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권의 트렌드 인사이트] 재난이 나면 출동하는 `구조 호텔`

2022. 12. 7.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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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권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일본은 전국적으로 지진이나 태풍, 홍수 등 여러가지 자연 재해에 오래전부터 줄곧 노출돼 있었는데,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최근 몇 년간에도 대규모 재해로 인한 피해가 막심하다. 특히 지진이나 홍수로 인해 살던 집이 파손돼 지자체가 마련해준 체육관이나 가설주택 등에서 장기간 생활할 수밖에 없는 피난민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이러한 제공 시설 자체는 샤워시설, 주방기구, 방음시설 등 정상적인 가족생활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라 원래 거주하던 집의 복원 기간이 길어질 경우에는 가족 구성원 전체가 정신적 후유증이 심한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 시설이나 가설주택의 대안으로 등장해 주목을 받고 있는 숙박공간이 있는데, 바로 '래스큐 호텔(Reseque Hotel)'이다. '구조'를 의미하는 레스큐 호텔은 지난 2018년 12월에 토치기현 모카시에 컨테이너들을 활용한 첫 번째 숙박 노변 호텔 'HOTEL R9 더 야드'를 오픈하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됐다.

겉으로 보기에는 흔히 항만에서 볼 수 있는 화물용 컨테이너들이 모여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컨테이너들이 각각 독립된 원룸 호텔의 기능을 하고 있는 완벽한 숙박시설인 것이다. 이 '호텔'들은 평상시에 일반 숙박시설로 영업을 하면서 재난이 발생되는 즉시 전용 트럭에 실려서 재난 지역에 배달돼 피난민들을 수용하기 위한 시설로 변신하게 된다.

실제로 주거용 컨테이너로 개발된 더 야드 시리즈의 객실을 살펴보면 크기는 13평방미터의 아담한 공간이지만 바로 붙어 있는 옆방이 없기 때문에 방음이 완벽해 프리이버시보호에는 전혀 문제가 없음은 물론 피난민들이 쾌적한 생활하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최고급 침대, 양문형 냉장고, 전자레인지, 욕조 등을 갖추고 있다. 특히 확 트인 자연공간에 설치되다 보니 컨테이너라는 폐쇄성을 벗어나 오히려 캠핑 온 것 같은 자유로움까지 느낄 수 있어 재난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날릴 수 있다.

실제로 이 레스큐 호텔은 현재 관동지역, 아이치, 시코쿠, 큐슈, 오키나와 등 전국에 60여개 거점을 두고 약 1800개의 객실을 운영하고 있는데 지금도 여러 지자체들의 요청으로 24시간 이내에 출동이 가능하도록 지속적으로 객실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이 레스큐 호텔을 운영하고 있는 주식회사 디벨로프는 원래 트렁크 룸 임대, 부동산 개발, 에너지 개발, 육아 지원 등 다양한 사업을 하는 중소기업이었는데, 이 회사 오카무라사장이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복구사업을 담당하는 노동자 숙박시설 제공 용역을 맡다가 그 지역에서 체육관과 가설주택에서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피난민들을 보면서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게 됐고 이를 바탕으로 '구조호텔'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드는 점은 이 회사가 재난시에는 지자체 예산으로 수익을 낼 수 있겠지만 평시에는 일반 호텔로 영업이 가능하냐는 것이다. 일반 고객들이 굳이 멀쩡한 호텔을 뒤로 하고 컨테이너 호텔에 묵으려고 하겠나 했지만 오산이었다. 이 호텔의 수익모델을 받쳐주는 가장 큰 부분은 산업개발지구를 찾는 비즈니스맨들이었다. 레스큐 호텔은 컨테이너라는 이동성을 활용해 고속도로의 인터체인지 부근, 공업단지, 산업개발단지 등을 중심으로 운영한다. 현장으로 출장 온 비즈니스맨들이 시내까지 들어가는 불편을 해소할 수 있다고 홍보한다. 또한 노는 땅을 갖고 있는 토지주와 저렴한 임대료로 계약을 하거나 호텔건설을 해주고 위탁운영도 함으로써 수익을 창출하기도 한다.

특히 숙박업이 불황에 시달렸던 코로나 창궐기에는 치바현, 토치기현, 나가사키현 등과 계약을 체결하고 코로나 환자 격리 병실로 활용하고 검사와 치료에 지친 의료진들의 휴식 및 숙박공간으로도 사용되는 등 '이동성'을 적극 활용해 당시 객실 점유율이 80%에 육박했다. 전 세계적으로 자율 주행, 하늘 택시 등 '모빌리티'분야를 미래 주요 먹거리의 하나로 꼽고 있는데, 일본의 중소기업이 창출해 낸 '호텔 모빌리티' 아이디어는 비단 재난이 빈번한 일본에서만 통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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