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망했다"에서 "진짜 사랑으로"... 지난하고 치열한 엄마의 삶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나는 덫에 걸린 것 같았다. 보이스피싱 같은 것에 낚여 나도 모르게 무시무시한 물건을 주문해버린 것 같았다, 20년 할부로." 영화 '헤어질 결심'의 시나리오를 쓴 정서경 작가는 첫 아이를 낳고 3주 내내 울었다고 고백한다.
"이제 난 망했다, 짧게 잡아도 20년 정도는 망한 거야. 사람이 이런 식으로 자기 행복을 망칠 수가 있구나." 임신과 출산, 그저 '한 명을 우리 가족에 더 초대하는 것' 정도로만 생각했던 일은 이전의 삶, 그러니까 오롯이 '나'에게 집중했던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창작자와 엄마, 경계에 선 이야기 담은 '돌봄과 작업'
"나는 덫에 걸린 것 같았다. 보이스피싱 같은 것에 낚여 나도 모르게 무시무시한 물건을 주문해버린 것 같았다, 20년 할부로." 영화 '헤어질 결심'의 시나리오를 쓴 정서경 작가는 첫 아이를 낳고 3주 내내 울었다고 고백한다. "이제 난 망했다, 짧게 잡아도 20년 정도는 망한 거야. 사람이 이런 식으로 자기 행복을 망칠 수가 있구나." 임신과 출산, 그저 '한 명을 우리 가족에 더 초대하는 것' 정도로만 생각했던 일은 이전의 삶, 그러니까 오롯이 '나'에게 집중했던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엄마가 된 정서경은 "그 이후로 중요하지 않은 시나리오는 쓰고 싶지 않았다. 진짜 사랑이 아닌 것은 쓰고 싶지 않았다"고 말한다. 아이에게 모든 것을 내주고 기진맥진해 어쩐지 텅 빈 것 같았던 가슴에는 사랑이 채워졌음을, 그리고 그 사랑은 또 다른 창작으로 이어졌다고 이야기한다. 영화 '아가씨'를 비롯한 이야기들은 그렇게 시작됐다.
신간 '돌봄과 작업'은 부제 그대로 일하면서도 '나'를 지키려는 열한 명의 기록으로 창작자와 엄마, 그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하는 일도, 양육의 조건과 상황도 다르지만 엄마로서 외로이 겪은 저마다의 사연은 치열하고 뭉클하다. 아이를 낳아본 적이 없더라도 누구나 공감할 우리의 이야기다.
'일도 양육도 잘하는 슈퍼맘'에 대한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여 성공에 이르는 영웅담은 육아에 어울리지 않는다. 알파 우먼에 대한 기사를 그만 보고 싶다. 아무리 사연을 미화해도 그 삶에 있었을 온갖 고통이 다 읽혀 괴롭다"는 아티스트 전유진의 일갈이 그 이유를 설명한다.
대신 "나만 소설을 안쓰면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빠졌다"(소설가 서유미)며 자책해야만 했던 순간들, 혹은 우는 아기를 베이비시터에게 맡기고 도망가야 했던 때를 떠올리며 "우연히 길에서 책가방 메고 초등학교에 가는 아이들을 마주치면 예전처럼 무조건 '귀엽다'는 감정이 솟는 게 아니라 '가엾다'는 감정이 먼저 든다"(번역가 홍한별)는 말처럼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지난한 감정의 파도가 여러 갈래로 퍼진다.
모든 글들에 스며 든 것은 각자 자리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세상 모든 엄마들에 대한 애정과 연대, 지지다. 책을 여는 따스한 일러스트도 사랑스럽다. 책을 덮고 나면 "인류의 수많은 여자들이 이 일을 해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양육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끊임없이 이야기 되어야 한다"는 과학기술학 연구자 임소연의 말이 새삼 귓가를 울린다.
이근아 기자 galee@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이재명 로비용 남욱에 42억 전달" 이기성 녹취록 확보
- 소통 방식 바꾸자 지지율 상승…尹 '도어스테핑 딜레마'
- "내년에 결혼한다"...김민경, 깜짝 발표 진실은? ('맛있는 녀석들')
- 투견 전투력 높인다며 러닝머신 앞에 놓인 고양이와 닭
- '손흥민 아버지' 손웅정 "난 삼류 선수였다" ('유퀴즈')
- "부회장 내려와라"…축구팬들 분노 일으킨 김병지 인터뷰 어땠길래
- "선수들 휴식보다 돈만" 벤투 감독 과거 발언, 전후사정은
- 머스크 밀어내고…잠시 세계 최고 부자된 '이 남자'
- 지오디 윤계상 "12년 만 완전체 무대, 뇌수막염으로 입원"
- 10% 적금 가입했더니... "제발 해지해 주세요"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