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훈 "문화재 반환 국가만 나서선 안돼… 민·관 함께 나가야 결실"

김광태 2022. 12. 8.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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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화첩 국내 반환 큰 역할
은관문화훈장 수상자로 선정
"문화재관련 활동 공 인정받아"
선지훈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서울분원장[문화재청 제공]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 특별전 언론 공개행사에서 관계자가 2005년 독일에서 돌아온 겸재 정선 화첩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문화재 반환은 국가적 차원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관심 있는 사람이 나서 꾸준히 설득하고, 또 민·관이 함께 나아간다면 결실을 볼 수 있습니다."

독일에 있던 겸재 정선(1676∼1759)의 화첩을 국내로 들여오는 데 큰 역할을 한 공로로 은관문화훈장을 받는 선지훈(62)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서울분원장이 8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나라 밖 문화재가 제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민·관 협력이 중요하다고 이같이 강조했다.

문화재청은 선지훈 서울분원장을 포함한 '2022 문화유산보호 유공자 포상' 대상자를 8일 발표했다. 올해 수상자는 문화훈장 5명, 대통령표창 4명과 단체 2곳, 국무총리표창 1명 등이다.

은관문화훈장 수상자로 선정된 선지훈 서울분원장은 가톨릭교회 수도승 수도회인 성베네딕도회 소속 왜관수도원 성직자로, 독일에 있는 우리 문화재 발굴과 보존 연구에 공을 세웠다.

지난 2005년 국내에 돌아온 화첩은 겸재 정선의 작품 21점이 수록돼 있다. 화첩은 독일 상트오틸리엔 수도원의 노르베르트 베버 원장이 1911년과 1925년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수집해간 것으로 전해졌는데, 왜관 수도원과의 오랜 관계에 힘입어 영구대여 방식으로 돌아왔다.

선지훈 서울분원장은 당시 문화재 반환을 여러 차례 설득하며 수도원 측의 결심을 끌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 외에도 100년 전 식물표본 420점을 국내에 들여오는 데도 힘을 보탰다.

선 원장은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일이지만, 당시 기억이 생생한 듯 "독일과 한국의 교류 측면에서도 중요한 상징이자 모범적 사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2005년 한국에 돌아온 겸재 화첩은 진경산수화, 고사인물화 등 여러 주제를 담은 그림 21점을 담고 있다. 작품마다 제작 시기가 달라 화풍, 재료 등에서 겸재의 다양한 면면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겸재 화첩 반환은 1991년 처음 수도원과 인연을 맺으며 관계자들을 설득한 선 원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선 원장은 "독일에서 유학할 당시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살면서 많은 이들과 교류했다. 이후 거의 매년 수도원을 찾아 화첩의 의미를 설명하고 반환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떠올렸다.

그는 "회의에서 놀랍게도 만장일치로 (영구대여 방식의 반환을) 결정됐다"며 "당시 선교 100주년을 앞둔 시점이었는데 그 당시가 아니라 지금 기준이라면 조금 어려울 수 있었을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최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에서 화첩이 많은 관심을 받은 데에도 감사함을 전했다. 올해 7∼9월 열린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 전시에서는 '금강내산전도'(金剛內山全圖), '일출송학도'(日出松鶴圖), '구룡폭도'(九龍瀑圖) 등 화첩 속 그림들이 공개됐다.

평소 미술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잘 알려진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이 전시된 화첩을 찍은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려 주목받기도 했다. 선 원장은 "화첩을 반환한 뒤 (국내외에서) 오틸리엔 수도원에 대한 이미지도 좋아져 이후 수도원을 찾는 사람도 늘었다고 한다"며 한국과 독일 수도원 모두에 긍정적 영향을 줬다고 평가했다.

겸재 화첩으로 이름이 알려졌지만, 그는 독일에서 식물 표본 420점을 반환한 일 또한 중요했다고 봤다. 표본은 독일인 신부가 1913년 북한 원산지역을 중심으로 선교 활동을 하면서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채집한 식물을 모은 것으로, 100년 만인 2013년 독일에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당시는 국내 식물 연구가 시작되기 전이라 채집본이 거의 없다"면서 "반환하는 과정에서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서로 오해를 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귀하고 보람된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2022 문화유산보호 유공자 포상' 대상자로 선정됐다. 그는 은관문화훈장 수훈에 대해 "올해가 사제 서품을 받은 지 딱 25년이 되는 해"라며 "그동안 문화재와 관련한 여러 활동을 해왔는데 그 공을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쁘고 또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광태기자 ktkim@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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