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심온의 죽음에서 배울 것

한겨레21 입력 2022. 12. 7.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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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정치 평행이론]장인의 죽음 책임자를 문책하지 않은 세종 대왕
특정 언론사 비판하고 수백억원대 세금 부과하는 윤석열 정부
한국방송(KBS)에서 2008년 방송한 드라마 <대왕세종> 중 심온이 사약을 먹는 장면. 역사에는 심온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나온다. KBS 누리집

1422년 6월8일. 태종 이방원이 죽었다. 향년 54. 한 달 전만 해도 국왕 세종과 사냥을 나갈 정도로 건강하던 상왕의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모든 신하가 당황했겠지만 특히 3년 전 태종의 지시로 세종의 장인 심온을 역모로 몰아 죽게 한 유정현 등에게는 날벼락이었다.

끝끝내 꺼내지 않은 카드

태종 이방원의 수많은 숙청 중에서도 가장 억지스러운 것이 바로 심온의 죽음이다. 태종은 군부 인사가 자신의 군(軍) 관련 지시를 고의로 어겼고 그 뒤에 심온이 있다는 증언을 연결고리 삼아 심온을 죽여버렸다. 심온의 처이자 세종의 장모는 노비로 전락했다. 정작 심온의 죄를 ‘증언’한 강상인은 사형 직전 “나는 무고하지만 매를 견디지 못해 죽는다”고 외쳤다.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던 중 체포당한 심온은 하루 다섯 차례 고문 끝에 자백했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생을 마감했다.

태종이 살아 있을 때는 아무도 이 잘못을 말할 수 없었다. 국왕 세종마저도. 당시 기록을 보면 세종은 심온에게 죽음을 내린 다음날 태종과 잔치를 벌인다. 기록은 왕비의 한(恨)까지는 말하지 않는다. 세종은 이날 부인 소헌왕후의 울음을 들어야 했을 것이다. 세 번째 아들 안평대군이 갓 백일이 된 때였다.

그러나 세종은 심온 사건의 재조사를 명령하지 않았다. 심온은 세종 재위 중 복권되지 않았다. 장모는 노비 신세에서 풀려났지만 그 이상의 혜택은 없었다. 특히 세종은 이때 태종의 장남 양녕대군의 거취를 둘러싸고 신하들과 심하게 대립했음에도 끝끝내 이 카드를 꺼내지 않았다. 세종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에 그의 심증은 추정할 수밖에 없다. 아버지 태종이 단행한 일을 쉽게 뒤집기 어려웠을 수도 있고, 당시 군부와 정계에 심온 집안이 큰 영향력이 있었음을 고려해 어쩔 수 없는 숙청이라고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세종이 왜 이랬는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선택이 미친 결과다. 당시 신하들에게 태종의 죽음은 충분히 위기로 느껴졌다. 세종은 세자 책봉 두 달 만인 1418년 8월 즉위했고, 4년 동안 태종에게 국왕 수업을 받던 ‘인턴’이었다. 세종은 이후 이 4년 동안의 결정은 자기가 아닌 태종이 한 것이라며 태종실록에 싣자는 말도 한다. 홀로 선 국왕이 어떤 판단을 내리고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30년을 갓 넘은 왕조가 곧바로 무너질 수도 있었다. 모든 것이 불안했을 무렵, 홀로 선 국왕은 감정보다 ‘이성’으로 첫 판단을 내렸다. 신하들은 국왕이 사랑하는 부인보다 국가를 더 우선으로 봤다고 받아들였다. 숱한 발전을 이뤄낸 세종의 치세는 이렇게 시작됐다.

대통령과 고위 공직자들, 화의 일상화

모든 지도자는 자신이 속한 조직, 기업, 국가를 잘되게 하려 애쓴다. 잘못하려는 목적이라면 애초에 그 위치까지도 못 간다. 지도자의 성패는 이 의도를 어떻게 다른 이들이 납득하느냐에 달렸다. 지도자의 진정성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리더십은 실패한다. 세종이 위대한 리더로 기억된 이유는 자신의 진정성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킨 것에 있다. 그 이해에 감정보다 이성을 우선시했다고 여겨진 이 결정이 일정한 영향을 끼쳤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취임 6개월이 지난 윤석열 정부는 어떨까. 지금까지만 보면 국민 다수는 윤석열 정부의 진정성을 믿지 않는다. 30%대에 머무른 지지율을 보면 알 수 있다. 무엇 때문일까. 윤석열 정부는 야당의 어이없는 발목잡기와 자기에게 불리한 보도만 거듭하는 정파적 언론사들이 진정성을 방해하는 ‘주범’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국회에서 벌어지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 간 설전이나 국외 순방 과정에서 문화방송(MBC) 기자를 전용기 탑승에 제외한 건에서 이 감정을 엿볼 수 있다. 이들 때문에 나라를 위한 자신들의 진정성이 훼손된다고 의심하는 것이다.

명확한 확인 없이 ‘청담동 술자리’ 주장을 펼친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건희 여사 논문 의혹을 보도하며 대역이라는 점을 고지하지 않은 MBC 시사프로 등의 사례를 놓고 보면 상대를 향해 ‘악의(惡意)를 품었다’는 불만이 이해될 측면도 있다. 그들도 자신의 ‘실수’가 ‘의도’가 아니었음을 증명해야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 권력자도 사람인 이상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는 선택을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태도가 일상화될 때다. 그리고 거기에 ‘힘’이 합쳐질 때다. 이렇게 되면 권력자의 진정성은 그 의도와 상관없이 폭력으로 이해되기 쉽다.

때로 힘을 쓰는 것보다 힘을 쓰지 않아야

2022년 11월18일 윤석열 대통령은 출근길 약식회견(도어스테핑) 도중 MBC를 향해 “악의적인 행태”라고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대통령실은 그 뒤 ‘MBC의 악의적인 발언’을 되풀이하는 비판성 논평을 냈다. 대한민국 최고 권력이 특정 언론사를 상대로 비판적 발언을 내놓은 전후, 국세청이 MBC에 수백억원대 세금을 부과한 사실이 알려졌다. 이 세금 부과가 어떻게 해석될지 대통령실은 판단하지 못한 건가, 안 한 건가. 윤 대통령은 국외 순방 과정에서 특정 언론사 기자들만 불러들여 1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취재 과정이 아니었다”는 해명을 어떻게 증명할지도 모르겠지만, MBC 기자의 전용기 탑승 배제로 논란을 각오한 상황에서 특정 언론사 기자를 불러들인 이 판단은 이성이 작동한 건가, 감정이 작동한 건가.

지도자는 때때로, 자신의 ‘힘’을 쓰는 것보다 ‘힘’을 쓰지 않는 것으로 자신의 진심을 증명한다. 장인의 억울한 죽음을 외면한 세종은 이를 알고 있었다. 세종 대의 명재상 허조는 죽기 직전, 당시를 “태평한 시대”라고 평하면서 “왕에게 간언하면 들어주고 행해주셨다.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정치의 요체는 사람의 마음을 사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결코 ‘힘’만으로 살 수 없다.

이도형 <세계일보> 기자

*역사와 정치 평행이론: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언론사 정치부에서 국회와 청와대 등을 8년간 출입한 이도형 기자가 역사 속에서 현실 정치의 교훈을 찾아봅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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