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참사의 재구성…서울 완전독점과 지방 소멸

2022. 12. 8.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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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준의 어퍼컷] 참사 대기·잠재 도시 서울

[정희준 전 동아대 교수]
지난 여름 부산에서 차를 몰고 서울을 향하는데 네비게이션이 처음 보는 길로 안내한다. 경치는 좋고 길은 뻥뻥 뚫린다. 네비게이션을 보니 동탄·봉담고속도로란다. 화성시 봉담읍과 지금 동탄신도시라 부르는 옛 동탄면을 연결하는 고속도로다. 그러니까 일개 읍과 얼마 전까지 면이었던 동네 사이에 고속도로가 생긴 것이다.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에 이어 제2순환선이 생기면서 수도권은 서울을 중심으로 종으로, 횡으로, 원으로 연결되는데 무수한 읍·면·동이 국도도 아니고 고속도로로 연결된다. 예를 들면 화성시 송산동과 마도면, 광주시 곤지암읍, 남양주시 화도읍, 포천시 소흘읍. 수도권을 제외한 우리나라 모든 지역은 시·군 수준이 아니면 고속도로를 가질 수 없지만 수도권은 읍·면·동도 고속도로를 가질 수 있다. 놀랍다. 수도권은 대한민국이 아닌가? 아니, 지방이 대한민국이 아닌 것이다.

서울이 작동하는 방식

서울역, 명동, 광화문, 강남역, 양재역에는 무수한 빨강, 초록 버스들이 쉴 새 없이 사람을 실어 나른다. 북으로는 파주, 의정부, 서로는 일산, 김포, 동으로는 구리, 하남, 남으로는 분당, 수지, 수원, 용인, 동탄, 평택까지 무수한 노선이 심장이 피를 뿜어내듯 사람들을 퍼나른다. 출퇴근 시간, 그 수많은 버스들이 경부선을 오가며 쉴 새 없이 줄지어 달리는 풍경은 한 마디로 장관이다.

정부는 계속해서 서울 인근에 신도시를 만들었다.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경제적으로 밀려난 이들이 서울 밖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 '이부망천(이혼하면 부천, 망하면 인천)'이란 말이 유행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서울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뻗어나간다. 강남 살다 한 번 망하니 수원, 두 번 망하니 동탄이었다는 이도 있다.

그렇지만 서울이라는 유기체가 계속 유지되기 위해서는 인력이 필요하다. 잠은 서울 밖에서 재우더라도 일은 서울에서 시켜야 한다. 그래서 신도시 교통대책에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래서 신도시는 베드타운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신도시 주민들은 결국 서울에서 일하기 위해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처럼 피곤에 절은 몸을 이끌고 시골길을 걷는 고난의 행군을 감내해야 한다.

공포스러운 밀집이 일상이 된 서울

정말 문제는 이들이 잠에서 깨어 다시 서울로 몰릴 때이다. 참사 당일 이태원에 몰린 인파가 이미 심상치 않았고 수많은 신고가 있었으나 정부는 가장 기본인 이태원역 무정치 통과 조치부터 취하지 않아 결국 사고가 터졌다. 그런데 지하철역 밀집 인파는 이미 오래 전부터 위험수위였다. 서울 지하철9호선은 '공중부양'으로 유명하다. 사방으로부터의 압박에 양팔이 묶이고 이미 숨쉬기도 힘든, 도저히 더는 탈 수 없다고 느끼는 순간, 아무도 내리지 않는 동작역에서 무려 10여명이 밀고 들어온다. 이게 가능한 게 서울이다.

출퇴근시간 1호선 서울역은 거대한 개미굴을 보는 듯하다. 이미 오래전 2호선 홍대역에서는 잠시 공포감을 경험하기도 했다. 주말 저녁 홍대역에서 내려 밖으로 나가려 계단을 오르는데 '인파의 물결' 수준을 넘어 사람들이 한 덩어리 떡이 되어 밀려 올라가듯 했다. 순간 나는 ' 저 위 한 사람이 넘어지면?'이라는 공포스러운 호기심이 스쳐지나갔다.

문제는 이거다. 서울사람들은 이러한 공포스러운 밀집에 익숙해져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9호선 동작역에 정차한 지하철 문이 열렸지만 아무도 내리지 않아 승객들이 콘크리트벽처럼 서있음에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십여 명이나 밀고 들어오는 저 놀라운 담대함이 이미 서울인들에게는 일상적 삶의 방식이 되어버린 것이다. 서울은 이미 참사 대기 도시였던 것이다.

경제의 수도권 집중, 문화의 서울 집중

사실 경제 측면에서만 보면 서울이나 경기, 인천이나 별 차이가 없다. 우리나라 시가총액 10대 기업의 본사와 공장이 수도권 곳곳에 분포해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인천에 본사와 공장이 있고 최근 경기도 외곽인 화성, 오산, 평택, 안성에도 대기업 공장과 연구소가 즐비하게 들어서고 있다. 이들 지역은 베드타운이 아니라 이른바 정주 여건이 갖춰진 곳이다. 즉 그 지역에 눌러 살 수 있도록 주거와 직장과 학교와 소비 등 가족에게 필요한 기본적 삶의 조건이 갖춰진 곳이다.

