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칼럼] ‘4대 천왕’ 부활하는 新 관치금융

조귀동 기자 2022. 12. 8.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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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귀동 금융1팀장.

지난 6일 손병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의 연임 포기설을 둘러싼 소동은 윤석열 정부의 관치 금융 행태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발단은 이날 오전 손 회장이 연임 포기 의사를 명시적으로 밝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였다. NH농협이나 손 회장 모두 “연임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고 비공식적으로 언급했지만, 그렇다고 연임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도 아니었다.

연임 포기설이 돌면서 그전까지 유일한 유력 후보였던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이 자연스럽게 임원후보추천위원회의 내정자처럼 간주되기 시작했다. 손 회장이 알아서 물러나는 것처럼 ‘좋은 그림’은 그려지지 않았지만, 금융가에서는 대선 캠프 출신이 금융사 CEO(최고경영자)로 내려오는 상황을 받아들이게 됐다.

이 전 실장은 지난해 6월 본격적인 정치 참여 선언을 한 지 한 달 정도가 된 윤석열 당시 전 검찰총장이 처음으로 영입한 거물급 인사였다. 검찰 시설 측근 위주로 운영되던 윤석열 캠프에 기획재정부 관료 출신이 활동하기 시작한 신호탄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전 실장이 2022년 현재 금융지주 회장을 맡을 전문성이 있는지는 고개가 갸웃거려질 수밖에 없다. 2002년 증권제도관리과장, 2011년 금융위원회 상임위원을 맡았다고 하지만 예산 쪽에서 집중적으로 이력을 쌓았기 때문이다. 예산실장, 기재부 2차관(재정 담당)을 거쳐 미래창조과학부 1차관과 국무조정실장을 역임하고 공직생활을 마무리한 게 이를 잘 보여준다.

농협금융은 지난 4월 검찰 고위직 출신인 이종백 변호사를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했다. 이 의장은 부산 출신으로 부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그는 인천지방검찰청 검사장, 서울중앙지검장 등을 역임했다. 이후 김앤장에서 일했다. 기재부 관료와 검찰이 요직을 장악한 행정부와 판박이가 된 셈이다.

/조선DB

최근 갑작스레 회장직이 공석이 된 BNK금융지주의 경우 70대 올드보이들이 CEO 하마평에 오른다. 78세인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BNK금융 사외이사를 역임하다 5월 갑작스레 사임한 김창록 전 산업은행 총재(73) 등이다. 금융위 관료들의 지지를 받는다고 알려진 이현철 우리카드 감사가 그나마 57세로 젊다. 부산·경남 일대의 2024년 총선 결과에 사활을 걸고 있는 대통령실의 이해관계를 고려하면 코드 인사는 기정사실이나 마찬가지다.

대선 캠프 출신의 실세가 금융사 CEO로 내려오는 모습에서 10여 년 전인 이명박 정부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지금도 금융가에 진입한 윤석열 캠프 출신은 자신감 있는 행보로 실세임을 드러내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달 14일 “경영진이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에 따라 선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필요가 있다”며 금융회사 CEO 물갈이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금융정책에서도 적극적으로 발언을 내놓는다. 지난달 24일 은행들이 서로 은행채를 발행해 자금을 융통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을 때, 금융위 고위직들은 이 원장이 해당 발언을 내놓을 것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금융위 눈치를 보지 않는 거침없는 행보다.

강석훈 KDB산업은행 회장은 산은이 들고 있던 구조조정 대상 회사 지분을 거침없이 정리하고 있다. 지난 9월 취임 3달 만에 대우조선해양 지분을 한화에 넘겼다. KDB생명 매각 작업도 재개했다. 당분간 매각 의향이 없다던 HMM도 잠재 인수 후보군 기업 관계자들을 만나면서 사전 정지 작업에 착수했다. 자칫 특정 기업에 대한 특혜나 헐값 매각 논란이 일 수 있는 지분 매각을 빠르게 진행할 수 있는 원동력은 정치적 자신감에서 나온다.

이복현 금감원장, 강석훈 회장에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과 새로 BNK금융지주와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될 또 다른 정권 실세를 합쳐 ‘신(新) 4대 천왕’ 또는 ‘5대 천왕’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글로벌 금융 불안 대응, 성장 동력 확충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돈줄을 쥐락펴락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일어났던 일들의 재연이다.

이명박 정부의 4대 천왕은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메가뱅크(초대형 은행) 등 야심찬 계획은 무위로 돌아갔고, 방만한 경영과 내부 통제 실패로 갖가지 사고가 빈발했다. 고졸 채용 등 전시성 기획 사업은 정권이 바뀌자 유야무야됐다. 정치적 영향력을 등에 업은 관치가 금융산업에서 제대로 작동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가 명시적으로 ‘4대 천왕은 더는 없다’고 말한 이유이기도 하다.

윤석열 정부의 금융정책 운영 행태를 보면 ‘신관치’가 성공할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예금 ·대출 금리에 대한 개입이 대표적이다.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 시장에 유동성이 마르자 금융당국은 은행채를 발행하지 못하게 했다. 자금을 구하기 위해 은행들이 예금 금리를 경쟁적으로 올리자,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이 돈을 구하기 어렵게 됐다.

이어 예금 금리를 올리지 못하게 하면서, 이제 대출금리와 격차가 벌어지게 됐다. 다시 금융당국은 대출금리를 끌어내리라고 주문하고 있다. 초단기 자금을 융통하던 은행 간 콜 시장과 비슷하게 3~5년 만기 은행채 거래를 허용키로 했지만, 장기채 시장에서 은행 간 거래가 유동성 확보 수단이 될지는 미심쩍다.

사실상 금융회사 인사권을 쥐고 신관치를 이끌어가는 대통령실은 정작 금융정책에 대해 관심이 없다. 경제수석실 산하 경제금융비서관실에서 9월 하순부터 한 달간 금융위 출신이 한 명도 없어 레고랜드 사태 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게 대표적인 예다. 레고랜드 사태 당시 경제금융비서관실에 금융 관련 업무를 해본 사람은 한국은행, 수출입은행 파견자가 전부였다. 금융위 파견 직원 2명은 인사비서관실 등에 배치되어 있고, 금감원 3명은 법률비서관실,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인사나 감찰 업무를 하고 있다.

정권 실세들의 금융가 진입에 대해 금융계 일각에서는 “윤석열 정부는 염불보다 잿밥에 더 관심 있다”며 냉소적인 시각을 보내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이러한 생각을 불식시킬 수 있을까. 그간 행적을 보면 딱히 그럴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조귀동 금융1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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