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플라자] 어느 ‘간호사 아버지’와 한 대화

박소진 간호사 2022. 12. 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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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몇 년 차예요?” 재직 중인 병원에서 근무한 첫날. 중년 남성 환자가 내게 물었다.

“6년 차예. 왜요?” 불편한 기색을 살짝 묻혀 대답했다.

“처음 오신 분인 것 같아서요. 선배들이 잘해줘요? 여기도 태움 같은 거 있어요?” “아뇨. 다 잘해주세요.”

이런 짓궂은 질문은 병원을 옮길 때마다 듣는군, 속으로 생각하며 대답을 짧게 했다.

“내 딸아이도 간호사인데 선생님이랑 나이가 비슷할 것 같아서요. 처음에는 큰 병원에서 일했는데 맨날 울면서 다니더니 얼마 못 가 그만두더라고요. 그렇게 힘든가요?”

좀 더 대화해보니 그저 딸의 힘듦을 이해하고 싶은 아버지로서 한 질문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내 마음은 누그러졌고 일면식도 없는 간호사에게 동료애마저 느꼈다. 나 또한 같은 경험이 있기에 딸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열심히 대변해 주었다.

자녀 얼굴을 못 본 지 10년이 넘었다는 환자 말에 의아해 이유를 물었다.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은 지 오래됐다는 대답을 듣고 재빨리 환자 차트로 눈을 돌렸다. ‘Blind’라고 적힌 작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모두 침대에 있는 TV를 볼 동안 정자세로 누워 하늘만 보고 있던 모습이 그제야 이해가 됐다.

“정말 죄송해요. 제가 미처 파악을 못 했어요.” “하하 괜찮아요. 선생님 목소리는 참 비타민 같네요. 밝아서 듣고 있으면 힘이 나요.”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을 만큼 믿기 힘든 따스한 말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라 말문이 막혔다.

“감사해요. 많이 들려드릴게요.” “그래주시면 고맙죠.”

환자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는 순간, 대학생 시절 교수님이 해주신 이야기가 떠올랐다. “너희는 그저 너희 일을 하는 것이지만 고맙다는 말을 많이 듣게 될 것이다. 환자의 정신적, 육체적 상태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는 말이었다. 정말이지 간호사로서 일을 하면 할수록 더욱 와 닿는 말이다. 그저 맡은 업무를 하는 것뿐인데 내게 고마워하고 목소리만으로 힘이 된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니. 참으로 신기한 직업이다.

그동안 기억에 남는 환자나 에피소드가 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그럴 때마다 할 말이 없었다. 내게 감동적인 이야기를 기대하는 것 같았지만 막상 떠오르는 건 전부 부정적인 것뿐이었다. 힘이 되는 말을 듣기보다는 해줘야 하는 직업이고, 건강을 되찾는 케이스보다는 안타까운 임종이 기억에 잘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고 나서 누군가에게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해줄 말이 생긴 것 같았다.

환자의 따스한 말을 들었을 때 마냥 감사한 건 아니었다. 사실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다. 환자 파악은 제대로 하지 않고 흔히 말해 영혼 없이 일하던 중 너무나도 과분한 이야기를 들었으니 민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간호는 이게 아닌데 싶었다.

간호사마다 다르겠으나 내가 정의하는 간호란 교수님 말씀처럼 환자의 정신적 지지를 돕고, 꼼꼼하게 신체 사정(査定)을 하는 것이다. 간혹 내게 마음을 열지 않고 아픈 곳을 묻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땐 사적인 이야기까지 꺼내가며 환자와 친해진 다음 자세한 정보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간호사로서 일을 할수록 내가 내린 간호의 정의가 흐려지는 느낌이 들었다. 환자 치료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정보는 잘 살피지 않게 되었다. 그것이 효율적 간호 방법은 아니라고 스스로 타협해왔던 것 같다. 그러다 갑작스러운 환자의 순수한 응원을 들으니 그동안 잊고 있던 간호 개념이 선명해지는 느낌이었다. 부끄럽지 않은 간호를 하고 있는지, 효율을 핑계로 게을러지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초심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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