모든 지자체가 갈망하는 정주여건이 갖춰졌음에도 발생하는 문제는 바로 문화가 없다는 것이다. 여가시간에 즐길거리와 나이트라이프가 없다. 신도시마다 호수공원과 산책로가 있지만, 또 동네마다 삼겹살집과 치킨집이 있지만, 요즘 사람들의 취향, 특히 젊은 층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킬 리 만무하다. 미술관도 없고, 박물관도 없고, DDP, 코엑스도 없고, 익선동, 성수동 같은 '힙플'도 없다. 결국 공연·전시, 쇼핑, 나이트라이프, 축제를 즐기기 위해 또다시 서울로 먼 길을 나설 수밖에 없다.

이미 특정 지역 밀집이 포화상태를 넘어 폭발할 것 같은 위험수준인 상태에서 축제 등의 문화적 매개가 더해지면 터질 수밖에 없는 게 서울의 현실이다. 서 있다가 목숨을 잃는 일이 수원이나 고양에서 가능할 리 없다. 이번 월드컵 거리응원도 전적으로 서울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문화다.

최대 희생자는 수도권 거주자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게 있다. 20대 희생자, 특히 여성 희생자가 많았다고들 했다. 10·29참사 희생자 158명 중 수도권 거주자는 110명으로 70%이고, 수도권에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외국인 희생자 26명을 포함하면 136명으로 86%를 넘어선다. 여성 희생자가 65%고, 20대 희생자가 67%다. 결국 10·29참사 최대 희생자는 수도권 사람들이다.

이쯤 되면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제까진 지방 소멸을 이야기했다. 제2의 도시라는 부산의 또다른 이름이 '노인과 바다'다. 대학 진학 때 1차 역외 이주가 발생하고 졸업 후 취직 때 2차 이주로 인해 젊은 인구가 수도권으로 지속적으로 빠져 나가는 것은 비단 부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방은 이미 오래 전 소멸의 길에 들어섰는데 그 결과 서울은 미어터지더니 끝내 사고가 났다. 이제는 서울인구의 안전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또 프레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서울 부동산이 비싸서 경기도로 밀려났는데 신도시 아파트값이 폭등했다더라 식의 저렴한 이야기를 떠들어댈 게 아니라 그 멀리 이사를 갔음에도 아등바등 서울에 매달려 살아야 하는 구조와 이유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출퇴근에 네 시간, 다섯 시간을 허비해야 하는 나라가 또 어디에 있을까. 최근 서울로 출퇴근하는 경기도민들을 한 방 먹이는 일이 있었다. 경기도 내 좌석버스들의 입석금지 조치. 출퇴근 시간이어도 만석이면 무정차 통과다. 나도 겪어봤다. 한 대, 두 대, 나를 못 본 척 지나가는 버스를 바라보는 심정은? 무시당하는 기분.

서울의 독점과 수도권 착취 어디까지?

서울의 자원독점은 끝이 없다. 자본 뿐 아니라 질 좋은 노동력도 독점한다. IT와 미디어산업 인력은 상암동, 강남, 판교에 몰려 있다. 스타트업도 서울이다. 9월 기준 신규 벤처투자액 61%를 서울 홀로 차지했다. 문화도, 예술도, 공연·전시, 나이트라이프, '힙플' 거의 모두 독점하고 있다. 교육은 말 할 것도 없다.

최근 내가 유의 깊게 지켜본 분야는 언론과 유튜브의 결합이다. 개인 또는 민간 유튜브방송은 서울의 완전 독점체제다. 특히 라디오방송들은 유튜브와 결합하면서 새로운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재미있는 변화는 과거 시사 프로그램의 경우 진행자 혼자 스튜디오에 앉아 미리 섭외된 게스트와 전화로 인터뷰하는 방식이었는데 지금은 전화 인터뷰가 사라지고 모든 게스트들이 잔뜩 멋을 내고 직접 출연한다. 마치 텔레비전처럼 촬영하고 나름 인기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게스트가 직접 출연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서울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처럼 광주의 교수가, 부산의 시민단체 활동가가, 대전의 중소기업 대표가 라디오에 나와 전화인터뷰하는 일은 사라졌다. 모든 분야에서 수도권 제외한 지역은 이제 씨가 말랐다. 서울의 완전 독점이다.

10·29참사의 이유는 밀집된 군중을 분산시키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밀집의 결과는 압사다. 국토균형발전 뿐 아니라 서울시 거주자의 안전을 위해서도, 또 서울에서 일하고 자주 서울을 찾는 경기도민의 안전을 위해서도 인구를 분산시켜야 하고 따라서 당연히 자원을 분산시켜야 한다. 베드타운 만들어 잠자리만 분산시킬 게 아니라 일자리도 분산시키고 문화도 함께 분산시켜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교육도 분산시켜야 한다.

분산과 균형 고민해야

비록 구상 수준에서 끝났지만 이러한 문제를 예상하고 박정희가 수도 이전을 계획했었다.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수도 이전을 막고 싶다"던 이명박과는 차원이 다른 지도자다. 세월이 흘러 노무현이 행정수도를 이전하고 권역별로 혁신도시를 추진했다. 공공기관들을 분산 배치해 지역의 기업, 대학, 연구소와 협력하고 수준 높은 주거·문화·교육 등의 정주 여건을 갖춘 미래도시 프로젝트였다. 미래를 고민한 통찰력의 지도자다.

노무현의 국토균형발전은 대한민국의 영원한 숙제다. 지금도 저항이 많다. 그러나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서울의 완전독점과 수도권 착취, 그리고 지방소멸이다. 그 과정에서 10·29참사가 벌어졌다. 심상치 않다.

그러고 보니 오는 19일은 노무현이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된 지 딱 20년 되는 날이다.

▲이태원참사를 추모하는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 ⓒ프레시안 (이상현)

[정희준 전 동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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