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와사람 문화공간으로 진화… “원색 빛에 스민 자연의 힘으로 평온함 전달”

김예진 2022. 12. 8.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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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활동 작가 이현, 9년 만의 개인전
컬러풀함 속 자연의 평온함
강금실 전 법무장관 이끄는 ‘지구와사람’
환경 문제의식 공유하는 예술 공간으로
어둠은 아래로 가라앉고 그 위로 흰 양 떼가 구름처럼 몽글몽글 몰려온다. 대지는 점점 밝아진 노란빛으로 이내 가득 차오른다. 멀리 수평선이 공간을 경계 지을 때까지, 땅 위가 희망의 빛으로 물들었다. 이 그림을 그린 작가는 “작업 중이던 어느 날 새벽, 이상한 소리가 나 창문을 열어봤더니 공원에 엄청나게 많은 양들이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어스름한 가운데 형태만 살짝 비쳤던 양 떼가 지나가고 잠시 후 동이 트며 해가 떠올랐다. 양 떼가 아침을 데려왔구나 싶었다. 꿈인가 싶은 장면이 너무 특별해 작업으로 남겼다”고 말했다.
‘양 떼, 아침을 열다’(2011)
서울 용산구 회나무로에 위치한 ‘지구와사람’이 갤러리로 변신해 이현 개인전 ‘색채유희’를 최근 시작했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활동해온 이현(64) 작가가 9년 만에 국내에서 여는 개인전이다. 신작을 포함해 약 20점을 선보인다.
이 작가는 빨강, 노랑, 파랑, 초록 등 원색의 화려한 색감으로 특유의 평온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작가다. 원색의 강렬한 색감을 쓰면서도 튀거나 다투지 않고, 스며들듯 관람객에 온기와 생명감이 전해진다.
‘양귀비 피다’(2011)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서구의 과학은 빛의 삼요소, 색의 삼요소로 각각 빨노초, 빨노파를 규명하고, 이들이 섞여 백이 되고 흑이 된다고 했다. 동양 철학에서도 이 다섯 색은 오방색으로 불리며 세계와 물질의 가장 본질을 상징하는 의미로 여겨진다. 이탈리아로 넘어가 그림을 하면서 서구 사회 속 동양인으로서 서양적인 것과 동양적인 것에 차이는 없다는 걸 발견했다. 결국 본질은 같은 것이다. 이 조그만 지구 안에서 차이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회화의 가장 기본, 색의 가장 기본인 것만으로 그림을 만들어 보리라 결심했고 이탈리아의 치니(CINI)문화재단 전시 때 관람객과 교감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한 뒤 이같은 작품을 이어어고 있다”고 덧붙였다.
자연을 표현한 원색 풍경화에선 자연이 가진 치유의 힘이 느껴진다. 작가의 경험이 자연스레 녹았다. 작가는 “나란 사람은 어두운 인간이었고 비관적이고 비판적이며 저항성이 강한 성향이었다. 이런 것들이 삶을 압도해오자 힘이 들었는데 로마의 햇빛을 만나면서 변화를 겪었다”고 말했다.
‘방랑’(2013)
이번 전시는 작품 속에 녹아있는 자연친화적 성격과 공간의 지향점이 어우러지는 전시다. 이현 작가가 재단법인 ‘지구와 사람’을 후원하기 위해 9년 만의 한국 개인전 장소로 택했다. 수익금을 재단에 기부할 예정이다. 1997년부터 이 작가와 교류해온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 이사장으로 있는 ‘지구와사람’은 생태대(Ecozonic Era·생명공동체)의 문명을 지향하는 연구모임에서 출발해 2020년 설립됐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사무국을 두고 연구, 강연, 세미나 등을 진행하는 학술공동체로 가동되던 것을 최근 용산 경리단길로 이전하면서 복합문화공간으로 발전시켰다. 삼청동 사무국 시절이 ‘지구와사람 시즌1’이었다면, 이제 ‘시즌2’를 열면서 공연, 미술 등 예술 활동을 겸해 누구나 접근하고 소통할 수 있는 대중적인 공간으로 만들겠단 계획이다. 미술계에 시장이 비대해지는 데 반해 담론 생산의 장이 부족한 가운데, 예술을 통해 환경·생태이슈에 전문화된 문화공간으로 기대된다. 전시 기획자로 나선 이는 대학로 유명 극단 ‘차이무’ 출신 강영덕 배우다. 재단 설립 때부터 내부 행사로 진행한 공연과 퍼포먼스, 영상 작품 등을 직접 기획, 수행해왔고 2021년 ‘펼쳐진 구’, 2022년 ‘반려 지구’ 전시를 기획하기도 했다. 강영덕 문화예술팀장은 “이번 전시는 공간과 작품의 일치를 통해 더 큰 공감을 끌어내고자 했다”고 밝혔다.
기자간담회에서 이 작가와 함께 전시 설명에 나선 강 이사장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리추구다. 진·선·미 중에서 선만 추구하면 역설적으로 추악해질 수 있고, 선을 상실한 채 미만 추구하면 파시스트의 아티스트가 되는 경우도 나온다. 재단은 학술공동체로 출발했지만, 진·선·미의 결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봤기에 예술과의 융합을 지향했고, 대중과 호흡할 수 있는 계기도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현 작가와 강금실 ‘지구와사람’ 이사장이 전시장에서 함께 작품을 소개하는 모습.
12월 31일까지.

글·사진=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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