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자 혁신기술 '유전자가위' 규제 … 韓농업, 갈라파고스 위기

정혁훈 전문기자(moneyjung@mk.co.kr) 2022. 12. 7.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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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가위 기술을 적용해 개발한 프로비타민D3 함유 토마토(위)와 일반적인 토마토(왼쪽)다.

희귀 유전 질환 치료제 개발이 가능한 '3세대 유전자 가위' 기술을 둘러싸고 글로벌 특허 전쟁이 한창이다. 이 기술의 최초 발명자가 누구인지를 가리는 특허 소송은 3자 간 싸움으로 귀결되고 있다. 한 곳은 2020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를 중심으로 한 UC버클리 측, 다른 한 곳은 하버드대와 매사추세츠공과대(MIT)가 공동 설립한 브로드연구소다. 그리고 나머지 한 곳이 바로 한국 기업인 툴젠이다. 이 툴젠의 창업자는 '크리스퍼 카스9(CRISPR Cas9)'이라는 3세대 유전자 가위 기술을 개발한 김진수 박사다.

지금은 바이오 스타트업 그린진에서 최고기술경영자(CTO)를 맡고 있는 김진수 박사는 서울대 화학부 교수로 있던 2012년 최성화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를 만나게 된다. 박사과정 학생의 졸업논문 심사 자리에서였다. 김 박사는 이때 식물과학 분야 전문가인 최 교수에게 고충을 토로했다. "동물세포에서는 리보핵단백질 형태의 유전자 가위를 활용할 수 있지만 식물에서는 세포벽 때문에 잘 안 된다"는 요지였다.

이 말을 들은 최 교수는 "그거 식물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 그간의 연구 경험에서 볼 때 효소를 이용해 식물 세포벽을 일시적으로 없애면 유전자 가위 기술을 식물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곧바로 공동 연구를 진행하기로 의기투합했고, 3년간의 연구를 거쳐 2015년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라는 세계적인 과학저널에 공동으로 논문을 게재했다. 상추와 담뱃잎 같은 식물에서도 유전자 가위 기술을 활용해 표적으로 삼은 유전자 기능을 없앨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논문이었다.

최 교수는 그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2014년 지플러스생명과학이라는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유전자 가위 기술을 식물에 적용해 인류에게 기여할 수 있는 다양한 기능성 품종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때문이었다. 어느덧 창업 8년째를 맞이한 지플러스생명과학의 충북 오송 본사를 찾았다. 유전자 가위 기술의 성과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 비타민D3 함유 토마토 세계 첫 개발

KTX 오송역에서 차로 10분을 달려가자 아담한 건물이 나타난다. 사무실 옆에는 유리온실도 있고, 식물공장도 있다. 컨테이너 28개를 짜 맞춰 만들어진 식물공장은 외벽이 알록달록하게 치장돼 있어 멀리서도 바로 눈에 띄었다. 알고 보니 미디어아트 작가 이이남의 '빛의 탄생'이라는 작품이었다. 토마토가 재배되는 유리온실로 들어서자 노란 꽃이 피기 시작한 걸 보니 조만간 열매가 열릴 듯했다. 여기서 재배되는 토마토가 바로 유전자 교정 토마토다. 크리스퍼 카스9 기술을 이용해 특정 유전자를 잘라냄으로써 토마토 내에 함유된 프로비타민D3가 콜레스테롤로 전환되지 않도록 한 것이다. 그러면 프로비타민D3가 콜레스테롤로 바뀌지 않고 그대로 축적되기 때문에 토마토 1개로 비타민D3 하루 필요량을 섭취할 수 있게 된다.

