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만 한 닭, 하늘엔 에펠탑… 뇌전증 화가가 탄생시킨 ‘환상의 세계’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2022. 12. 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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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 속 의학] [39] 샤갈의 ‘에펠탑의 신혼부부’
/프랑스 퐁피두센터 소장

마르크 샤갈(1887~1985년)은 러시아 제국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활동한 화가다. 그는 유대인 부부 아홉 자녀 중 첫째로 태어났다. 비록 가난했지만, 화가 재능을 알아보고 격려해준 어머니 덕에 미술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다. 20대에 프랑스 파리로 가면서 야수주의, 입체주의 등 새로운 미술 양식에 영감을 받는다. 이때부터 환상적이고 공상적인 요소가 가미된 독창적인 화풍으로 그림을 채운다.

‘에펠탑의 신혼부부’<사진>는 샤갈이 51세에 그렸다. 그림에는 계란 프라이같은 태양이 하늘에 떠 있고, 수탉이 사람 몸만 하고, 염소와 바이올린이 한 몸이다. 집은 매우 작고, 나무는 엄청 크다. 신랑, 신부, 닭, 염소, 천사 등 등장인물이 죄다 착해 보이고, 다들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이다. 마치 꿈속 장면 같다.

샤갈은 이처럼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그림을 즐겨 그렸는데, 이는 샤갈이 앓은 뇌전증과 연관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최호진 한양대구리병원 신경과 교수는 “의학계에서는 뇌전증 발작 전조 증상으로 종종 나타날 수 있는 환시가 샤갈의 작품에 영향을 준 것으로 추측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예전에 간질 발작으로 불렸던 뇌전증은 전기신호로 이뤄진 뇌에 합선이 일어나 스파크가 튀는 현상이라고 보면 된다”며 “선천적인 질환으로 생길 수 있으나, 외상이나 뇌종양으로도 생긴다”고 말했다.

환시를 겪는 많은 뇌전증 환자들은 공포감 혹은 다시 겪기 싫은 불쾌감으로 힘들어한다. 샤갈의 아내 벨라는 종종 발작을 일으키고 말을 더듬기도 한 샤걀을 편견 없이 헌신적인 사랑으로 보살핀다. 그 덕에 샤갈은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최 교수는 “의학의 발전으로 뇌전증 환자들이 적절한 약물 치료로 일상은 물론 직장 생활도 가능하다”며 “뇌전증 환자는 피해야 한다는 근거 없는 편견을 버리고 그들을 이해하고 챙겨주면 주변서 많은 샤갈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흔히 연애는 꿈이고 결혼은 현실이라고 한다. 샤갈의 그림은, 신혼부부는 그 중간쯤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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