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칼바람 … 차갑게 식은 노숙인 식판
무료급식소 운영 힘들어져
식재료값 평균 30%이상 쑥
노숙인 추위·배고픔 시달려
"두달새 서너명 죽어나가"
전문가 "정부, 적극 지원을"
12월의 어느 날 오후, 서울역 13번 출구 앞 건물에 위치한 무료급식소에 노숙인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무료급식소 '살맛나는공동체'의 저녁 식사 시간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메뉴는 제육볶음, 계란말이, 열무김치, 연근조림, 사과 등이다. 이곳에서 10년간 식사를 해왔다는 노숙인 최인조 씨(55)에게 식사에 대해 물었다. 최씨는 "(다른 곳과 비교하면) 아주 좋습니다. 다른 곳은 반찬 세 개에 밥이 다예요. 딱. 다 그래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최근엔 반찬 가짓수가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물가 상승에 비용 부담이 부쩍 늘어난 노숙인을 위한 무료급식소가 경기 불황으로 기업 후원까지 끊기면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살맛나는공동체'는 식자재 가격 상승에도 식사의 질을 유지하고자 이병선 살맛나는공동체 이사장이 연간 사비 지출을 410만원가량 늘렸지만 여전히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또한 2020년 3월 코로나19로 인해 중단된 새벽 급식을 정부의 방역지침 완화로 재개하려 했으나 눈덩이처럼 불어난 식비 부담으로 아직까지 노숙인에게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살맛나는공동체는 코로나19 이전까지만 해도 노숙인 200여 명에게 새벽 급식을 제공해왔다. 이 이사장은 "식비가 약 30% 올라서 급식 횟수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다른 무료급식소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다. 서울역 인근 무료급식소 '참좋은친구들'의 신석출 이사장은 물가 상승과 더불어 경기 불황으로 후원이 끊기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신 이사장은 "체감물가는 약 30~40% 올랐고 거기다 경기도 좋지 않으니 후원이 안 들어오죠"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 코로나19 때문에 기업에서 봉사하러도 오지 않고 있어 웬만한 도움이 다 차단돼버렸다"고 덧붙였다.
노숙인도 어려워진 무료급식소 사정을 피부로 체감하고 있었다.
서울역에서 노숙하는 고 모씨(69)는 "경제가 이렇게 어렵기 전까지만 해도 노숙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교회를 통해서 식사 공급을 받았는데 이제는 그것도 끊겨서 아주 힘들고 요새 죽은 사람만 서너 명이 된다"고 목소리를 낮춰 얘기했다. 이어 "한두 달 새 옆에서 죽어나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날도 춥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그러니 횡사하는 거지"라며 혀를 끌끌 찼다.
노숙인 급식시설에서는 어려운 현실을 감안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신 이사장은 "참좋은친구들이 정부의 공식 시설로 인정받았음에도 지원이 없다"고 호소했다. 소방, 위생 등 지방자치단체의 각종 검열에 협조하고 있으며 정부 대신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돕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지원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신분 확인이 어려운 노숙인 특성 때문에 노숙인 급식시설에 대한 지원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자활지원과 관계자는 매일경제와의 통화에서 "노숙인은 거처가 불분명하고 연락을 드릴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의심하는 바는 아니지만 시설에서 보조금을 적정하게 썼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대신 서울시는 종합지원센터, 일시보호시설 등을 통해 노숙인을 지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생필품 지원 등의 도움도 간절하다는 게 노숙인 지원단체들의 요청 사항이다.
이 이사장은 "유통기한이 임박한 식품이나 옷 같은 의류 등을 기업에서 노숙인에게 곧바로 지원할 수 있게끔 하는 제도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위지혜 기자 / 박홍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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