비타민D에서도 가장 중요한 비타민D3는 햇빛에 노출된 피부에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바깥 활동이 부족해 전 세계적으로 10억명이 비타민D 결핍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코로나19 발생 이후에는 바깥 활동이 더욱 줄어들어 비타민D 결핍이 심각한 건강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비타민D는 면역력과 신경, 근육, 뼈 등에 좋은 성분이어서 결핍 시 몸에 다양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그런데 비타민D를 함유한 음식은 등푸른생선이나 특정 동물의 간 정도여서 일상적인 섭취가 쉽지 않다. 다른 비타민들과 달리 식물 중에는 비타민D를 함유한 것이 없다. 주로 건강기능식품으로 섭취하지만 화학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착안해 지플러스생명과학은 다른 비타민들처럼 천연적으로 섭취할 수 있는 비타민D3 토마토를 만들어낸 것이다. 최성화 대표는 "비타민D3 고함량 토마토를 개발하는 데 활용한 유전자 가위 기술은 상추와 파프리카, 감자 등 다른 작물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어 다양한 기능성 품종 개발이 가능하다"며 "이런 작물에서 몸에 좋은 성분을 추출해 기능성 소재를 만들면 향후 사업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 유전자 가위를 GMO로 규제하겠다는 한국

획기적인 개발 성과에도 불구하고 비타민D3 함유 토마토는 국내에서 아직 상용화되지 못하고 있다. 유전자 가위 기술을 적용한 식물 재배와 시판이 규제에 막혀 있다. 우리나라는 유전자 가위 기술이 적용된 작물을 여전히 유전자변형식품(GMO)의 하나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전자 가위 기술을 적용한 유전자 교정 작물과 GMO는 완전히 다르다는 게 과학계의 정설이다. 미국과 일본 등에서 유전자 교정 작물의 생산을 공식 허용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GMO는 한 생명체에 외부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주입해 새로운 형질을 드러내게 한 것을 말하지만 유전자 가위는 외부 유전자 주입 없이 해당 세포가 갖고 있는 특정 유전자를 잘라내 염기서열 일부를 바꾸는 기술이다. 최 대표는 "유전자 가위 기술은 극소수 염기를 제거하는 기술이어서 자연 발생적인 돌연변이와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전통적 종자 개발 방식인 교잡 육종이나 돌연변이 육종, 그중에서도 방사선 육종과 비교하면 오히려 유전자 변이 정도가 훨씬 덜하다는 게 전문가 설명이다. 방사선 육종은 농작물이나 가축에게 방사선을 쬐어주었을 때 일어나는 돌연변이를 활용해 신품종을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다.

생명공학 분야 석학인 유장렬 미래식량자원포럼 회장의 설명이다. "비유하자면 방사선 육종은 남산에 집중 포격을 가해 산의 형질을 바꾸는 것이라면, 유전자 가위는 남산에 있는 돌 하나의 위치를 바꾸어 형질을 전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사용해온 방사선 육종은 인정하면서 유전자 가위를 활용한 육종은 위험성이 있다고 보고 규제하는 건 난센스입니다."

◆ 종자주권 회복할 기회 놓칠 판

더 아쉬운 건 비과학적인 논란으로 우리나라가 종자 강국으로 거듭날 기회를 놓쳐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세계 종자 시장은 거대 기업들의 각축장이 된 지 오래다. 미국의 바이엘(옛 몬산토)과 코르테바(다우듀폰), 스위스 신젠타(켐차이나) 등 메이저들이 세계 종자 시장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이들이 시장을 호령하는 최대 경쟁력이 바로 옥수수와 콩 등 곡물에 주로 적용되는 GMO 종자다. GMO 종자 하나를 개발하려면 평균 13~14년의 기간과 1600억~1700억원 이상의 투자금이 필요하다. 메이저가 아니고는 이 시장에 얼씬조차 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에 비해 유전자 가위를 활용해 신품종을 개발하는 데는 5~7년, 10억~20억원 정도면 가능하다. 스타트업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유전자 가위 원천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데다 바이오와 육종 분야 기술이 세계적인 수준이다. 외환위기 이후 3대 종자회사인 흥농종묘, 중앙종묘, 서울종묘를 해외에 매각한 이후로 국내 종자산업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매우 안타까운 대목이다.

