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정의 음악 정류장] [58] 축구와 재즈의 인연
축구와 재즈. 언뜻 봐도 둘의 관련은 적어 보인다. 1927년 자료에 ‘선샤인 재즈밴드’라는 이름이 보이긴 하나 지금까지 확인할 수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재즈 밴드인 ‘코리안재즈밴드(Korean Jazz Band)’의 탄생에서 축구는 중요한 구실을 했다. 색소폰과 만돌린 등의 악기를 연주하던 부잣집 아들 백명곤이 조선축구단을 이끌고 중국 상하이로 원정 경기를 갔을 때 재즈 악기와 악보를 구매하여 귀국 후 코리안재즈밴드를 결성했기 때문이다.
수십년 전 이 밴드의 실체를 사진을 통해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지금도 생생하다. 미심쩍은 점이 있었으나 당시 확인한 자료에 따라 이 밴드가 1926년에 결성된 것으로 보았다. 그러다 2019년 상하이에서 개최된 학술대회 발표 논문을 준비하면서 재즈 관련 자료를 다시 전수조사했고, 그제야 코리안재즈밴드가 1928년에 결성되었음을 알았다. 백명곤이 상하이에 간 것이 1928년 1월이고, 코리안 재즈밴드 관련 기사도 그 이후 나오기 때문이다.
‘중외일보’ 1928년 7월 30일 자에서 코리안재즈밴드가 주최한 여름 콘서트를 소개하며, “재즈의 새로운 곡조와 춤출 듯한 기분은 더위에 지친 독자 여러분에게 새로운 용기를 주기에 넉넉할 줄로 믿는 것이외다.”라고 호평했다. ‘조선일보’ 1928년 12월 21일 자에는 코리안재즈밴드가 “가장(假裝)하고 연주하여 이채로웠다”라는 기사와 함께, 고깔모자에 광대 복장을 하거나 동물 형상의 탈을 쓴 연주자의 사진도 게재되었다. 이철, 홍재유, 홍난파, 최호영, 박건원 등으로 이루어진 이 밴드는 당시 ‘모던걸’과 ‘모던보이’ 사이에 재즈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도 나타나는데, 작가 이서구는 서울을 중심으로 형성된 재즈 취미를 ‘현대인의 병적 향락 생활’이라고 조롱하는 글을 1929년 잡지 ‘별건곤’에 실었다. 그는 “멋을 부리려고 악사들이 가장(假裝)까지 한다”며, “어느 악단이나 가장 얌전한 피아니스트마저 흥이 오르면 건반 위에서 손끝이 난무(亂舞)를 시작하고 고갯짓, 허릿짓에 이어 종국에는 엉덩잇짓까지 나온다”라고 부정적인 시선을 드러냈다.
이러한 시선에도 재즈 열풍은 한동안 계속되었고, 그 영향을 받아 ‘재즈송’이란 대중가요 장르도 출현하였다. 우연은 운명처럼 다가와 인연이 되곤 한다. 관련이 적을지라도 재즈 밴드의 시작에 축구가 일조했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우리 축구 국가대표팀이 16강이라는 쾌거를 이루었다. 덕분에 땀과 노력의 의미, 하나 됨의 기쁨, 기다림이 주는 기대와 설렘을 우리 모두 경험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란 것을 알려준 축구팀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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