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연수원 정의의 여신상이 전하는 메시지 [정명원 검사의 소소한 생각]

2022. 12. 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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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17년 차 베테랑 검사이자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 저자인 정명원 검사가 전하는 다양한 사람과 사건, 우리가 사는 세상이야기.
충북 진천군 법무연수원 본관 앞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 정명원 검사 제공
구내식당 길목에 선 칼과 저울의 여신
정의 세계 수호하려는 결연함 느껴져
정의의 실질은 사람의 몫 깨닫게 해

법무연수원 본관 앞에는 정의의 여신상이 있다. 대부분의 정의의 여신이 그러하듯 눈을 가리고 한 손에는 칼을, 다른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다. 법무연수원에 근무하는 나는 매일 한 번 이상 정의의 여신을 마주한다. 구내식당 가는 길목에 여신상이 서 있기 때문이다. 맑은 날도 눈비가 오는 날도 변함없이 우뚝 서 있는 정의의 여신 발치를 지나 매일 밥을 먹으러 간다는 사실에 밥벌이에 대한 자세가 문득 경건해지기도 한다.

이곳 정의의 여신상은 세계 각지의 다른 여신상들과 얼핏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지만 특별히 꼿꼿한 자세로 서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두 발을 가지런히 하고 척추를 일자로 세운 채 단호히 앞을 응시하며 서 있는 자세가 사뭇 꼿꼿하다. 저울을 들고 있는 왼팔은 하늘을 향해 굽힘 없이 뻗어 있고, 칼을 움켜진 오른팔은 옆으로 올곧게 뻗어 있어서 두 팔의 각도가 거의 직각에 이른다. 따라해 보니 팔이 무척 아프다. 저것은 아무래도 현실적으로 저울로 무언가를 재거나 칼로 무언가를 베려는 자의 자세는 아니다. 내가 가진 것이 칼과 저울임을 온 세상에 선언하고자 하는 자세다.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칼과 저울의 세계를 수호하겠다는 의지로 칼을 잡은 여신의 팔근육이 단호하다.

본디 상징물이라는 것은 실질을 나타내기보다 무언가를 선언하기 위해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이곳의 정의의 여신상은 충분히 제 역할을 다 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검찰과 정의에 대해 세상 시끄러운 어떤 날에는 그녀의 꼿꼿하기 이를 데 없는 자세가 측은해 보이기도 한다. 무언가를 꼿꼿이 선언해야 하는 곳에는 선언하지 않으면 쉽사리 무너져 버리는 실질이 있기 마련이라는 사실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어떤 면에서는 벌 받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자세로 내내 서 있어야 하는 운명의 여신 발치를 지나 밥 먹으러 가는 마음이 덩달아 뻐근하다.

어느 순간 정의는 생활밀착형 단어가 아니다. 정의가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에 대해 주춤하는 이유는 그 단어의 뜻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형상으로 그려 보여줄 실질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질의 형상 없이 떠도는 정의는 다만 선언이거나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 뜬소문 같은 것이 된다. 뜬소문의 세계에서 오직 기립근의 힘만으로 내내 직각의 자세를 유지하는 일은 제아무리 정의의 여신이라 할지라도 힘겨운 일이다.

요즘 법무연수원에서는 새로 임명된 신입 검찰직 공무원과 신입 교정직 공무원들에 대한 교육이 한창이다. 신입들은 교육을 마치고 떠나기 전에 너나없이 정의의 여신 앞에서 기념촬영을 한다. 새로 지급받은 제복이나 새로 장만했음 직한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고 정의의 여신상 앞에서 제각각 포즈를 취하는 신입들의 웃음소리가 청명한 햇살 아래 터진다. 마침내 취업에 성공하였다는 성취감, 새로 시작할 일에 대한 설렘과 긴장이 젊은 그들의 얼굴에 가득하다. 꼿꼿하기가 이를 데 없는 정의의 여신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그들 각각이 새기는 정의는 어떤 것일까.

여신은 다만 선언할 뿐이지만 그 실질이 사람의 마을에 내려앉게 하는 것은 결국 사람의 몫이다. 아마도 정의의 실질은 이제 저들이 발령받아 전국 각지에서 마주할 매일의 일상에서 형상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그들이 마주 대하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경험 속에서 정의는 그 구체적인 모습을 갖추고 단단해질 것이다. 한껏 들뜬 기대와 달리 어쩌면 그들의 앞길에 고단한 출퇴근길과 힘겨운 업무들이 이어지겠지만, 그 어느 귀퉁이에서 작지만 확고하게 형상을 갖춘 정의의 실질을 마주하고 문득 척추를 곧게 펴는 날들이 있기를, 밥 먹으러 가다 말고 정의의 여신님 어깨 너머로 물끄러미 빌어 본다.

정명원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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