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정치와 버라이어티쇼

국제신문 2022. 12. 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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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독일 통일 전, 서독 연방내각정부의 3대 총리였던 쿠르트 키징거가 “나는 파워풀하게 정치를 하겠다. 그러나 파워를 버라이어티쇼에서처럼 국민에게 보여주진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키징거 총리는 1966년부터 1969년까지 2년10개월의 짧은 임기를 지냈다. 역대 독일 총리 중 임기 짧은 총리로서는 톱클래스에 든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키징거 총리는 ‘코끼리의 결혼식(대연정)’에 합의해 놓고 주위를 속일 만큼 재주가 좋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중재와 협치에 능한 정치인이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나치정권에 부역한 전력으로 18개월간 수감생활을 한 키징거는 기독교민주연합(CDU)을 통해 정치에 입문했고, 총리 임기 동안 사회민주당(SPD)과의 대연정을 성사시켰다. 키징거 총리의 내각은 반나치 운동가였던 브란트 부총리 겸 외교부장관, 사회민주주의자인 하이네만 법무부장관, 공산주의 경력을 가진 베너 통일부장관, 그리고 강경 우파인 슈트라우스 재무부 장관 등으로 구성됐다. 내각책임제 정부가 아니고선 상상도 하기 힘든 조합이었다.

정치 교과서에서 의원내각제의 대표적인 약점으로 거론되는 것이 정치의 불안이다. 정당민주주의 국가에서 어느 한 당이 절반을 넘지 못하고 연립정부를 구성하기 위해 이합집산하는 것은 정치의 혼란과 불안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의원내각제를 반대하는 결정적인 이유로 꼽힌다. 그런데 똑같은 분단국가였던 독일에서는 자유민주주의 진영인 서독의 의원내각제 정부가 1945년 분단됐던 독일을 1990년에 통일시켰다. 1969년 사회민주당 소속의 빌리 브란트 4대 총리가 동방정책을 추진하고 기독교민주연합의 헬무트 콜 6대 총리가 동방정책을 계승함으로써 독일 통일의 교두보가 완성됐다.

다당제에 기반한 의원내각제는 권력을 효율적으로 분산해 독재의 가능성을 최소화시킨다.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이전 정부의 정책을 계승하며 발전시킨다. 오랜 경험을 갖춘 정치인의 경륜과 소신을 바탕으로 한 협치가 정책의 장기적 지속을 가능하게 한다. 내각제에 대한 비판 중, 젊은 총리가 출현해도 그 총리의 배후에는 구태 정치 세력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정치가 아니라는 지적이 있다.

세습정치와 결합된 일본의 내각제를 내각제의 표본인 것처럼 오도하지 말자.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선거는 초선 당선 비율이 높은 선거이다. 올해 대통령 선거에서도 정치 신인이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한민국의 유권자는 일본의 유권자와는 다르다. 그런데 이러한 정치 신상품을 선호하는 투표 경향이 도박처럼 흘러갈 가능성이 있어서 걱정이 앞선다. 모 아니면 도, 대박 아니면 쪽박. 쓰피똥치, 쓰레기차 피하려다 똥차에 치일 수도 있다.

키징거 총리는 중재의 달인답게 다양한 정파 소속의 장관들을 초대해, 때로는 야외에서도 내각회의를 주재하며 정파 간 화합을 끌어내기 위한 노력을 했다고 한다. 이 내각 회의에서 의견 충돌이 해소되지 않으면 키징거 총리의 다음 단계는 개별 면담이었다고 한다. 전체 내각 회의 외에도 소규모 회의를 자주 열었다고 한다. 자주 만나 주요 현안을 논의하며, 주로 경청을 했다고 한다. “포도주에 진리가 있어요”라며 와인을 마시면서 타협과 중재를 모색했다고 한다.

애주가인 윤석열 대통령의 음주습관이 정치적 논쟁으로까지 비화되는 것이 같은 애주가로서 마음이 아프다. 대통령이라고 술 못 마시나. 다만 임기 5년 동안은 술도 개인 취향을 넘어서 정치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야당 인사를 포함해 윤 대통령이 국정운영 철학이 다른 사람과도 술 한 잔 하며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술은 효과적인 아이스 브레이커일 수 있다. 소원한 관계를 가까이하는데도 효능이 있고, 성급하게 약속했다가 오리발 내미는 핑계로서도 유용하다. 그런데 지금과 같이 진영정치의 양극화 상황에서는, 특히 승자독식의 대통령제하에서는 화합의 술 한 잔은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통합의 리더십이 거론돼 왔다. 현재 시점에서 통합의 리더십의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쇼라도 좋다. 통합까지 갈 것 없이 화해와 협상의 제스처라도 버라이어티하게 보여줬으면 좋겠다. 쇼도 안 되면 내각제로 가자.

차동욱 동의대 행정정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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