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연금개혁의 새 흐름
밀린 숙제를 처리하듯 이제야 연금개혁 논의가 바쁘게 돌아간다. 국회 연금특위에 설치된 자문위원회가 매주 열리고, 보건복지부는 제5차 재정계산 위원회들을 모두 가동하기 시작했다. 국민연금연구원,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한국연금학회 등 전문기관에서도 실제 논점을 가지고 연이어 토론을 벌인다. 여러 자리에 참여하다 보니 이번에는 의미 있는 연금개혁이 이루어지리라는 기대도 생긴다. 평행선을 달리던 예전과 달리, 연금개혁 방향에서 일정한 흐름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우선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이 짝으로 다루어진다. 이미 운영되는 두 제도를 함께 개혁하는 건 당연하다 여기겠지만, 지난 4차 재정계산까지도 노후소득보장 강화는 ‘국민연금’이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했고, 두 연금을 동시에 바꿀 경우 정치적 부담도 작용했다. 문재인 정부의 복수안도 사실상 국민연금 개혁에 집중하였고, 기초연금 인상안은 국민연금은 건드리지 않는 방안이었다. 이번에는 두 연금 모두에서 노후소득 보장과 지속 가능성을 모색한다. 나아가 기여 수준이 국민연금 보험료율과 비슷한 퇴직연금의 역할도 명확히 정하려 한다. 법정 제도로 국민연금, 기초연금, 퇴직연금이 존재하는 만큼 세 연금으로 노후를 준비하는 다층보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각 연금의 개혁에서도 이견이 좁혀지는 모양새이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 여부는 늘 첨예한 쟁점이었다. 보장성과 지속 가능성, 어느 쪽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양쪽이 팽팽히 맞서 왔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점차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올리자는 목소리의 강도가 약해지는 듯하다. 2007년 연금개혁 이후 15년 동안 국민연금 개혁이 지체되면서 미래 지속 가능성을 향한 압박이 훨씬 커졌고, 소득대체율을 인상한다면 2028년까지 40%로 예정된 단계적 하향을 멈추는 방식이 유력했는데 이미 인하가 상당히 진행되어 멈춤의 실효성도 크지 않기 때문이다. 소득대체율 인상을 강력히 주장하던 민주당이 2020년 총선부터, 정의당은 2022년 대선부터 인상안을 공약에 담지 않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대신 부족한 보장성을 보완하는 대안으로 기초연금이 부각된다. 지난 대선에서도 여야 후보 모두 기초연금 인상을 약속했고 윤석열 정부는 국정과제로 40만원을 명시했다. 국민연금에서 미래세대 부담을 생각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부족한 노후소득보장은 기초연금과 퇴직연금으로 보완하자는 다층보장 인식이 자리잡은 결과이다.
앞으로 뜨거운 토론은 기초연금을 중심으로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연금은 단계적 보험료율 인상으로 방향이 잡혀가고 있으나 기초연금은 금액과 대상을 두고 의견이 다양하다. 사실 현행 기초연금은 설계가 매우 애매하다. 소득보장 제도이면서도 선정 기준이 특정 소득이 아니라 노인 비율이다. 2007년 처음 기초연금(당시 명칭 기초노령연금)을 도입할 때, 하위 노인 45%를 대상으로 삼자는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의 제안과 모든 노인에게 보편적으로 지급하자는 한나라당 방안이 각축을 벌이다가 맺은 절충이 70%이다.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노인 비율’ 기초연금이 탄생한 것이다. 기초연금 40만원 인상 추진을 계기로 대상 기준, 금액 수준 등 재설계를 위한 대토론이 벌어지기 바란다.
노후소득보장에서 하위계층 노인에 대한 강조도 주목할 만하다. 연금개혁에서 준거는 늘 평균소득자였다. 노인빈곤이 심각한 우리나라에서 평균 중심 접근은 가난한 노인을 외면할 우려가 있다. 문재인 정부가 연금개혁의 목표로 설정한 ‘최저노후생활보장’ 역시 평균소득 가입자 기준이었다. 어느 입장에 서든 모두 하위계층 노인의 급여액을 높이려 한다. 저소득 가입자에게 국민연금 보험료 지원을 확대하자는 주장이나, 기초연금을 하위계층 노인일수록 지급액이 많은 최저보장 방식으로 전환하자는 제안 모두 같은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연금 선진국들도 공적연금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중시하면서도 저소득 노인의 보장성은 두껍게 하는 걸 보면, 빈곤노인 소득보장이 현시대의 핵심 과제인 건 분명하다.
물론 연금개혁의 길이 평탄하지는 않을 것이다. 수많은 이해관계 주체들이 지켜보고 있어 언제든 긴장과 갈등이 생길 수 있다. 이 험로에서 꼭 필요한 게 나침판, 즉 미래 연금 비전이다. 시민들이 연금을 불신하는 건 현재보다는 미래의 불안정 때문이다. 앞으로 각 연금의 구체적 개혁안을 마련하면서 중장기 연금개혁 로드맵도 함께 제시하고 널리 토론하자. 이는 1988년 국민연금 도입 이래 처음으로 종합비전을 세우는 일이며, 이제 본격 가동하는 연금개혁 기구들에게 부여된 미션이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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