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을 강렬하게 위대하게 세우다 - 건축가 정의엽(上) [효효 아키텍트]

2022. 12. 8.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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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회

건축가 정의엽은 <ㅇㅅA>(‘오사’로 발음)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건축주인 서용선 작가 작품에서 강한 자극을 받았다.

양평 문호리 ㅇㅅA. / 사진제공 = 건축가 정의엽
서용선은 <ㅇㅅA>를 정확하게 설명한다. “ㅇ은 영어식으로 ‘오’로 읽고, ㅅA는 사로 읽는다. ㅇㅅ은 공동건축주인 출판사 연립서가의 ㅇㅅ이며, ㅅA는 ㅅ을 중복한 서용선 Archive의 머릿 글자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설명할 줄 알아야 한다.

<ㅇㅅA>를 성(城)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서용선은 설계 초기 미팅에서 정의엽에게 중세 스페인 성곽(城郭)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창문이 거의 없는 육중한 블록 덩어리였다.

그래서인가 < ㅇㅅA >가 서 있는 방식은 독특하다. 홍수 때 물이 차 오르는 저지대의 특성을 반영하였지만 수백 년 전 성 밖 방어 수단인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해자(垓子)가 건물과 일체화된 듯도 보인다. 관습적인 공간의 이미지화 방식에 질문을 던지게 한다.

정의엽은 늘 그렇듯 설계를 진행하면서 건물 자체가 아니라 건축 행위를 통해 새로운 지각 경험을 했다. 그러한 놀라운 느낌을 드로잉으로 남겼다.

서용선 자신이 살고 작업하는 경기도 양평군 소나기 마을에서 멀지 않은 서종면 문호리 일대 일명 가루개 마을에 속한 해당 부지를 매입한 후에는 그 지역이 새롭게 인식되었다. 마치 생애 첫 작품을 컬렉션한 컬렉터가 그 작가와 미술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듯 하였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시작된 서용선의 인간 시리즈는 상징적 풍경과 장소로 적시된 단순·직선적 표현을 배경으로 한다.

베를린 스튜디오2 55.8×76.2cm acrylic, graphite on paper 2006 . /사진 제공 = Suh Yongsun Archive
베를린 스튜디오2 55.8×76.2cm acrylic, graphite on paper 2006 / 제공 = Suh Yongsun Archive

화면의 장소인 지하철, 상점, 사무실 등은 두드러진 격자(格子)·그리드(grid)와 다양한 원색의 조합이 특징이다. 그리드는 근대와 현대가 중첩된 충돌(layers) 느낌을 준다.

설계 방향

건축가는 성긴 강렬한 선과 덩어리가, 단순하면서도 원시적 형태와 불안한 시각적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붉으죽죽한 색이 건축으로 구현되었을 때 낯선 감각을 불러일으켜야 했다.

‘인물의 눈에서부터 얼굴과 신체, 윤곽이나 격자의 선과 여백에 자주 쓰이는 빨간색’에 주목했다. 빨간색은 ‘대상을 여백과 분리 또는 연결하며, 사실적 또는 추상적이기도 하며, 상징인 동시에 심리를 드러낸다’고 보았다.

앉아있는 사람 162×160cm oil on canvas 2008 / 사진제공= Suh Yongsun Archive
건축가는 건축물이 서 있을 대지 주변의 산(초록·노란색)이나 하늘(파란색)에는 잘 보이지 않는 붉은 색 덩어리가 작가의 대표 이미지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 붉은 색은 거대하고 거칠고 시간을 역류하는 것이다. 조적용이나 외피 타일로 쓰이는 벽돌 색과는 달라야 했다.

필자는 작가의 그 붉은 색을 ‘금속에 들러붙은 피 같다’고 표현한 적이 있다. 한국전쟁 세대인 서용선은 죽음 자체, 주검을 익숙하게 보아왔다. 부친은 서울 미아리 공동묘지 일대에 마련한 부지에 군용텐트를 쳐 주거를 대신하였다. 무덤가는 무성한 풀을 쫓는 야생 토끼들이 많았고 아이들은 놀다 종종 제대로 매장되지 않은 거무틱틱한 부패되지 않은 살덩어리를 가진 해골도 만났다.

건축가는 작가의 삶을 관통하며 정서의 저류에 이미지화된 붉은 색을 건물에 입히기로 했다. 예산 부족으로 칼라콘크리트는 배제되었으나 자동차 몸체를 페인트 통에 담겨 건져 올리는 전착도장(塗裝)의 느낌은 나야 했다. 건축가는 건축주 화가에게 선택한 색의 의도를 설명하고 건축에서 유사한 톤이나 사례를 이미지로 보여주며 어떤 느낌인지를 전달했다.

