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이번엔 중동 공략…7~10일 사우디 방문, 아랍정상회의 등 참석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3박4일 일정으로 사우디아라비아를 국빈 방문했다. 집권 3기 시작 이후 광폭 외교행보를 이어가면서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약화되는 틈을 파고드는 모습이다.
중국 외교부는 시 주석이 살만 빈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 초청으로 7일부터 10일까지 사우디를 방문한다고 밝혔다. 이 기간 시 주석은 제1차 중국·아랍 정상회의와 중국·걸프협력회의(GCC)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앞서 사우디 국영 SPA통신도 시 주석이 7일 현지에 도착한 뒤 살만 국왕 및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와 회담을 가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시 주석의 사우디 방문은 2016년 1월 이후 거의 7년만이다. 그가 중동 지역을 찾는 것도 2018년 7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방문 이후 처음이다. 특히 시 주석의 이번 방문은 사우디가 석유 감산 문제 등을 둘러싸고 미국과 갈등을 빚는 상황에서 이뤄져 더 관심을 모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7월 석유 증산을 설득하기 위해 직접 사우디를 방문했지만 성과없이 돌아오면서 ‘빈손 외교’라는 비판에 시달렸다. 사우디가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OPEC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 플러스(+)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둔 지난 10월 오히려 감산을 결정하면서 바이든 대통령이 사우디에 뒤통수를 맞았다는 평가도 뒤따랐다.
사우디는 미국의 전통적인 우방으로 중동 지역 최대 동맹국이지만 2018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을 놓고 미국이 무함마드 왕세자를 배후로 지목하면서 관계가 악화됐다. 올해 들어서는 석유 감산 문제뿐 아니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서도 입장 차를 노출하며 틈이 더 벌어졌다. 그 사이 중국은 사우디와 원유 위안화 결제를 논의하고 사우디의 브릭스(BRICS·중국을 비롯한 5개 신흥 경제국 모임) 참여를 지지하며 적극적인 밀착 행보를 보이고 있다. 양국은 원유 최대 수출입 국가라는 이해관계가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사우디가 바이든 대통령의 석유 증산 요청을 무시한 지 두 달 만에 시 주석에게 레드카펫을 깔아줬다”며 “양측 사이에는 에너지와 인프라 거래가 최우선 의제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시 주석은 이번 방문을 통해 중동의 맹주로 불리는 사우디와의 관계를 강화하면서 적극적으로 중동 지역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꾀할 것으로 보인다. SPA통신은 시 주석 방문 기간 중국과 사우디가 1100억리얄(약 38조6000억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또 시 주석 방문을 계기로 중국 기업들이 사우디의 초대형 스마트시티 건설 사업인 네옴시티 프로젝트에 다방면으로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사우디 분석가인 알리 시하비는 “시 주석의 사우디 방문은 지난 몇 년간 관계 강화의 정점에 있는 것”이라며 “미국은 이에 대해 우려하고 있지만 이미 강력해진 관계를 약화시키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이번에 다른 아랍 국가 및 GCC와의 정상회의를 통해서도 다양한 협정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로이터통신은 GCC 국가들은 에너지 외에도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에 맞는 상품과 건설 계약, 인프라, 제조, 디지털 경제 등에 대한 투자 기회를 제공한다며 GCC 국가들도 자국 경제가 글로벌 공급망에 통합될 수 있는 외국인 직접투자를 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GCC는 사우디와 UAE, 쿠웨이트, 카타르 등 걸프만 연안 6개국 간 경제·안보 협력기구다. 이번에 처음 개최되는 중국·아랍 정상회의에는 14개 아랍 국가 정상이 참석할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이에 대해 “중국·아랍 국가 관계사의 기념비적인 일로 양측의 협력을 완전히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보도했다.
시 주석의 사우디 방문에는 결국 중동 지역에서 지난해 아프가니스탄 철군 등을 계기로 생긴 미국의 영향력 공백을 파고들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집권 3기를 시작한 이후 활발한 대면 외교를 통해 국제무대에서 미국과의 영향력 대결을 본격화하고 있는 일련의 행보와도 맞닿아 있다. 시 주석은 지난 10월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에서 당 총서기 3연임을 확정한 후 한 달 남짓한 기간에 25명 이상의 해외 정상급 인사를 국내외에서 대면했다.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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