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라는 정서적 동반자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

김삼웅 입력 2022. 12. 8.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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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 56] 그의 유머와 위트는 권위의 시대에 더욱 빛을 발했다

[김삼웅 기자]

 <유머수첩> 표지
ⓒ 범우
 
유신에서 5공으로 이어지는 현대판 무인정권 시절 한국의 뜻 있는 지식인들은 깊은 고뇌에 빠졌다. 배운 학식과 가르침의 지식대로 행동하기 어려운 시공이었기 때문이다. 고려 무인정권기나 일제식민지 시기에도 참여파 지식인들이 있었듯이, 20세기 한국 무인정권에도 숱한 지식인들이 민주주의를 짓밟고 국민을 살상하는 공작에 지식을 제공하였다.

한때 정의와 인권을 내걸고 진보의 대열에 썼던 법조인들 중에도 훼절자가 적지 않았다. 징발되기도 하고 지원하기도 하면서 권력기관이나 여의도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그런 인물일수록 옛 진영과 동지들을 향해 사납게 짖는 경우를 보게 된다. 

한승헌은 신념을 지켜왔다. 짧은 양지를 빼면 대부분 재야와 황야의 길이었다. 쿠데타와 거듭된 정변으로 지식인 사회에 지조라는 고전적인 가치관이 사라진 지 오래라고는 하지만 훼절은 여전히 미덕이 될 수 없다. 한승헌이 재야의 성곽을 지킬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나는 웃을 만한 일이 별로 없는 환경 속에서 살아왔다. 가난, 전쟁, 고학, 반독재, 감옥, 그 어디에 웃을 일이 있었는가. 이른바 '관직'도 관직 나름이어서, 내가 맡은 감사원이나 검찰 등의 공직은 하나같이 법규범과 엄격성의 틀에 얽매이는 자리였기 때문에 웃음과는 거리가 멀었다. 변호사는 남의 불행을 떠맡아서 해결해주어야 하니, 더 말할 것도 없다. 

이처럼 공사 간의 생활이 '웃음친화적'이 아닌데도 나에게 얼마쯤 유머기질이 있는 것은 하나의 축복이기도 하다. 음지와 양지의 극한지대에서 숨이 아주 막히거나 좌절하지 않고 살아온 데는 유머라는 정서적 동반자의 '백업'이 주효했다. (주석 2)

춥고 습한 음지에서, 그리고 살벌한 황야에서 기죽지 않고 자기 진지를 지키며 시대의 파수병으로 꿋꿋하게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유머라는 정서적 동반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두었던 시절 70년대부터 <유머산책>, <유머기행>, <유머수첩> 등 3권에 묶이는 유머에 관한 글쓰기를 계속하였다. 
 
 피고인이 된 변호사
ⓒ 범우
 

유머를 소재로 <월간 다리>와 <책과 인생>에 수년에 걸쳐 연재하는 동안 시중의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일본에서 번역되어 상당한 분량이 판매되었다. 

그의 기지로 넘쳐나는 화술은 상대방을 항상 즐겁게 해주는 것이다. 그는 감옥에서나 그 어디서나 웃음을 지켜왔고, 그를 만나는 사람에게 웃음을 베풀어주고 있다. 그의 재치있는 언변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게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고은, 시인.

한승헌의 유머수필은 가장 비극적인 상황, 암담한 시대적인 고통 앞에서 그 종말을 고하려는 '희극적인 양식'의 하나로서 등장한 것이다. 그의 웃음은 한국적 정치현실과 권위주의에 대한 경쾌하고 통쾌한 반란의 소산이다. - 임헌영, 문학평론가. 

그의 유머와 위트는 권위의 시대에 더욱 빛을 발했다. 군사독재의 절망 속에서 그의 유머와 위트는 사람들에게 진실과 희망을 안겨주는 것이었다. 아마도 한국 최고의 위트가(家)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박원순, 변호사 (주석 3)

그는 2022년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승에서의 마지막 사업으로, 앞서 소개한 3권의 유머집을 한 권으로 묶어내는 작업을 하였다. 간행사까지 집필하였으나 끝내 출간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그만큼 유머는 그의 생애를 관통하는 핵심 요소의 하나가 되었다. 

그의 사후 <한승헌 변호사의 유머>가 이지출판에서 간행되었다. 일종의 유고집이라고 할 수 있지만, 유머종합편 또는 압축판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근래 많은 분들이 "세 권을 한 권으로 묶어 내면 좋겠다"는 요청을 해 와, 고민 끝에 세 권 중에서 세월이 흘러도 현장감이 살아 있는 글과 나 자신의 체험에서 나온 이야기들, 그리고 메마른 세상 고달픈 삶에 잠깐이나마 웃음을 전할 수 있는 국내의 유머들을 한 권으로 엮어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주석 4)

주석
2> <자서전>, 377쪽.
3> <한승헌 변호사의 유머기행>, 뒷표지, 범우사, 2010년, 초판6쇄.
4> <한승헌 변호사의 유머>, 7쪽, 이지출판,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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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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