붉은색은 콘크리트스테인을 반투명으로 희석하여 여러 번 칠하여 깊이를 갖도록 만들었다. 콘크리트 바탕 면이 비쳐서 붉은 원색이 무게있게 가라앉으며 표면 상태에 따른 불균질한 다양한 톤의 변화를 예상했다. 페인트 조색(調色) 비율을 찾아 섞었다.

실내 컴컴한 곳에서 조명아래 관람해야 하는 마크 로스코나 바넷 뉴먼의 색면 추상화를 보는 듯 하다.

양평 문호리 ㅇㅅA / 사진제공 = 건축가 정의엽
“그림에서 자주 보이는 격자 형태의 선들은 투시원근법적인 도시 공간의 지각을 형성한다. 거리는 바짝 압축되고, 다른 시간 혹은 공간이 하나의 이미지를 구성한다. 주관적 심리와 실재적 감각 사이에 존재하는 종합적인 지각의 이미지로 보인다. 그림을 보면서 원근법적 공간 지각과 이미지에 대한 의문과 비틀기는 설계 방향이 되었다.” (정의엽)
봉촌동-사당동 200×200cm oil 0n canvas 1995 / 사진제공 = Suh Yongsun Archive
건축가가 본 그림들은 화가가 30여년을 지나다니며 본 서울 관악구의 (서울)대학 주변의 방향성이 뚜렷한 교통표지판과 독일 베를린, 미국 뉴욕 지하철 안의 수직 공간적인 풍경들이다.

궁극적으로는 누구나 익히 알던 건축물, 물질과 색과 빛에 대한 지각을 다시 생각하고 기존 건축 어법이 해체되는 수준이어야 했다.

이러한 방향 설정은 낯선, 새로운, 상식을 깨트리는 평소의 스타일과 ‘건축가는 자기 언어가 분명해야 한다’는 정의엽 건축 어휘와 맥이 닿는다.

건축가나 작가나 관객들로부터 불편한 반응은 피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건축계는 붉은 색 외장은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건축주도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별탈 없는 마감을 선호한다. 옳은 방향은 선택할 수 밖에 없다.

건축가와 화가의 만남

정의엽이 건축 사무소를 개소 후 처음 수주한 프로젝트는 경기도 양평군 문호리. 일명 ‘지형 부양(浮揚)집‘이다. 산자락을 타고 내려온 계곡에 붙은 주택을 눈여겨 보았던 서용선은 작업실이 필요한 제자에게 집을 가보라고 했다. 기존 허가 도면이 있었으나 내키지 않았던 제자는 정의엽에게 설계를 의뢰했다. 양평 서후리, ‘표피 공간(skin space) 스튜디오‘(2010)가 두 번째 프로젝트가 되었다. 2012년 11월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한 면 전체를 할애, 서후리 집을 보도했다.

서용선과 정의엽의 만남은 자연스러웠다. 건축가는 작품 전시와 아카이브 및 예술 전문 출판사를 위한 공간을 의뢰 받고 작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건축주 작가가 요구하는 기능을 수용하는 것에서 머무는 게 아니라 작가가 예술을 행하고 삶을 영위하는 태도와 시선을 ‘건축’에, ‘설계하고 짓는 과정’에 조각하듯이 새겨 넣고 싶었다.

‘건축이 한 예술가가 발견하고 열망한 회화의 세계로 초대하는 하나의 사건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술이 일상의 공간과 삶에 던지는 가치를 미술관 공간 밖으로 확장하여 건축과 도시로 편입시킬 수 있지 않을까’라는 건축가로서의 질문이 프로젝트의 출발이었다.

3년여의 코로나시즌을 관통하며 만들어지는 건축물에는 건축가와 건축주의 숱한 우여곡절이 새겨졌다.

프로젝트가 시작되기 직전 개인사의 큰 변화를 겪어야 했던 정의엽은 인터뷰(11월 28)직후, 부친의 임종을 지켜야 했다.

건축주와 건축가는 품질을 보장할 시공사, 현장소장이라 할만한 이도 찾기 힘들었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자재 값은 20% 이상 올랐다. 국가 대표급 작가인 건축주는 미술 시장이 초호황기임에도 대출을 받아야 했다.

건축가는 어떤 흉터와 주름도 화장술로 감추지 않고 그 자체로 남겨지길 원했다. 본래의 목적을 수행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건축물이 사람들의 지각을 지속적으로 건드리고 흔적을 남기길 바랬다.

