고 끌어안으며 위로한 고위 공직자들의 모습은 여태 보이지 않았다. 카메라와 기자들 앞에서 수도 없이 사과하고 90도로 허리를 숙이는 건 당연한 일이고 그다지 어렵지도 않다. 유가족 한 명이라도 만나 사과하고 슬픔을 나눴어야 하지 않을까.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모습은 그래서 더 아쉽다. 참사 이후 몇 차례 불거진 실언 논란은 본심이라기보단 정무적 감각 부족 탓이라고 할 수도 있다. '폼 나게 사표 던지지 못하는 것'은 진상 규명과 사태 수습이 우선이기 때문이라 이해할 수 있다. 대통령에게서 "고생 많았다"며 위로를 받는 것까지 뭐라 할 수도 없다. 하지만 나라의 재난과 안전관리 사무의 책임자라면, 그가 찾아야 할 곳은 대통령 순방·귀국길 공항에 머물러선 안 된다. 아픔을 겪는 유족들을 만나서 위로를 건넬 생각은 못 했을까.

격앙된 유가족들을 만난 관료들은 멱살을 잡히고 욕설을 듣는 봉변을 당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그들이 받아들여야 할 운명이다. 유가족 앞에서 "모든 것이 제 잘못이고 제 책임입니다"라고 무릎 꿇고 사죄했더라면 어땠을까. 설령 법적·행정적 책임이 없더라도 상대가 아파한다면, 자신이 책임자의 자리에 있다면 모든 게 자신의 잘못인 것처럼 미안해하는 게 공감의 자세다. 상대가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면 얼어붙었던 마음도 조금은 녹을 수 있다.

진정성 논란은 있을지언정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4년 세월호 참사 바로 다음날 진도 체육관을 찾아 직접 마이크를 들고 유족들과 대화했다. 이주영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은 팽목항으로 달려가 136일간 현장을 지키며 유가족들과 함께했다.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의 상황은 다르다. 이태원 참사의 사고 상황은 단기간에 종료됐고 유가족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기 때문에 만남의 자리를 갖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 하더라도 유가족들 접촉은 실무진에게 맡긴 채 정작 본인들이 먼저 다가가지 않은 고위 관료들의 성의 부족이 변명거리는 되기 힘들다.

행안부 측이 얼마 전 유가족들 일부에게 장관 면담을 제안했다고 한다. 선의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이미 늦어도 한참 늦었다.

[이호승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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