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밥에 집중하는 거북이

이유리 소설가·소설집 ‘브로콜리 펀치’ 2022. 12. 8.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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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한상엽

거북이 한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이름은 무. 김수한‘무’거북이와두루미… 에서 따온 이름이다. 무는 이스턴 머드 터틀이라는 종으로 다 자라도 등갑이 십오 센티미터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거북이다. 녀석은 올해 3월, 부화한 지 3주 만에 우리 집에 왔다. 손가락 두 마디만 했던 덩치가 지금은 손바닥만 하게 커졌다. 밥도 어찌나 많이 먹는지, 처음에는 절반 크기로 잘라 주어야 했던 사료를 이제는 두세알씩 한입에 꿀꺽꿀꺽 삼킨다. 물론 똥도 푸짐하게 싼다. 거북이 어항이 얼마나 빨리 지저분해지는지 알면 깜짝 놀랄 것이다.

처음 거북을 기르고 싶다고 생각했던 건 거북이 가진 정적인 이미지 때문이었다. 느리고, 차분하고, 묵묵한 생물. 그런 생물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왠지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매사에 일희일비, 여름 해변의 불꽃놀이처럼 감정을 팡팡 터뜨릴 줄만 아는 경박한 내가 싫었다. 거북과 눈을 맞추고 차분히 집중하면서 그런 나를 가라앉히는 연습을 해야지. 그런 마음으로 만난 것이 무였다.

그런데 웬걸. 거북은 내가 생각한 것과는 너무 다른 동물이었다. 무는 처음 우리 집에 온 날부터 온종일 수조 안을 빨빨거리며 돌아다녔다. 바닥에 깔아놓은 자잘한 자갈돌을 달그락달그락 헤치는 소리가 다른 방에 있어도 들릴 정도였다. 밥을 주려고 다가가면 신이 나서 미친 듯이 입질을 했고 덕분에 애꿎은 손가락을 여러번 깨물렸다.

반년이 넘도록 무와 함께 지내며 알게 되었다. 무의 관심사는 오로지 먹는 것뿐이었다. 나를 알아보는 것 같지도, 딱히 장난감이나 놀이를 원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저 눈앞에 먹이가 있으면 먹고, 없으면 먹이를 찾아서 돌아다닌다. 나머지 시간엔 먹이를 찾을 힘을 비축하기 위해 쉰다. 가끔 햇빛도 쬐고. 그게 무의 하루 일과의 전부였다.

계획과는 전혀 달랐지만, 어쨌든 그런 무에게서 나는 무언가를 배우긴 했다. 단 한 가지에 초점을 맞추고 단순하게 사는 방법이랄까. 복잡한 문제를 쉽게 만드는 방법은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것에 집중하면 자잘한 고민들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고 그러면 모든 게 조금은 더 수월해졌다.

비록 나는 아직도 일희일비하는 가벼운 인간이긴 하지만, 그건 차차 나아지겠지 뭐. 단순하게, 단순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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