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 주인의식과 로열티(Loyalty)

정양범 매경비즈 기자(jung.oungbum@mkinternet.com) 2022. 12. 7. 11:4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 중견기업이 미국에 투자하여 공장을 짓고 현지인들을 채용하여 생산을 시작했다. 한국 본사의 사장이 공장 준공식에 와서 임직원을 모아 놓고 일장 훈시를 했다. “이 공장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인입니다. 모든 일에 주인의식을 가지고 비용을 아끼며 생산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말을 듣자 현채인(HCN)들 간에 귓속말이 오고 갔다. “우리가 주인이라고? 그럼 우리에게 회사 주식을 나눠주겠다는 약속인가?”

‘주인의식을 갖고 일하자’라는 훈화는 베이비붐 세대에게는 소시적부터 귀에 못 박힌 소리이지만 미국의 근로자들에게는 의아한 이야기이다. 회사의 주인이라 생각하고 스스로 휴지도 줍고, 화장실 청소도 하고, 사무 용품도 절약하며 회사에 공헌하자는 말이 과연 설득력 있는 경영자의 리더쉽으로 비쳐질까? 실제로 미국 법인장으로 파견된 한국의 한 경영자는 그런 주인의식으로 똘똘 무장되어 있었다. 그는 판매 침체로 회사가 어려워지자 비용절감 목적으로 사무실의 형광등을 줄이고, 엘리베이터 운행을 제한하고, 심지어 화장실 변기 물통에 벽돌을 넣어 물 소비를 줄이도록 조치했지만 미국인들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자본주의 존중의 역사적 바탕위에 개인주의적 사고가 강한 미국에서 전체를 위한 명분으로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는 기업의 핵심가치나 리더쉽은 설득력이 없다. 경영학에서는 종업원을 생산을 위한 하나의 자원으로 취급하여 ‘인적자원(Human Resource)’이라 표현한다. 경영학 교과서에서 ‘인적자원 관리’ 챕터는 ‘경영전략’만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아무리 그것을 자세히 보아도 회사를 위해 구성원 개인의 헌신적 노력이나 희생이 필요하다는 부분은 없다.

경영학 교과서에 ‘주인의식’이란 말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100대 기업이 선호하는 인재상은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이다. 경영자의 그런 선호는 해외법인 현지인에게도 그대로 적용시키려 한다. 그것이 문제의 출발이다. 해외로 진출한 3,500개의 현지법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가장 큰 운영상 애로사항’은 다름 아닌 ‘현지인 인사관리’로 나타났다. 그 전에는 현지의 제도, 법률적 문제나 시장정보의 부족이 한국 기업에게 가장 큰 애로사항 이였지만 이제는 사람 다루는 일이 제일 골치 아픈 일로 부상한 것이다.

주인이 아닌 사람에게서 주인의식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이다. 강한 주인의식을 가진 현채인을 무작정 구하거나, 아무런 육성전략 없이 이미 채용한 현지인에게 그것을 기대하고 있으니 해외법인 경영에서 가장 큰 애로사항이다. 현지 종업원들에게 주인의식을 요구하고 기대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인적자본(Human Capital)화 하면 원하는 바와 같은 효과가 나타난다.

기업 경영에서 인적자원(Human Resource)은 조직의 성과와 목적 달성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므로 전략적 관리 대상이다. 즉 인적자원의 전략적 관리는 조직의 장기 계획과 목적에 합치하도록 인력의 채용, 개발 그리고 유지의 세가지 기능을 유기적으로 설계하여 집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전략적 관리를 통해 유지되는 인적자원은 ‘인적자본(Human Capital)’이 된다. 이는 종업원들이 가지는 지식, 정보, 경험, 기술, 창의력 등의 경제적 가치와 자발적이고 자기 주도적으로 일하는 기업문화의 가치를 총체적으로 내포하는 추상적 가치이다. 기업에서 인적자본의 형성 유무와 그 강약 정도가 조직의 성패를 좌우한다. 강한 인적자본은 회사 및 직무에 대한 로열티(Loyalty)로 그 모습을 나타낸다.

인적자본의 형성을 통한 로열티 도출은 우선 적절한 절차를 거쳐 채용한 유능한 인재의 교육훈련과 각자 가진 잠재적 능력의 개발에서 시작한다. 이 과정을 거친 인적자원에 대하여 종업원들이 정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객관적인 평가제도를 실시하여야 한다. 그 평가를 바탕으로 하여 적절한 보상과 승진 그리고 경력개발(Career Development) 제도를 실행한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을 성공적으로 통과한 인적자원이 인적자본으로 업그레이드 되어 조직에 로열티를 가지게 된다.

미국 등 해외에 진출하여 생산 현장에 현지인을 다수 채용하여 운영하는 우리 초국적기업들이 그들의 로열티 확보 과정 즉 인적자본의 형성과정에서 유의해야 할 몇 가지 사항이 있다.