도시와 건축에 대한 작가의 시선

서용선은 도시와 건축을 바라보는 자기 세대의 보편적 시각은 반세기 이상을 관통하며 형성되었다고 말한다. “1950년대 삶의 출발이었던 터전과 어쩔 수 없는 상황, 성장 일로를 치닫던 1960~1970년대의 개발 연대를 거쳐 1990년대에서야 여유를 가지며 개념이 생겼다.”

한국 건축은 1980년대와 19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의 본격적 상륙을 맞이한다.

서용선은 뒤늦게 입학한 관악구 (서울)대학을 70년대 중반부터 2008년 모교 교수를 그만둘 때까지 30여년간 돈암동 집에서 버스와 승용차로 다니며 서울을 형태적으로 관찰했다. “도시 건축적 환경이 내 그림을 만들었다”

작가가 인지하고 지각한 도시·건축이 회화 작품이 되었고 건축가는 그림에서 건축을 다시 끄집어 내었다. 작가가 공간에서 포착한 많은 요소 중 유니크한 측면을 뽑아내는 작업이었다.

시대성이 반영된 현대적이고 직선적 그림에서 삶의 기본적인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 건축 구현을 위한 읽어내기는 그 과정이 지난했다.

양평 문호리 ㅇㅅA 3층 전시장 / 사진제공 = 건축가 정의엽
건물 좌우의 두꺼운 기둥과 보(beam)만으로 하중을 견디도록 했다. 석고보드도 없애는 등 내외부 통틀어 매끈한 마감이 거의 없다. 그림에 거친 붓 자국이 남듯이 건축 과정도 드러나야 했다. 강도가 다른 시멘트를 사용한 맨 위층도 의도된 것 아니냐는 질문도 받는다.

서용선의 불상(佛像)으로 대표되는 목조 인물상은 망치와 끌, 대패 등으로 장작을 패듯이 윤곽만 다듬었기에 물성을 투과하는 빈 공간(void)이 보인다. 건축가는 여기서 모티프를 얻어 건물 전체를 하나의 인물 두상 작품으로 보고 빈 공간을 계단참으로 정해 놓고, 계단으로 이었다.

건축 대학에서 회화 읽어내기를 가르쳤던 정의엽 자신이 건축 작품으로 실재화 하였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새로운 발상은 예술만이 가능하다고 본다. 새로움의 극단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했다. 미술이 건축적이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양평 문호리 ㅇㅅA / 사진제공 = 건축가 정의엽
건축가는 주어진 대지 끝 단에 건물을 바짝 붙였다. 그림을 담는 캔버스를 연상하듯 납작한 박스를 벽면에 붙인 형국이다.

건축가는 건축물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캔버스로 보여지듯 전면의 도로를 차로 주행하면서, 보도에 걸어가면서, 컴퓨터로 수십 차례의 시뮬레이션을 거쳤다.

건축주의 뜻대로 건물 전면(북서쪽)에 창을 내지 않고 배면(남쪽)으로 창을 내었다. 배면에서 떠 오른 햇살은 고요한 ‘빛의 우물’(井)을 이루며 마치 외계인들이 타고 온 비행 접시가 실내를 순찰하듯 공간을 배회하며 오후의 시간을 맞이한다.

그 날 필자는, 회화 작품의 액자 프레임 틈으로 걸어 들어가 인터뷰하며 와인을 마셨다.

미술이 건축 안에 있지 않다

서용선은 독일을 예로 들며, 회화, 드로잉, 판화, 출판이 같이 간다고 말한다. 한국의 대학은 1945년 해방과 이은 3년여의 미군정의 영향으로 미국 시스템을 받아들여 본질적인 미술의 영역들이 분리되어 시간의 누적만큼 폐해가 커졌다. ‘캔버스에 그림 그리는 것’만을 미술이라고 생각한다.

정의엽은 건축 또한 전향적 논리에 갇혀 색의 담론에 접근하지 못하게 차단되었다고 말한다. 한국의 미술이나 건축은 신기능주의에 빠져버렸다고 비판한다.

건축주 서용선은 <ㅇㅅA> 준공 기념으로 정의엽에게 설계 과정 및 건축드로잉 전시를 제안하였고 건축가는 건축에 영감을 준 작가의 작품을 같이 전시하자는 희망을 말하였다.

메타박스(METABOX) 전시 ‘평면과 입체 사이 : 공간을 어떻게 지각하고 이미지화 하는가?‘는 건축가의 작업에 영감을 준 서용선의 회화 작품과 건축가의 건축 설계 과정을 보고 건축물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전시는 12월 9일까지 이다. <ㅇㅅA> 주소는 경기도 양평군 문호리957-1이다.

[프리랜서 효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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