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으로 묶인 트렁크들…연결된 것일까, 서로의 족쇄가 된 것일까

이선아 2022. 12. 7.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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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 루이비통, 디올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패션 브랜드들이 모여 있는 서울 청담동 명품거리.

'윙윙'거리는 벌 소리가 전시장을 가득 채우고, 여행가방을 관통하고 있는 거대한 철제 관 안에는 가상세계를 연상시키는 사이버틱한 푸른빛이 흐른다.

서로 붙어 있는 여행가방들은 하나로 연결된 우리 자신을 뜻한다.

하나의 관으로 연결된 여행가방처럼 서로 붙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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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민영, 장디자인아트서 개인전
자신도 모르게 연결된 현대사회
의도 없이도 영향 주는 세태 표현

샤넬, 루이비통, 디올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패션 브랜드들이 모여 있는 서울 청담동 명품거리. 이곳을 걷다 보면 난데없이 유리창 너머로 낡은 여행가방들이 보인다. 주변 풍경과는 어울리지 않는 1950~1960년대 빈티지 트렁크 가방들이 천장에 매달린 채 서로 붙어 있다. 전시장 안은 더 특이하다. ‘윙윙’거리는 벌 소리가 전시장을 가득 채우고, 여행가방을 관통하고 있는 거대한 철제 관 안에는 가상세계를 연상시키는 사이버틱한 푸른빛이 흐른다.

미디어 아티스트 차민영 작가(45)가 장디자인아트에 설치한 ‘수트케이스 체인’(2022)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사람, 데이터, 사물 등이 모두 연결되는 ‘초연결사회’를 시각적으로 보여준 작품이다. 서로 붙어 있는 여행가방들은 하나로 연결된 우리 자신을 뜻한다. 디지털 사회에선 내가 한 행동이 자신도 모르는 새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하나의 관으로 연결된 여행가방처럼 서로 붙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가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전시장 안에 울려 퍼지는 벌 소리는 어린 시절 벌에 쏘인 경험이 있는 차 작가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그는 이 벌 소리를 통해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사회에서 내가 도태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을 작품에 담았다. 관람객들은 여행가방 안을 들여다보며 작가의 메시지를 시·청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차 작가의 작품은 직관적이다. 많은 미디어아트 작품이 ‘난해하다’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지만, 그의 작품은 관람객들이 자연스럽게 메시지를 깨닫도록 한다. 이번 전시의 제목을 ‘셔레이더(Charader): 전달자’로 정한 이유도 그래서다. 전시를 기획한 장혜순 장디자인아트 대표는 “장소, 분위기 등 비(非)언어적 연출로만 메시지를 전달하는 무성영화의 ‘셔레이드 기법’처럼 설치·영상만으로 작가의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전달하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차 작가는 영상, 설치, 사진, 조각 등을 넘나든다. 그의 다채로운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소재는 여행가방이다. 때로는 여행가방을 영상작품의 프레임으로 사용하고, 때로는 여행가방 안에 작품을 가둔 채 렌즈를 통해 관람객이 엿보게 한다. 이번 전시에서도 그는 여행가방을 소재로 한 신작 16점을 선보였다.

왜 하필 여행가방일까. 차 작가는 그 질문에 ‘마치 나와 같아서’라고 답한다. 대학 졸업 후 월세를 전전하며 살던 시절, 쓰레기 수거함에서 봤던 낡은 여행가방이 마치 갈 곳 없는 자신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그때부터 여행가방은 곧 작가 자신이 됐다. 여행가방은 작가의 내면을 보여주는 매개체이자, 작품에 장소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따뜻한 미디어아트’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미디어아트는 영상만 덜렁 있다 보니 뭔가 차갑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사람의 손길이 묻은 여행가방을 접목하니 좀 더 따뜻하게 느껴졌죠. 작품이 따뜻해야 관람객이 더 쉽게 다가올 수 있지 않겠어요.” 전시는 17일까지.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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