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연 "작품이 빛만큼 누구에게나 공유되고 다다랐으면 좋겠어요"
본사 로비에 '얼룩무지개 숲3'
"작품이 생명체처럼 느껴져"
"이 작품이 빛만큼 누구에게나 공유되고 다다랐으면 좋겠어요."
기업은행 본사 로비에 외경 6.6m, 내경 4.6m, 높이 3.2m의 초대형 작품 '얼룩무지개 숲 3'을 전시 중인 이지연(43) 작가는 빛이 인간에게 주는 긍정적인 의미를 작품에 담았다.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영국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순수미술로 석사학위 받은 그는 그동안 사진 콜라주를 비롯해 판화, 영상, 설치 등 다양한 미디어 작업을 해왔다. '얼룩무지개 숲 3'은 나노패턴 복제기술, 3D 프린팅 등의 기술에 기반한 설치작업이다.
기업은행이 유망 신진작가 발굴과 지원을 위해 기획한 전시 프로그램 'IBK 아트 스테이션'의 세 번째 전시로 선정되면서 지난달 23일부터 오는 26일까지 기업은행 로비에서 관람객을 맞게 됐다.
'IBK 아트 스테이션'은 기업은행의 사회공헌 활동 중 하나로 올해부터 시행되고 있다. 기업은행이 장소를 제공하고 신작의 경우 제작비 일부를 지원하는 형태로 운영한다. '얼룩무지개 숲 3'은 로비와도 잘 어울리고 반도체 기술을 활용해 공간에 빛을 끌어들이는 작업 방식이 특별해 선정됐다.
7일 서울 중구 기업은행 본사 로비에서 만난 이 작가는 "평소 인간, 시공간, 자연과의 유기적인 관계에 기반해 작은 것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거시 세계에 관심이 많았다"며 "이 작업이 좋았던 이유는 그냥 빛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간은 빛을 통해 에너지를 받고 긍정적인 감각을 느끼잖아요.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이 작업을 시작했는데 필름을 만들면서 기분이 굉장히 좋아지더라고요. 하늘에서 무지개를 우연히 발견하듯이 말이죠. 물체가 빛에 민감해 해가 들어올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다르게 보이는데 저는 이 작품이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졌어요."
이 작가는 2020년 예술가와 과학자를 매칭해주는 '아티언스 대전'에 선정돼 완벽하게 통제된 실험실이 아닌 개인 작업실에서도 가능하도록 나노 패턴 복제 기술을 배웠다. 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시도하면서 최첨단 기술을 미술 표현 방식으로 녹여냈다.
최대근 한국기계연구원 박사에게 기술 자문을 받은 그는 "필름에서 시시각각 다른 색깔을 눈으로 인식하는 자체가 무척 신기했다"며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영역이 기술에 의해 눈으로 들어오니까 제게 굉장히 좋은 영감으로 다가왔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웨이퍼 원판에서 제각각 다른 패턴의 구조색 필름을 복제하는 과정이 판화와 유사해요. 어떤 데이터나 정보 값을 입력하느냐에 따라 빛의 현상도 달라질 수가 있거든요. 이 작품의 경우 정보가 단지 빛으로 변환돼서 나오는 것뿐이지만, 어마어마한 정보를 초집적해서 반도체 웨이퍼에 저장할 수도 있어요. '어떤 정보를 저장해 다시 빛으로 시각화할 것인가' 그게 제 다음 작업이기도 합니다."
'얼룩무지개 숲'은 지난해 더레퍼런스와 올해 아트선재 프로젝트 스페이스에서 개인전으로 선보인 데 이어 이번에 세 번째 작품으로 완성됐다. 기업은행 본사 로비 공간에 맞춰 작업의 완성도나 빛의 효과 등을 보완했다. 이 작가는 "아트 스테이션과 같은 공공 프로젝트는 제가 추구하는 작업의 방향과 같다"며 "그래서 첫 해에 신진 작가로 선정된 게 큰 영광"이라고 했다.
"꼭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가지 않아도 이렇게 오픈된 장소에서 작품을 감상하면서 일상 속에서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잖아요. 처음 이 공간을 봤을 때 육중한 기둥과 높은 천장에 정말 감탄사가 저절로 나오더라고요. 경비가 삼엄한 넓은 공간에 아무것도 없어 삭막하단 느낌이 들었어요. 아트 스테이션을 진행하면서 조금 더 사람들에게 열린 공간으로 바뀔 수 있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기술이 사용되다 보니까 아직까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 여태까지는 국가 지원금에 의해서 작품들이 진행·발전됐다"며 "이번엔 기업의 지원으로 이 작업이 유지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문화 정책적으로 예술과 기술에 대한 지원이 늘었지만 기간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고 밝혔다. "융합은 우리가 예상할 수 없는 곳에서 이뤄지는데, 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시도하고 있는 많은 작가들이 '그냥 했어'로 끝나지 않으려면 국가와 기업의 장기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여러 시도를 하는 융합이라는 이름의 지원 프로그램은 장기적으로 진행돼야 해요."
박은희기자 ehpar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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