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판 386’, 노론의 공작정치와 ‘쓰레빠’[박종인의 징비]

박종인 선임기자 2022. 12. 8.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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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 송시열(1607~1689) /국립중앙박물관

기록은 예언 같다. 2022년 대한민국에 횡행하는 공작정치는 옛 기록에 예언돼 있다.

1504년 겨울, 폭군 연산군은 홍문관과 사헌부, 사간원 간부들을 하급관리인 낭청으로 강등시켰다. 삼사(三司)라 불리는 이 세 기관은 지금으로 치면 검찰이나 감사원 같은 기관이다. 이듬해 연산군은 ‘아랫것들 버릇을 고치지 않으면 권력이 이들에게 돌아가리라’라는 삼사 혁파문을 목판에 새기라고 명했다. 혁파문 필자는 서울대 총장 격인 성균관 대제학 김감이었다.

이후 사헌부는 고위직 비리 수사권을 박탈당하고 대궐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자들 단속, 대궐을 등지거나 쭈그려 앉은 자 체포 따위 국가원수 모독죄나 경범죄 단속 기관으로 전락했다. 대신 주요 수사권은 연산군 직속 수사기관인 의금부가 차지했다. 이는 ‘검수완박’에 관한 예언이다.

그 폭군을 몰아낸 사림(士林)은 지금으로 치면 독재 타도를 외치던 386 운동권이다. 이 운동권은 독재를 타도하고 스스로 독재 권력으로 변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사림 가운데 서인(西人)이 권력을 차지했다. 남인 세력에게 남아 있던 권력까지 독점하기 위해 서인이 획책한 계획은 공작정치였다.

숙종 때인 1682년 ‘남인이 장사 300명을 동원해 세 정승과 육판서는 물론 비변사 대신들까지 찍어죽이고 나라를 깨뜨리려 한’ 역모 사건이 발각됐다. 허새라는 남인이 “주상은 덕이라고는 조금도 없고 어둡고 흐려 어질고 현명한 이로 왕을 바꾸면 태평성대가 온다”며 모의를 주도했고 다른 남인 16명이 가세했다고 했다. 전국 주요 도시에 가짜 의금부 도사를 파견해 현지 수령들을 체포하고 궁궐에는 군사 300명을 매복시켜 때를 기다린다고 했다.

고발된 남인들은 처형되거나 고문 도중 죽었다. 그런데 처음 고발된 허새와 허영을 제외하고는 자백을 한 자가 한 명도 없었다. 결국 모든 것이 서인인 우의정 김석주와 어영대장 김익훈이 남인 박멸을 목표로 조작한 사건임이 드러났다. 이는 권상하라는 인물이 쓴 ‘황강문답’이라는 기록에 잘 나와 있다. 이 권상하는 서인 총수 송시열 최측근 인사였으니 이 모든 일이 공작과 조작정치임을 서인 수뇌부가 모두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아니면 말고 식 공작과 조작은 공화국 시대 대한민국 대통령과 법무부장관이 대형로펌 변호사들과 술판을 벌였다는 공작과 겹친다. 그 공작에 ‘우의정, 어영대장’이라는 봉건시대 고위관리와 ‘국회의원’이라는 공화국시대 공직자가 ‘협업’을 했다는 사실도 겹친다.

실록이 예언한 또 다른 사실은 조선판 386들의 위선과 뻔뻔함이다. 소장파 서인들이 “역모를 사주한 김익훈은 본인이 역적이 된 것보다 심하다”고 반발했다. 서인인 승지 조지겸은 “시비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숙종에게 재수사를 요구했다. 이 소식을 서인 영수 우암 송시열이 들었다. 송시열은 이렇게 답했다. “공작을 한 김익훈은 비록 죽는다 해도 애석할 것이 없다.”

멋진 말이다. 그런데 입과 행동은 달랐다. 숙종이 주재한 회의에서 송시열이 입을 열었다. “김익훈은 내 스승 김장생의 손자다. 스승에 대한 도리로서 내가 죄인이다.” 제자들에게 송시열이 재차 말했다. “김익훈은 스승 문중 자제다. 구제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죽게 되면 나는 마땅히 내 거취를 내놓고 싸워서 살리리라.”

‘원칙’과 ‘대의’를 주장하던 송시열 입에서 진영 논리가 튀어나오자 젊은 서인들이 등을 돌렸다. 이들이 서인에서 분리된 소론(少論)이며 진영을 지킨 이들이 노론(老論)이다. 대의명분과 도덕주의를 기치로 내건 조선 후기 정치판은 그렇게 권력에 눈먼 공작정치로 더러워졌다.

공작과 조작, 위선과 후안무치한 진영논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노론이 기록한 ‘숙종실록’에 나온 조지겸에 대한 평가는 꼴불견이다. ‘인조반정 이후 서인이 국정을 담당해 50여년 조정이 편안했는데 조지겸이 몰래 흉악한 도적의 붉은 기치가 되었다.’ 역사 자체를 비틀어버린 것이다.

이제 2022년 공화국시대를 본다. 청담동 술집 사건을 주장한 자들은 아직도 오류나 실수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집권세력 도덕성을 공격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하지만 그들은 졸렬한 부도덕성으로 일관 중이다. 10억 원 배상 소송에 당사자는 “돈으로 입을 틀어막는 행위”라고 반발한다. ‘압수수색 당하는 심정을 알게 해 주겠다’며 집을 무단 침입하고, 공권력 행사를 거부한다. 더불어민주당 산하 ‘정치개혁 준비단 더불어민주당 권리당원 모임’이 대통령 부인이 외국 원수 앞에서 ‘쓰레빠를 신고’ ‘무례하게 다리를 꼬고’ ‘접대했다’고 조롱해놓고는 정작 틀렸음이 밝혀졌음에도 ‘조선일보에서 대표님 페북 매일 확인한다는 증거’라고 비웃는다. 법과 상식과 도덕이라는 단어를 그들은 알까.

그런데 이런 건달 급 반응 또한 옛 기록에 예언돼 있다. 남인 당론서인 ‘동소만록’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서인(노론) 무리들은 끓는 물이나 불 속에 들어가 죽더라도 피하지 않았다.’ 우리가 봉건 조선을 벗어나긴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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