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사극에 냉동만두가? 드라마 PPL의 진화
# 최근 종영한 퓨전 사극 '슈룹'의 한 장면. 가상의 조선시대 중전 화령(김혜수)이 정성스레 요리된 만두를 내려다본다. 아들인 대군들의 "건강도 챙기시옵소서. 기름기가 적어 소화도 잘될 것입니다"라는 말에 흡족하게 한 입 먹는다. 상표 노출 없이 자연스럽게 연출됐지만 냉동 닭가슴살 만두 간접광고(PPL)였다.
# 야근을 하던 여주인공 소현주(주현영)가 커피 사탕을 한 알 먹더니 "잠 깬다"는 대사를 친다. 인기 드라마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 제작을 지원한 인도네시아 브랜드 코피코의 간접광고다. 우리나라에 정식 진출하지 않은 수입 식품인데, 동남아시아에서 K드라마 인기가 뜨겁다 보니 현지 물가 대비 다소 비싸더라도 광고를 댔다.
PPL은 방송 제작비를 충당하는 주요 재원 중 하나다. 수익 구조상 드라마에 PPL 삽입이 불가피하다는 점은 이제 제작진과 시청자 모두 받아들이게 됐지만, 여전히 작품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치부될 때가 많다.
그러나 다행히 PPL도 진화한다. 국내 최대 드라마 제작사 중 한 곳인 스튜디오드래곤의 김주연 콘텐츠IP 사업국장은 최근 매일경제와 만나 "최근 들어선 가급적 광고 삽입 없이 자생할 수 있는 방법도 찾아 나가는 단계"라고 했다. '필요악' PPL을 위한 변명이다.
우리나라 PPL은 1980년대부터 방송계 관행으로 자리 잡았고, 2010년 방송법 개정으로 관련 규정이 생기면서 고도화 수순을 밟아왔다. 드라마 회차, 시청률, 제작진과 배우 등에 따라 업계에 통용되는 단가도 정해져 있다. 보통 한 브랜드가 대는 액수는 4000만원에서 3억원 수준이다. 드라마 노출 횟수, 엔딩 크레디트 '제작지원' 자막, 추후 광고장면 활용 가능 여부 등을 계약 조건으로 삼는다.
이 시장에 이제 해외 브랜드가 발을 들였다. 코피코는 앞서 '작은 아씨들' '빈센조' 등 여러 드라마에서 PPL을 하며 국내 드라마 시장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포장지에 적힌 인도네시아어가 몰입도를 떨어뜨릴 것을 우려해 국내 PPL 전용 패키지도 따로 만들었다. 광고주는 브랜드와 핵심 제품을 알리고, 제작진은 시청자가 받을 위화감을 최소화하는 데서 접점을 찾은 셈이다. 김 국장은 "확실히 글로벌 제품의 PPL 문의가 늘어났다"며 "자국민에게 자신들이 프리미엄 브랜드라는 것을 보여줄 때 효과적인 창구가 한국 드라마라는 것"이라고 전했다.
시청자로선 PPL 없이 오롯이 몰입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곤 하지만, 그러기에는 제작비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김 국장은 "2~3년 사이에 제작비 규모가 20~30%는 늘었다"고 전했다. 주 52시간 근무제 등 여파로 제작 기간이 늘어나면서 현장 인건비 등 지출도 따라 올랐기 때문이다. "현장 변화엔 적응했지만, 수익을 낼 수 있는 채널 방영권·판권 가격은 제작비 상승 추이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어요. 해외 시장으로 팔리는 대작이 아니라면 더더욱 비용을 대기 힘들어졌죠."
그렇다고 PPL에만 기댈 순 없다. 실제로 코로나19 확산과 경기침체기를 겪으며 기업들의 광고비 삭감으로 PPL 시장 역시 위축됐다.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가 불필요한 광고를 붙이지 않아도 되게끔 제작비 전액과 최소한의 수익을 보장해주는 오리지널 시리즈를 선보이고도 있지만, 이 경우 지식재산권(IP)이 OTT에 넘어가버린다는 점에서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오히려 성장 한계에 부딪힌 넷플릭스가 지난달 광고 요금제를 도입하는 등 정답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대형 제작사에선 PPL 대안을 다각도로 실험 중이다. 드라마 방영 이후 별도로 만드는 광고 콘텐츠도 그중 하나다. 웹툰 원작으로 인기리에 방영된 뒤 시즌2를 제작 중인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은 다이슨 후원으로 기존 배우와 촬영장을 활용한 스핀오프 예능 '경이로운 터치'를 찍었다. 드라마의 상징적인 소품을 뽑아내 상품으로 만드는 부가 사업도 최근 2~3년 사이에 활발해졌다. 작품 내용에 무리하게 광고를 끼워넣기보다는 '슈룹'의 만두처럼 자연스럽게 노출시키고 뒤에서 광고하는 게 적합하다는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다만 이런 시도도 1년에 30여 개 신작을 만들 수 있는 대형 제작사에서나 가능하다는 게 현실적 진단이다. 연 1~2개 작품을 내놓는 제작사가 부가사업까지 고민하기란 쉽지 않아서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대중의 이해도가 높아졌어도 여전히 PPL은 작품의 흠집 같은 요소"라며 "업계가 IP를 확보하면서도 PPL은 최소화하는 방향에서 절충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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