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미술관 관람은 놀이이자 학습”···발달장애학생들의 ‘떡 만들기’[현장에서]
연말까지 25개교 2000여명 나들이
“문화약자와의 동행 정책 지속 펼칠 것”
“동글동글동글 하게 만들어서 빙글빙글 돌리고, 떡살로 찍어내면 돼요. 떡살은 떡에 무늬를 새기는 나무 도구인데, 무늬에 따라 소원이 달라져요. 이 바퀴 무늬는 바퀴가 굴러가듯 ‘모든 일이 잘 되게 해주세요’ 하는 겁니다.”
서울 종로구 떡박물관 김희연 부관장이 지난 2일 ‘꽃산병(앙금절편)’ 만드는 과정을 각종 의성어와 의태어를 섞어가며 밝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한 차례 설명이 끝난 뒤에도 김 부관장은 “반죽을 꺼냈어요. 다음은 어떻게 할까요?”라는 식으로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이날 떡박물관을 찾은 이들은 노원구 서울동천학교 고3 학생 22명이다. 모두 발달장애 학생이다.
서울시는 지난 10월 ‘특수학교 학생 박물관·미술관 무료관람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평소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기 어려운 특수학교 학생의 현장 관람 지원하는 사업이다. 민선8기 서울시정의 주요 정책인 ‘약자와의 동행’ 관련 사업 중 하나로, 관람료는 물론 이동차량과 보조인력·수어통역사·해설사 등을 지원한다. 동천고 학생들이 떡박물관을 찾은 것도 이 사업 덕분이다.
“꽃산병은 큰 떡 위에 꽃 대신 떡살로 장식하는 떡이에요. 예쁘게, 꽃처럼 예쁘게 만들어야 해요.”
학생들 앞에는 개인 반죽 6개와 앙금소, 떡살, 기름이 담긴 종지 등이 각각 놓여 있었다. 학생들은 알듯 모를 듯한 소리를 내거나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했지만, 서툰 솜씨에도 떡 만들기에 열심이였다. 김현지양(19·가명)은 떡을 만드는 내내 입으로 ‘동글동글동글’ ‘빙글빙글’ 소리를 냈다. 현지양은 “재밌다”며 “이런 데 취직하면 좋겠다. 월급이 얼마인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동천학교는 중증장애 학생 비율이 높아 현지양처럼 떡 만들기를 혼자 할 수 있는 학생은 절반이 채 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학생 2명당 1명 꼴로 함께 온 동천학교 선생님들이 떡 만드는 과정을 다시 설명했다. 선생님들은 시범을 보이면서 손을 잡고 돕는가 하면 아예 대신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렇다고 떡 만들기에 급급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황민규군(19·가명)은 한참동안 친구들이 떡을 만드는 것만 쳐다봤다. 누군가 도와주려고 하면 “안 해”라며 인상을 썼다. 한 선생님이 “조금 기다릴 거야?”라고 묻자 고개를 끄덕였다. 민규군은 친구들이 떡을 만들어 포장지에 담고 서로 자랑하는 시간에서야 꽃산병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 사이 누구도 ‘빨리 만들라’고 재촉하거나 ‘그만 만들라’고 참견하지 않았다.
서울동천학교 최우진 교사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일상생활 자체가 공부다. 최대한 많은 경험을 제공해줘야 하는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 (학교 밖으로) 나갈 일이 없었다”며 며 “오감을 자극하는 이번 기회 자체가 놀이이자 학습”이라고 말했다. 최 교사는 “발달장애 학생들은 집중력이 짧은데 (떡 만들기에는) 굉장히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이라며 “먹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떡이 훌륭한 교재가 됐다. 평소 아무 생각 없이 먹었던 떡인데 전통문화를 체험한 것이라는 점도 의미 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인 꽃산병을 만든 것도 학생들의 장애 특성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다소 조작능력이 떨어져도 떡살로 모양을 찍어주면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부관장은 떡살의 의미도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옛날에는 가문의 염원 등을 담은 떡살이 대대로 전해지기도 했다”며 “떡에 문양을 새길 수 있고 그것에 우리의 마음과 정서를 담았다는 점은 아이들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관장은 학생들에게 마지막 인사도 잊지 않았다. “꿀떡 좋아한다고 꿀꺽 먹으면 안된다고 했죠? 오늘 만든 떡도 꼭꼭 씹어서 물과 함께 먹어야 해요.”
올해 연말까지 서울동천학교를 비롯한 특수학교 25곳의 학생·교원 2000여명이 박물관과 미술관 관람에 나선다. 서울 소재 32개 특수학교 학생·교원 총 6121명 가운데 3분의 1에 해당하는 수치로, 지체·청각·시각장애 학생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 이 사업에는 떡박물관 외에도 서대문자연사박물관, 뮤지엄김치간 등 국·공립·사립 박물관과 미술관 30곳이 참여한다.
서울시는 외출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박물관·미술관이 직접 학교로 가는 ‘찾아가는 박물관·미술관’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현재까지 신청한 학교는 서울경운학교 등 8개교, 총 867명이다.
주용태 서울시 문화본부장은 “평소 박물관·미술관 나들이가 어려웠던 특수학교 학생들처럼 문화향유 사각지대에 있는 시민들이 쉽고 편리하게 문화예술을 누릴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앞으로도 ‘문화약자와의 동행 정책’을 지속 개발·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성희 기자 mong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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