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에선 휠체어 타고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숨&결]

한겨레 2022. 12. 7.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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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

일본 여행 동안 지낸 호텔 레스토랑에 구비된 경사로. 유지민 제공

유지민 | 대안학교 거꾸로캠퍼스 학생(고1)

지난달 엄마와 일본 오사카로 4박5일 여행을 다녀왔다. 코로나바이러스 유행 이후 첫 외국여행인 만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번 여행에서는 아주 뜻깊은 경험을 할 수 있었는데, 바로 ‘세가지 믿음’을 알게 된 것이다.

첫번째는 ‘어디든 갈 수 있다는 믿음’이다. 오사카의 유명한 ‘도톤보리’ 거리에서 점심 식사를 하러 한 우동 가게를 찾았다. 우리를 안내한 직원은 1층에 자리가 없어 2층에서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건물이 그다지 크지 않아 당연히 엘리베이터가 없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가게에는 엘리베이터는 물론, 넓은 장애인 화장실까지 있었다. 이외에도 오사카 시내 상당수 건물에는 경사로, 리프트, 엘리베이터 같은 장애인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었다. 일본은 2006년 ‘배리어프리(barrier-free, 장벽 없애기)법’을 도입해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를 법으로 의무화하고 있다. 여행 내내 시내를 돌아다니며 내가 갈 수 없는 곳보다 갈 수 있는 곳이 더 많다는 사실에 짜릿함을 느꼈다.

한국에서는 수동휠체어를 타고 혼자 외출하면 울퉁불퉁한 길 위에서 바퀴를 미느라 금세 지치고 만다. 비장애인은 알아채기 어려운 미세한 경사나 균열이 휠체어 사용자에겐 큰 난관이 된다. 한국에선 평소엔 무조건 전동휠체어를 타고 외출하는데, 오사카에서는 날마다 5㎞가 넘는 거리를 수동휠체어를 타고 이동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오사카의 도로는 전반적으로 모난 곳 없이 잘 포장돼 있고 평평해 휠체어로 다니기 좋았다. 특히 도로가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은 점이 인상 깊었다. 턱과 같은 장애물은 피해 갈 수 있다. 그러나 기울어진 도로에선 몸도 함께 기울어져 쉽게 자세가 무너지고 전신 통증을 느낀다. 차 없이 지하철과 휠체어만 이용한 소위 ‘뚜벅이’ 여행인 만큼 오사카의 좋은 길은 더욱 강렬하게 머릿속에 남았다.

두번째는 ‘언제든지 도움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다. 처음 오사카 지하철을 탔을 때, 열차와 승강장 사이 간격이 매우 넓어 놀랐다. 서울에서 이 틈에 휠체어 바퀴가 끼이는 위험한 상황을 여러 번 겪어봤기에 비슷한 사고가 일어날까 걱정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열차에 안전하게 탈 수 있었다. 역무원들이 탑승을 도와줬기 때문이다. 대부분 서울지하철 역사에는 역무원 수가 부족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야 했다. 반면 오사카 지하철에선 가는 곳마다 전문적인 지원인력이 배치돼 있어 안심하고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었다.

여행 내내 지낸 호텔의 레스토랑에서도 비슷했다. 처음 아침을 먹으러 갔을 때, 식당 문 앞에 계단 세개가 있는 걸 알게 됐다. 엄마와 나는 데스크에 있는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자 직원이 창고에서 이동식 경사로를 가져왔고, 손쉽게 계단을 오를 수 있었다. 이전에 다른 호텔들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을 땐 가족들이 나를 안고 휠체어를 들어야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이동 약자들을 위한 전문장비 지원, 직원들의 신속하고 빠른 응대 덕분에 기분 좋은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살면서 환영받지 못한 기분을 느껴본 적 있는가? 한국에서 휠체어와 함께한 지난 17년, 나는 수도 없이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돼야 했다. 남들과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도 누군가는 동정하고, 누군가는 당황한 기색을 비치고, 누군가는 냉담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런 현실에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일본에서 깨달은 마지막 믿음은 ‘불청객이 되지 않을 믿음’이다. 말 한마디 제대로 통하지 않는 낯선 환경을 걱정하며 떠난 여행이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나를 반겨주는 거리와 사람들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받았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고민해봤다. 누구나 환영받는 세상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한국에서는 아주 오래, 어쩌면 평생 답을 찾아갈 질문일 것 같다.

일본의 지하철역 계단을 휠체어로 내려갈 수 있는 이동식 리프트. 유지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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