첫째, 현채인에 대한 평가제도에서 한국식을 고집하지 말고 현지의 문화와 정서에 부합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 그 예가 상대평가와 절대평가이다.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수우미양가’ 상대평가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기업의 인사고과에서도 상대평가를 저항없이 받아들였다. 그러나 직무 및 역량평가에서 각 등급별로 일정 퍼센트(%)를 강제 배분하는 상대평가를 해외에서도 그대로 사용할 지 여부는 신중히 판단하여야 한다. 미국이나 브라질 등의 과장 이상 현채인 간부들은 부하직원에 대해 상대평가를 해야 하고, 그들 또한 자신의 동료들과 경쟁 속에 상대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점에 상당히 당혹스러워 한다. 상대평가는 인적자원이 인적자본으로 성숙 되기 전에 회사를 이탈하는 한 원인이기도 하다. 그들은 모두가 우수하다면 모두에게 A를 줄 수 있는 절대평가가 정서상 맞다고 생각한다.

둘째, 보상관리(Compensation Management)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이 준수되어야 한다. 아무리 급여(Payroll) 담당자들을 사무실의 폐쇄된 공간으로 격리시키고 급여자료를 비밀로 유지하여도 각 개인의 급여 정보는 바람처럼 은밀히 새 나간다. 화이트칼라의 경우, 동일 경력에 동일 업무를 하는 두 사람은 평가에 의한 차이가 나기 전까지는 동등한 보상 수준이 유지되도록 조심하여야 한다. 블루칼라의 경우 이 원칙은 더욱 철저히 지켜져야 한다. 예를 들어 입사 3년차나 입사 10년차나 같은 라인에서 같은 작업을 하는 경우 그들에게는 연차에 관계없이 동일 임금을 줘야 한다. 미국의 생산 공장에서 이것은 이미 정착된 관행이다.

화이트 칼라이든 블루 칼라이든 각 사의 보상 수준은 동일업종 경쟁사와 비교된다. 신설 법인의 경우 기존의 경쟁사보다 낮은 수준의 보상체계로 시작할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업계 평균과 같거나 상회하는 수준으로 순차적으로 상승시켜야 한다는 점은 피할 수 없다. 그 상승 부담은 생산성 제고와 품질비용 절감 등으로 상쇄시켜야 할 것이다. 미국에서 보상관리의 실패는 인적자본의 와해와 노조화로 이어질 수 있다.

세번째로 고용안정성(Job Security)이다. 이를 유지하려는 경영층의 의지와 노력을 종업원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인적자본의 형성에 촉진제 역할을 한다. 외부하청(Outsourcing), 조직축소(Downsizing) 또는 불황 시 교대(Shift) 축소 등으로 인한 해고를 하지 않으려는 경영진의 노력을 말한다. 이는 종업원이 회사에 대한 신뢰와 로열티를 갖게 되는 동기이며 외부 노조의 침투를 막아주는 방어벽이 된다. 실제로 브라질에서 경기 불황으로 타 초국적기업들이 3교대를 2교대로 또는 2교대를 1교대로 축소하면서 종업원을 해고할 때, 한국의 초국적기업 H사는 비록 생산량은 줄였지만, 3교대 생산을 꿋꿋하게 유지하며 Job Security가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그 결과 종업원들의 회사에 대한 신뢰와 로열티는 견고하게 구축할 수 있었다. 신설 생산 공장의 경우 애초부터 공정별 인력 배치를 타이트하게 편성하여 향후 생산성 향상의 결과가 나타났을 때 과다한 잉여 인력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조치하는 것도 인적자원 관리의 하나이다.

경쟁력 있는 보상제도, 고용안정 외에도 로열티를 이끌어 내는 인적자원 관리 방안은 많다. 회사 소식지를 가족에게 직접 송부하여 공유, 회사 행사에 가족을 초청하여 투명성 확보와 자긍심 고취, 지역 오피니언 리더들을 회사나 한국으로 초청하여 그들을 통한 긍정적 이미지의 전파, 라운드 테이블과 고충처리제도의 운영으로 소통 및 스킨십 강화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인재제일의 경영철학과 회사의 비젼이 담긴 핵심가치를 실천하여 기업문화로 정착시키는 것이다. 그런 기업문화가 확고하게 정착한 조직은 이미 로열티가 확보된 것과 마찬가지이니 그 인적자본의 총체적 가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크다.

한국과 해외 똑같이 자칫 ‘꼰대’소리를 들을 수 있는 주인의식의 강조보다는 평가, 보상, 승진, 경력개발로 이어지는 인적자본의 형성을 전략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종업원들의 능동적이고 자기 주도적 일처리가 당연시되는 기업문화를 구현할 수 있고, 그것이 바로 주인의식의 현대적 표현이다.

[진의환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현) 소프트랜더스 고문/ 서울대학교 산학협력 교수]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