김주곤 서울대 국제농업기술대학원장은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해 기능성 콩을 개발한 뒤 북미와 남미 지역에서 상업화하려고 했지만 그쪽에서 자국에서 현장 시험도 하지 않은 걸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느냐고 나오더라"며 "국내 규제만 풀리면 해외에서 엄청난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음에도 잘못된 인식으로 유전자 교정 작물이 허용되지 않고 있는 것은 매우 아쉽다"고 말했다.

프로비타민D3를 함유한 상추를 개발하기 위해 상추의 어린잎을 세포화해 유전자 교정을 진행한 뒤 다시 식물체로 전환하기 위해 배양용기에서 기르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지플러스생명과학】

◆ 미·일·중은 유전자 가위 선진국

주목할 만한 대목은 이 분야에서 매우 보수적일 것 같은 일본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유전자 가위 시장에서 앞으로 치고 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유전자 가위 기술을 적용한 작물은 GMO와 다르다고 보고 2019년부터 개발·시판을 허용했다. 그 결과 작년부터 시판되고 있는 작물이 사나텍시드라는 스타트업이 개발한 일명 '가바 토마토'다.

감마-아미노부티르산(GABA)을 말하는 가바는 혈압 상승을 억제하고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물질이다. 사나텍시드는 유전자 가위를 활용해 이 가바를 생산하는 데 관여하는 효소에서 가바 생산을 억제하는 부위를 제거했다. 그 덕분에 일반 토마토에 비해 가바 함량이 4~5배 늘어났다. 회사 측은 지난해 봄 가바 토마토 종자를 수천 농가에 보급해 생산을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유전자 가위로 개발한 참돔과 복어도 작년 12월부터 판매되기 시작됐다. 참돔은 재래종에 비해 덩치가 커졌고, 복어는 성장 속도가 빨라졌다.

미국에서도 유전자 교정 작물에 대한 개발과 재배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는 수확 후에도 갈색으로 변하지 않는 버섯을 개발해 2016년 미국 농무부 재배 허가를 받았다.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는 2019년 포도송이처럼 열리는 방울토마토를 개발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가장 무섭게 성장하는 곳으로 중국을 꼽는다. 유민경 지플러스생명과학 수석과학자는 "중국은 유전자 가위 작물이 본국으로 유입되지 못하도록 꽁꽁 묶어놓고 있으면서 내부적으로는 막대한 자금을 들여 모든 작물에 대한 유전자 교정 정보를 분석·취합하고 있다"며 "유전자 가위 경쟁이 본격화되면 중국이 다크호스로 떠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 보다 과학적인 규제 법안 필요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유전자 가위 기술을 활용해 농업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두 가지 측면에서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하나는 유전자 가위에 대한 일반 대중의 오해를 바로잡는 일이다. 이향기 한국소비자연맹 부회장은 "GMO의 유전자 변형과 유전자 가위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며 "일본,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두 가지 기술이 분명히 다르다는 사실을 과학계가 보다 적극적으로 대중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나머지 하나는 규제의 과학화다. 지금 국회에는 유전자 가위 기술에 대한 정부 법안이 제출돼 있다. 유전자 가위가 자연적 돌연변이 수준의 안전성을 갖춘 경우에는 위해성 심사 등 규제를 면제해줄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다. 얼핏 보면 유전자 가위 기술의 개발·이용 활성화를 위한 법안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유전자 가위 기술을 GMO의 일종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사를 면제해준다고 해도 유전자 가위 산물을 GMO로 규정하는 한 국내에서 개발과 시판이 자유롭게 허용되기는 어렵다. 일본과 미국처럼 유전자 가위 기술을 GMO와는 다른 법안으로 다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김진수 박사는 "유전자 가위 기술은 우리가 일본보다 훨씬 앞서고 있는 대표적인 분야"라며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상용화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실험실 연구 단계로 머물기 때문에 아무런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유장렬 회장은 "일본 소니가 디지털이라는 신기술 적용을 외면했다가 삼성전자에 뒤졌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며 "생명공학의 총아로 떠오르고 있는 유전자 가위 기술의 상용화에 뒤처질 경우 우리나라 농업은 갈라파고스섬처럼 소외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혁훈 농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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