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의 눈] 윤 대통령은 바이든의 파업 원천봉쇄 권한이 부럽나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의회가 개입해 예정된 철도파업을 무산시킨 뉴스가 주목받았다. 지난달 24일 시작된 화물연대 파업과 여러모로 비교되기 때문이다. 미 정치권의 철도파업 무산 조치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바이든이 의회에 개입을 요청한 때는 지난달 28일(현지시간)이다. 그로부터 사흘 만에 하원과 상원은 철도노사 잠정합의안 강제법안을 처리했고, 바이든은 이튿날인 지난 2일 서명했다. 요청에서 서명까지 나흘밖에 걸리지 않았다. 반면 윤석열 정부는 화물연대 파업 닷새 만에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지만 파업 사태는 보름이 되도록 해결 기미가 없다. 너무나 대조적이다.
미 행정부와 의회가 철도파업을 원천봉쇄한 근거는 100년이 다 돼가는 철도노동법이다. 이 법은 철도 및 항공 분규 해결을 위해 1926년에 도입됐다. 역대 19번째 개입이지만 30년 만의 일이라 주목받기에 충분했다. 개입 이유는 파업에 따른 국가경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미 철도화물은 전체 화물 수송량의 40%를 차지한다. 사측은 하루만 중단되어도 20억달러 손실이 생긴다고 주장한다. 파생 손실까지 감안하면 피해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는 노동자의 안전을 무시하는 반쪽 논리일 뿐이다.
미 철도노조의 핵심 요구사항은 유급병가 보장이었다. 유급병가는 회사에서 ‘병가’를 인정하는 경우 급여를 받고 합법적으로 쉴 수 있는 휴가다. 미국은 38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이 제도가 없는 두 나라 중 하나다. 다른 나라는 한국이다. 정부는 지난 7월부터 상병수당 제도를 시범 실시 중이다. 미 16개주가 도입했지만 철도노동자에겐 ‘그림의 떡’이다. 미 철도노조의 요구는 코로나19 영향 등으로 유급병가를 강화하는 다른 나라 사례가 자극제가 됐다. 실제로 지난 6년 동안 철도노동자는 30%가 줄었다고 한다. 장시간 노동에 따른 과로사 등 피해 사례가 잇따를 수밖에 없다. 애초에 미 철도노조는 ‘15일 유급병가’를 요구했지만 개인 유급휴가 1일만 추가됐다. 민주당 상원 진보파가 제안한 ‘7일 유급병가’도 부결됐다. 미 철도노조는 자신들이 지지한 대통령과 민주당에 배신당했다는 사실에 무엇보다 분노했다. 그런데도 미 행정부는 임금인상폭(2024년까지 24% 인상)을 성과로 강조한다. 이조차도 철도업체의 수익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일 뿐이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7일 유급병가를 보장하는 데 철도업계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전체 이익의 2% 미만”이라고 했다. 막판 정부 개입으로 사측의 양보안을 얻지 못한 것도 분노를 촉발시켰다. 노조의 협상력을 위축시켰기 때문이다.
화물연대는 과적과 과로, 과속 위험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파업을 시작했다. 2020년 1월 ‘3년 일몰’ 조건으로 도입된 안전운임제의 일몰제 폐지와 품목 확대 요구는 당연하다. 정부가 지난 6월 계속 논의하기로 한 합의를 지키지 못한 탓도 크다. 그런데도 정부는 2004년 발효된 화물자동차운수노동자법에 근거해 지난달 29일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다. 이 조치가 헌법에 위배되고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에 위반된다는 각계의 우려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경찰을 동원한 조사와 인신구속 협박을 일삼으면서도 파업 사태 해결을 위한 야당의 중재 제안은 거부하고 있다. 국민의힘 정우택 국회부의장은 지난 5일 “우리보다 경제 사정이 어렵지 않은 미국 정치권이 뜻을 모아 철도파업 금지법을 의회에서 통과시켰다”고 했다. 초당적 협력으로 파업 사태를 풀자는 말인데, 어불성설이다.
두 파업은 차이점이 많지만 결정적인 것은 파업을 대하는 대통령의 태도다. 바이든은 법안에 서명하면서 “그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며 “난 우리가 이번에 통과시킨 법안에서 그것을 확보할 수 없었다고 해서 멈출 것이라고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앞으로 ‘7일 유급병가’가 통과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노조 반발 무마용 발언일지언정 염치는 차린 셈이다. 반면 윤석열 대통령은 파업을 범죄시하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전가의 보도처럼 법과 원칙을 강조하지만 헌법의 기본권조차 부인하는 반노동주의자일 뿐이다. 어쩌면 파업을 원천봉쇄할 권한이 있는 바이든이 한없이 부러울 수 있겠다. 그래서 지금을 미국처럼 화물연대 같은 필수노동자의 파업권을 근본적으로 제한하는 법을 강화할 절호의 기회로 여길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국제적 망신을 당하는 일이 없길 바랄 뿐이다.
조찬제 논설위원 helpcho65@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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