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인 떼창 “오! 필승 코리아” 축제로구나~ 축구도 삶도

박강수 2022. 12. 8.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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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팀 국가 연주가 끝나면 화이트 스트라입스의 '세븐 네이션 아미'가 흘러나온다.

미국의 블루스 록 뮤지션 잭 화이트가 2003년 발표한 록 넘버로 세계 각국 축구장에서 '21세기의 찬가'로 자리 잡은 곡이다.

지난 6일(현지시각)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월드컵 16강전,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7위 스페인이 22위 모로코에 승부차기에서 패(0-3)하며 토너먼트 첫 경기부터 짐을 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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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수 기자의 도하일기]
한국의 축구팬이 지난 5일 카타르 도하의 974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월드컵 한국과 브라질 경기를 보고 있다. 도하/UPI 연합뉴스

양 팀 국가 연주가 끝나면 화이트 스트라입스의 ‘세븐 네이션 아미’가 흘러나온다. ‘아미’라고 쓰여 있지만 방탄소년단(BTS)과는 관계없다. 미국의 블루스 록 뮤지션 잭 화이트가 2003년 발표한 록 넘버로 세계 각국 축구장에서 ‘21세기의 찬가’로 자리 잡은 곡이다. 안톤 브루크너의 5번 교향곡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기타 리프가 수만 관중을 휘감아 고양한다. 주장들은 악수를 하고, 선수단 단체 촬영을 마친 수백명의 사진 기자들이 흩어진다. 선수들은 포메이션을 갖춰 서고, 10초 카운트다운이 이어진다. 다 같이 외친다. …3, 2, 1, 킥오프!

“OO 어디 갔니” 도발 시리즈 인기

휘슬과 함께 폭발할 듯 끓어오르는 에너지는 오직 월드컵만의 것이다. 두 국가가 총 대신 공을 들고 벌이는 영락없는 ‘전쟁’이다. 지난 6일(현지시각)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월드컵 16강전,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7위 스페인이 22위 모로코에 승부차기에서 패(0-3)하며 토너먼트 첫 경기부터 짐을 쌌다. 조별리그에서 한 경기 7골을 몰아치기도 했던 스페인은 이날 연장전까지 120분간 유효슈팅 한 개에 그쳤다. ‘돌아온 무적함대’의 포대는 전부 기능 상실 상태였다.

모로코 선수들이 스페인전 승리 뒤 팬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알라이얀/AP 연합뉴스

이날 스페인의 ‘마음을 꺾은’ 것은 경기장을 붉게 물들인 수만 명의 모로코 관중이었다. 그들은 스페인 선수들이 공을 잡을 때마다 귀청을 찌르는 야유를 송출했다. 이 경기 스페인의 점유율은 77%. 모로코 관중들의 ‘야유 점유율’은 그에 못지 않았다. 그들은 사기를 부수는 소음으로 경기 시간 대부분을 채워 조국의 전사들을 보좌했다. 페드리, 가비 같은 어린 선수들은 물론이고 ‘백전노장’ 세르히오 부스케츠(이상 바르셀로나)도 기가 눌려 힘을 쓰지 못했다. 부스케츠는 승부차기를 실축했다. 모로코 팬들은 문자 그대로 12번째 선수였다.

팬들의 열광은 소위 ‘설레발’이 되기도 한다. 기념비적인 ‘업셋’(하위 팀의 승리)이 이어졌던 조별리그 기간 온라인에서는 현장 팬들의 “OO 어딨느냐”(Where is OO) 도발 시리즈가 인기였다. 아르헨티나를 꺾은 사우디아라비아 팬들이 경기 뒤 아랍말로 “(리오넬) 메시 어디 갔니”를 외친 일이 발단이 됐다. 이후 스페인을 이긴 일본 팬은 “모라타 어디 갔니”를, 포르투갈을 이긴 한국 팬은 “호날두 어디 갔니”를 외쳤다. 기세를 이어 일본에서는 크로아티아전을 앞두고 “모드리치 어딨니”가 나왔으나 경기는 “모드리치 여깄다”로 끝나고 말았다.

아르헨티나전 승리에 기뻐하는 사우디 아라비아 팬들. 루사일/AP 연합뉴스

전력을 다해 상대를 찍어누르고, 패배자를 조롱하는 얄궂은 유희만 있는 건 아니다. 좁은 도시에 많은 축구 팬이 몰린 카타르의 특성상, 사람들이 몰린 현장은 자연스럽게 일탈의 놀이터가 된다. 대표적으로, 2019년 개관한 세 개 노선의 도하 지하철은 다국적 축구팬이 몰린 파티장 기능을 한다. 지난 5일 한국과 브라질의 16강전이 열린 974 스타디움으로 향하는 골드 노선에서는 “오∼ 필승 코리아” ‘떼창’이 나왔다. 아랍에미리트 국기를 두른 아랍인이 선창하며 분위기를 띄웠고 붉은 악마가 받아 목청을 높였다.

포르투갈과 스위스의 16강전을 끝으로 카타르월드컵 56번째 경기까지 마무리됐다. 생존 국가가 여덟 곳으로 줄면서 도시는 다소 한적해졌다. 새벽까지 붐볐던 미디어센터는 개막 전처럼 조용하고, 월드컵 특수로 널뛰기했던 관광지 물가도 조금씩 내려가는 중이다. 메시가 슛을 하면 두 손을 들고 허리 굽히며 절을 하는 아르헨티나 사람들과 킬리안 음바페의 손짓 하나에 ‘레미제라블’ 속 한 장면처럼 나부끼던 삼색기를 뒤로하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떠나는 쪽과 남는 쪽 모두에게 축구도, 삶도 계속될 것이다.

도하/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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