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독성물질, 폐 도달 확인”···SK·애경 등 가해기업 판결에도 영향

김기범 기자 2022. 12. 8.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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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학원 논문, 국제학술지 게재
해당 성분, 폐 질환 유발 최초 입증
SK·애경 등 2심 재판에 영향 예상
1심선 과학적 증거 부족으로 무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지난해 2월10일 서울 종로 SK 본사 앞에서 SK케미칼, 애경산업, 이마트 등 가습기 살균제 제조, 판매, 유통사들에 대해 피해책임 인정과 배상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이 가습기살균제 독성물질 가운데 클로로메틸이소치아졸리논(CMIT)과 메틸이소치아졸리논(MIT)이 폐까지 도달한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정부 산하 기관의 연구 결과인 만큼 CMIT/MIT 제품을 제조한 가해기업의 재판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국립환경과학원은 경북대 연구진, 한국화학연구원 안전성평가연구소 등과 함께 탄소의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해 가습기살균제 성분물질 중 CMIT/MIT가 비강 또는 기도를 통해 폐까지 이동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8일 밝혔다. 연구결과를 담은 논문 ‘비강 및 기관 내 투여 후 CMIT/MIT의 체내 거동 및 호흡독성’은 환경과학 분야 상위 5% 수준의 국제학술지인 ‘국제환경’ 12월호에 게재됐다

이번 연구 결과는 가습기살균제 성분물질인 CMIT/MIT가 호흡기 노출을 통해 폐에 도달할 수 있고, 이에 따라 폐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정량적으로 입증한 최초의 사례다. 앞서 2018년 안전성평가연구소는 원자력연구원 등과 함께 또 다른 가습기살균제 원인 물질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이 폐까지 이동하는 것을 밝혀낸 바 있다.

이번 연구결과는 현재 2심이 진행되고 있는 CMIT/MIT 가해기업에 대한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월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CMIT/MIT 성분이 함유된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 애경산업·SK케미칼·이마트 관계자 13명에게 과학적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CMIT/MIT와 폐 손상·천식 간의 인과관계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과 시민단체, 환경보건학·독성학 전문가 등은 재판부가 관련 연구결과의 일부 문구와 전문가들의 증언 중 일부만 취사선택하면서 그릇된 판결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당시 재판에서 증언한 전문가들은 1심 재판부가 자신들의 증언을 잘못 이해했다는 취지의 토론회를 열고, 성명도 발표했다. 1심 판결에 검찰이 항소하면서 서울고등법원에서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기도에 CMIT/MIT가 노출된 지 5분, 6시간, 168시간(1주일)이 지난 시점에서 촬영한 실험용 쥐의 체내 CMIT/MIT 분포. 아래 그래프는 각 장기별로 5분, 6시간, 168시간이 지난 뒤 남아있는 CMIT/MIT의 농도. 정량전신자가방사선영상(QuantitativeWhole-BodyAutoradiography, QWBA)을 통해 촬영. 국제학술지 ‘국제환경(Environment International)’ 제공.

연구진이 이용한 ‘방사성 추적자’는 방사성 동위원소가 포함된 화합이다. 방사성 동위원소가 붕괴할 때 방출하는 에너지를 측정해 해당 화합물의 체내 이동 경로와 분포 특성 등을 확인한다. 연구진은 방사성 동위원소 ¹⁴C(질량수가 14인 탄소)가 표지된 CMIT/MIT를 합성해 실험용 쥐의 비강과 기도에 노출했다. 동위원소란 같은 원소이지만 중성자의 수가 달라 질량수가 다른 경우로, 탄소는 자연 상태에서 질량수가 12, 13, 14인 세 가지 동위원소가 있다.

연구진이 이후 체내 방사능 농도를 관찰한 결과, 노출 부위인 비강 또는 기도에서 폐까지 가습기살균제 성분물질(CMIT/MIT)이 이동하는 것이 방사선영상을 통해 시각적으로 확인됐다. 이 물질이 최대 1주일까지 노출 부위와 폐에 남아있는 것도 확인됐다.

구체적으로 CMIT/MIT를 실험용 쥐 비강에 노출하고 5분이 지난 뒤 폐와 간, 심장 등에서 CMIT/MIT가 확인됐다. 노출 후 30분이 지났을 때도 폐에서 노출 후 5분이 지났을 때와 비슷한 수준의 CMIT/MIT가 나타났다. 비강에 노출된 CMIT/MIT 상당량은 노출 48시간 후 체외로 배출됐지만 후 일주일(168시간)이 지난 뒤에도 폐에서 CMIT/MIT가 확인됐다. 기도에 노출했을 때도 결과는 비슷했다.

또 CMIT/MIT에 노출된 실험동물의 기관지폐포 세척액을 분석한 결과, 폐 손상과 관련 있는 염증 및 섬유화 지표가 농도에 따라 증가하는 것도 확인됐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CMIT/MIT가 비강에 노출됐을 때 폐에 도달하는지에 대한 과학적 증거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어 “CMIT/MIT 노출이 폐 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지에 대해 최근 대한민국에서 진행된 재판에서 제조사들은 무죄를 선고받았다”며 “법원은 CMIT/MIT 노출과 폐 손상 사이의 연관성을 나타내는 과학적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지만 이번 연구 결과에서 얻은 결과를 고려하면 (법원의) 결론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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