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노인 돌봄기관 ‘세금 낭비’라며…사회서비스원 예산 100억원 삭감한 서울시의회

서울시 사회서비스원(서사원) 출연금이 시의회 담당 상임위원회에서 100억원 삭감되면서 공공돌봄 기관이 위기에 처했다. 예산 삭감을 주장한 시의원들은 인건비가 많이 들고 수익이 나지 않는 서사원 구조를 지적하고 있다. 공공성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설립된 기관에 ‘효율성’ 잣대만 들이대 예산을 줄이는 것은 돌봄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왜곡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지난달 22일 서사원 출연금을 서울시가 요구한 168억원에서 68억원으로 결정했다. 2020년부터 올해까지 3년간 사회서비스원 출연금은 각각 224억원, 162억원, 189억원이었다.
서사원 노동조합 측은 기자회견 등을 통해 “68억원은 5개월 치 인건비밖에 안 되는 액수”라면서 “공공돌봄 기관인 사회서비스원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현재 서사원에는 노동자 459명이 소속돼 있다.
공공성 위해 만든 기관에 ‘돈 먹는 하마’ 오명
사회서비스원은 2019년 서울시를 비롯한 4개 광역지자체에서 시작해 현재 17개 모든 시·도에 설립돼 있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였던 사회서비스원은 ‘좋은 일자리’와 ‘좋은 돌봄’이 핵심 축이었다. 공공이 관련 서비스를 직접 제공함으로써 종사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돌봄의 질을 끌어올린다는 취지였다.
서사원 설계 작업에 참여했던 김진석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서울시 외 다른 지자체는 ‘월급제’가 아닌 ‘시간제’로 노동자를 고용했고 계약직 비중도 높았다”면서 “(노동조건 개선은) 돌봄 노동이 가치를 인정받고 양질의 서비스로 이어지기 위한 주요한 조건으로 논의됐다”고 설명했다.
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은 서사원의 ‘비효율성’을 강조하고 있다. 김영옥 시의원(국민의힘·광진3)은 지난달 7일 보건복지위원회 행정사무감사에서 “요양보호사가 서비스 제공 시간과 관계없이 무조건 월 225만원의 기본급을 받는다”면서 “예산 운용이 방만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다. 황정일 서사원 대표이사도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근로자 중 59.2%가 하루 평균 3.83시간 이하 서비스를 하고 월급을 받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설립 취지를 이해하지 못한 평가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진석 교수는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게 아니라 사회서비스원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 돌봄서비스를 실제로 제공하고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교육·이동시간 등도 있어서 서비스 제공 시간만 노동 시간으로 보는 건 무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민간이 꺼리던 중증 돌봄까지 하는데
대표이사는 ‘노조는 바이러스’ 비유도
‘공공 돌봄’은 모든 시민에게 적절한 돌봄이 제공돼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논의됐다. 치매나 정신질환이 있는 고령자, 공격적 행동을 보이는 장애인, 거동이 매우 불편하거나 주거 환경이 열악한 취약계층 등은 모두 민간에서 서비스를 받기 어렵다. 돌봄 과정이 까다롭고 수익도 나지 않기 때문이다.
서사원은 민간에서 꺼리는 돌봄 사례들을 일부 감당하고 있다. 서울시 복지정책실에 따르면 올해 9월 기준 사회서비스원 전체 서비스 중 민간이 꺼리는 중증 돌봄을 담당한 비율은 20% 가량이다. 2019년 9.4%, 2020년 12.7%, 2021년 11.2% 등 점차 증가 추세다. 코로나19 비상상황에서도 서사원 인력이 ‘긴급 돌봄’에 투입됐다.
다만 장애인 활동 지원이나 야간 돌봄 등의 비중은 확대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 4월 서사원을 이용하던 한 중증장애인이 서비스 중단을 통보받아 논란이 됐다. 오대희 공공운수노조 서사원 지부장은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노동자의 처우 개선과 인력 보강이 중요하다”면서 “현재 장애인 활동 지원을 담당할 수 있는 전문인력은 45명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표이사가 바뀐 뒤 서사원의 발전적 방향을 찾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비판도 나온다. 황 대표는 지난해 11월 취임 이후 서사원의 병가제도·월급제 등을 지적하고 제1노조인 공공운수노조 측에 단체협약 해지를 통보해 갈등을 빚었다. 오 지부장은 “황 대표는 서사원이 비효율적이라는 말을 쏟아내 예산 삭감을 자초했다. 갈등을 키우는 태도만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황 대표는 지난 2일 한 인터넷 매체에 기고한 칼럼에서 “바이러스와 민주노총은 닮은 구석이 있다. 대부분의 노조는 회사가 숙주다. 회사 없이 노조도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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