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조건 없이 ‘정치 파업’ 중단해야 한다

2022. 12. 8.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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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화물연대 운송거부로 큰 피해

정부의 단호 대응으로 갈림길

민노총에 조합원 점차 등 돌려

안전운임제 진지한 논의 필요

특수형태 근로종사자 급증세

해결 위해 국가적 지혜 모을 때

지난달 24일부터 시작된 화물연대의 운송거부 ‘파업’으로 육상 화물 운송에 커다란 차질이 빚어졌다. 그 여파는 정유·시멘트·철강·자동차 등 전반적인 주요 산업 분야의 화물 운송에 지장을 미쳤고, 그 결과 대규모 경제적 피해가 발생했다. 화물연대는 일몰제 적용으로 오는 연말로 폐지되는 안전운임제의 확대 및 영구화를 요구하면서 파업에 돌입했고, 이에 동조해 민노총은 지난 6일 전국적인 총파업을 단행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지난달 29일 시멘트 분야 운송 거부자에 대한 운송 업무개시 명령을 발동하면서, 명령서를 전달받고 업무에 복귀하지 않으면 행정 조치하겠다는 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화물연대와 민노총의 총파업은 한국 경제에 큰 타격을 줄 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경제적 이해를 실현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제 파업을 멈추고 협상에 임하는 것이 최선이다.

먼저, 화물연대와 민노총은 이번 총파업이 일반 시민뿐만 아니라 다른 노조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포스코 양대 노조 중의 하나인 포스코 지회는 무리한 파업에 반발해 민노총을 탈퇴했으며, 현대중공업 노조는 사용자 측과 임금·단체협상에 잠정 합의해 총파업의 참여를 유보했다. 이뿐만 아니라 화물연대 파업에 참여했던 전남지역 본부 소속 조합원들이 업무에 속속 복귀하면서 파업의 전열이 무너지는 양상을 보였다. 이처럼, 파업이 조합원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은, 파업이 노동자의 경제적 이해와 권익을 보호하기보다는 정치 투쟁에 동원되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제 화물연대는 화물 운송 노동자의 관점에서 가장 실질적인 문제인 안전운임제 존속 여부에 초점을 맞춰 협상에 임해야 한다. 안전운임제는 화물차주에게 적정한 운임을 보장해 과속·과적 등 무리한 운행을 방지하는 교통안전을 확보하려는 목적으로 2020년 1월에 도입된 제도다. 이러한 안전운임제는 화물 운송에 관련된 화주와 차주 간의 시장 거래에 정부가 규제를 통해 개입하는 것으로, 대다수 OECD 회원국을 비롯해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 국가에서는 거의 시행하지 않는 제도다. 이 때문에 안전운임제를 도입한 문재인 정부에서도 한시적으로 시행하고 3년이 지나면 자동으로 폐지토록 하는 일몰제를 적용했다.

그동안 안전운임제를 시행한 결과를 보면 기대했던 결과를 효과적으로 달성했다고 보기 어렵다. 국토교통부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3년간 화물 운송 노동자의 소득은 상승하고 근로 시간은 줄어드는 등 근로 여건은 상당히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안전운임제의 적용 대상인 견인형 화물차의 사고 횟수는 8% 증가했고, 사고로 인한 사망자도 40% 넘게 늘었다. 이 같은 견인형 화물차 사고의 증가는 우리나라 전체 교통사고와 사망자 수가 줄어드는 추세를 고려하면 더욱 두드러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장시간 운전하는 화물차 운전자가 대다수인 우리 현실에서 안전운임제를 무조건 폐지하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 안전운임제가 폐지되지 않고 계속 유지되려면 안전한 화물차 운행이 담보돼야 하는 만큼 화물차 운전자들이 정부와 머리를 맞대고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이번 파업에 참여한 화물차 운전자들은 노동자의 성격과 사업자의 성격을 가진 특수형태 근로 종사자로서 노동기본권 보장과 산재보험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이 같은 요구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특수형태 근로 종사자는 노무를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 근로자이지만, 동시에 개별 사업자의 성격을 가짐으로써 산업재해보험, 고용보험, 국민연금 등과 같은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급격히 늘어나는 배달 서비스와 공유 자동차 서비스 등과 같은 플랫폼 노동 종사자들도 특정한 사업장에 종속되지 않지만, 노무를 제공해 경제를 영위하는 특수형태 근로 종사자들이다. 이와 같은 이중적 성격을 가진 근로자가 증가함에 따라 사회보험의 사각지대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점을 고려했을 때, 노동자의 실질적 이해와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화물연대는 정치 파업을 멈추고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실질적인 협상에 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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