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기의 시시각각] 착각은 자유라지만…

김현기 입력 2022. 12. 8. 00:54 수정 2022. 12. 8.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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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맨의 상위 5%, 우월의 착각
가토·MBC 대응, 비현실적 착각
친문 "우린 괜찮아", 거대한 착각

김현기 순회특파원 겸 도쿄총국장

#1 2009년 일본의 저명한 신문사 회장이 삼성그룹 영빈관인 승지원에 초대를 받았다. 식사 중 갑자기 이건희 회장이 이렇게 물었다. "조직 통솔의 큰 원칙이 뭐라고 생각하나."

신문사 회장은 이렇게 답했다. "343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조직에나 리더, 허리, 반대세력이 있지 않느냐. 난 이 비율을 30%, 40%, 30%로 끌고 가는 게 이상적이라고 본다."

곰곰이 듣던 이 회장의 답변. "난 다르게 생각한다. 595라고 생각한다. 소수 엘리트 핵심 5%가 조직을 이끌고, 90%의 사람은 시키는 일을 하고, 나머지 5%는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다. 위 5%를 어떻게 키우고, 밑 5%를 어떻게 잘라내느냐가 조직 통솔의 핵심이다." 두 사람의 이 대화를 이재용 당시 전무가 옆에서 듣고 있었다고 한다.

13년이 지난 대화를 최근 들려준 신문사 회장은 "난 상위를 30%, 이 회장은 5%로 봤다. 당시는 '이 회장, 참 냉철하구나'라고 느꼈지만 지금 와 곱씹어보면 삼성의 성공은 조직원 모두가 자신이 상위 극소수인 5%라는 '착각'을 갖게끔 한 결과일 수 있다"고 했다. 심리학자 셸리 테일러가 말하는 우월의 착각이다. 긍정적 착각이다.

#2 비현실적 착각도 있다. 윤석열 정부의 MBC에 대한 대응이다. 강경 대응에 대한 찬성여론이 높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착각이고, MBC가 정신차릴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환상이다.

나는 MBC 사태 초기부터 일본 산케이신문 가토 서울지국장 사건을 떠올렸다. 그는 2014년 '박근혜 대통령 (세월호)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 누구와 만났을까'라는 제하의 칼럼을 게재했다.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고 풍문을 편집해 악의적으로 쓴 글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이 지난 2015년 3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속행 공판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청와대는 격앙했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에는 '산케이 잊으면 안 된다-응징해줘야. 추적하여 처단토록 정보수집"이란 '윗선'의 지시가 적혀 있다. 말 그대로 검찰은 가토를 출국 금지하고 기소했다.

하지만 결국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애초부터 비방 목적을 입증하기 힘들었다. 당시도 일부에선 "가토만 영웅 된다"고 우려했다. 실제 그리됐다. 아베는 귀임한 가토를 총리 관저로 불러 위로했다. 가토의 책 『나는 왜 한국에 이겼나. 박근혜 정권과의 500일 전쟁』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는 현재 고액 연봉의 내각조사실 내각정보분석관에 발탁됐다.

MBC의 시청률 상승, 슬리퍼 신고 대통령에게 고함을 질렀던 기자의 우수상 수상 소식은 가토 사건의 데자뷔다. 시쳇말로 죽 쒀서 개 준 꼴이다.

#3 그렇다면 착각의 정상은? 시인 박노해는 "나만은 다르다. 이번은 다르다. 우리는 다르다"를 '거대한 착각'으로 묘사했다. 그렇다. 문재인 정부 고위 인사들이 딱 그렇다. 취임 직후 "우리의 '적폐 청산'은 과거의 정치보복과 다르다"고 했다. 촛불로 모든 걸 정당화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2017년 7월 청와대에서 임명장 수여식을 마친뒤 문재인 대통령이 각료 및 청와대 측근 인사들과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권한도 없는 대통령 비서실장이 각 부처에 "적폐청산 전담반 구성 현황을 회신하라"는 공문을 보내고, 보수 정권 사람들을 1000명 넘게 불러들이고 200명 넘게 잡아 구속했다. 대통령 2명, 대통령 비서실장과 국가안보실장, 박근혜 정부 국정원장 3명 전원을 감옥에 보낸 희대의 정권이었다.

그렇게 광란의 마녀사냥 끝에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고선 정권이 바뀌니, 서훈 전 국정원장 한 명 구속되니, "전방위 정치 보복이 시작됐다. 윤 대통령은 비겁하다"(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정치 보복에 희생양이 되는 것을 목도하고 있는데 윤석열 정부는 전혀 반성도 없이 더 날뛸 듯한…"(윤건영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윤 대통령은 '정치 깡패'"(고민정 전 청와대 대변인) 등의 험한 말들을 쏟아낸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 의원들이 지난 2월 9일 국회 소통관에서 당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의 "당선되면 전 정권 적폐청산 수사를 할 것"이라는 발언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김상선 기자


기가 막힐 뿐이다. 남의 눈에 피눈물나게 한 자 언젠가는 역사라는 허허벌판에 시린 알몸으로 서게 되는 법. 만약 "나만은 괜찮을 것, 이번은 괜찮을 것, 우리는 괜찮을 것"이라 자신하고 있다면 그야말로 '거대한 착각'이다.

김현기 순회특파원 겸 도쿄총국장 kim.hyun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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