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게임일 뿐인데... 검찰 논리의 치명적 허점 [이용석의 전쟁이 묻지 않는 것들]

이용석 2022. 12. 7.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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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석의 전쟁이 묻지 않는 것들] 평화주의와 게임

[이용석 기자]

대학 시절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은 스타크래프트였다. 학교 앞 우후죽순 들어선 PC방은 조금 과장하면 강의실보다 더 오랜 시간을 보낸 공간이었다. 비디오 게임을 아주 즐기는 편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스타크래프트를 하지 않고서는 동기들과 대화에도 낄 수 없었다. 확실히 게임은 '또래문화'였다.

스타크래프트를 필두로 자동차 레이싱 게임인 카트라이더, 디아블로 같은 게임이 인기가 많았다. 그중에는 카운터스트라이크나 레인보우6 같은 FPS(1인칭슈팅게임) 장르도 있었다.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며 군인이 되어 편을 먹고 다른 편을 다 죽이면 이기는 게임이었는데, 순발력이 뛰어나지 않은 나는 잘하지는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FPS 게임을 하는데 참을 수 없는 어지러움과 두통이 몰려왔다. 도저히 모니터를 볼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술 마신 뒤에 정신없이 흔들리는 화면을 보아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대낮에 술 한 방울도 안 마시고 게임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정신적인 거부반응이었다.

당시 나는 병역거부를 고민하고 있었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병역거부자인 내가, 총 들고 사람 죽이는 훈련을 받을 수 없다고 선언하려는 내가, 노골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목표인 게임을 해도 되나?' 이런 생각에 거부반응이 몸에 나타났던 것이다.

'그렇다면 스타크래프트는? 그것도 전쟁 게임 아닌가?' 하지만 스타크래프트를 할 때는 몸에서 아무런 거부반응이 일지 않았다. '거부반응 없어도 내가 병역거부를 하려면 전쟁 게임은 안 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도 해봤지만, 질문은 끝없이 이어졌다.

'그렇다면 전쟁 영화도 보면 안 되나? 전쟁 영화라고 해도 반전 영화는 괜찮지 않나? 무엇이 전쟁 영화고 무엇이 반전 영화인지 기준이 명확한가? 폭력 게임의 기분은 무엇이지? 평화주의자는 폭력적인 문화 콘텐츠 즐기면 안 되나? 폭력 게임 하면 폭력적인 사람이 되나?'

그전까지는 한번도 고민해보지 않은 게임과 폭력, 평화, 개인의 양심 관계를 생각하게 되었다.

폭력적인 게임 하면 폭력적인 사람 될까?

평화운동 단체에서 활동하다 보니 가끔 게임하는 자녀 상담을 부탁하는 지인들이 있다. 게임을 너무 많이 한다거나 그런 이슈는 아니고, 부모가 보기에 너무나 폭력적인 게임을 하는데, 자녀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지 걱정을 담은 상담이다. 이런 걱정이 아주 터무니없는 것만은 아니다. 갈수록 발전하는 기술 덕분에 최신 게임의 영상은 영화나 현실 못지않게 실감나고, 영화나 드라마와 다르게 게임은 그냥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플레이를 하기 때문에 체험의 강도 또한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상담을 요청한 부모들은 자녀가 하는 게임이 무슨 게임인지, 더 나아가 게임이라는 매체의 특성, 게임이 자녀들에게 갖는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게다가 게임이라는 매체가 받고 있는 부당한 오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거에는 소위 불량한 학생들이 오락실을 다닌다는, 최근에는 게임 '덕후'들은 방구석에 처박혀 게임만 하는 오타쿠거나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들이라는, 오해가 각각 있다. 게임은 많은 국민이 즐기는 대표적인 취미 생활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게임은 전 국민 취미 순위(2019년)에서 6위를 기록했다. 가장 즐기는 취미에서 6위였고, 단순히 게임을 즐기는 사람은 더 많다. 특히 10대의 경우 91.5%가 게임을 이용한다고 하니, 청소년들에게는 게임이 가장 대중적인 또래의 놀이 문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평화활동가들에게 상담을 요청하는 부모들은 대개 게임 그 자체보다는 특정한 게임을 우려하는 편이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목표인 게임이나 전쟁 게임들, 폭력적인 묘사가 두드러지는 게임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러한 걱정은 게임만의 문제는 아니다. 물론 게임은 앞서 말한 것처럼 매체에 직접 개입해 능동적인 체험을 하기 때문에 폭력 경험의 정도가 영화나 드라마와는 다를 수도 있지만 결국 폭력적인 콘텐츠가 그것을 향유하는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에 대한 쟁점은 동일하다.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를 논하기 위해서 우리는 폭력 게임의 범주와 기준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전쟁을 다룬 게임은 폭력 게임인가? 혹은 게임에서 살인을 저지른다면 폭력 게임인가?
 
 게임 '디스 워 오브 마인'
ⓒ 11bit studio
 
전쟁을 테마로 다룬 게임 중에 <디스 워 오브 마인 This War Of Mine>은 독특한 시점에서 전쟁을 체험한다. 보통의 게임들이 군인이 되어 적군을 물리치거나 사령관이 되어 전술과 전략을 짜서 전쟁을 이끄는 역할을 하는 반면, 이 게임은 민간인이 되어 전쟁터에서 살아남는 것이 목표다. 굶주림, 질병, 추위, 강도 심지어 캐릭터의 멘탈까지 극복해야 할 어려움은 차고 넘친다. 음식물, 의약품 모든 생필품이 부족하고 안전한 공간조차 없다.

이 게임은 일종의 전쟁 체험이지만 전쟁의 폭력을 미화하기보다는 오히려 전쟁의 참혹함을 체험하게 한다. 또한 플레이어는 전쟁터에서 살아남으려면 식량과 의약품을 구해야 하는데 때로는 민간인을 습격하거나 원치 않는 살인을 저지르게 되기도 한다.

살인을 체험하는 게임이니 이 게임은 폭력 게임인가? <디스 워 오브 마인>은 특이하게도 살인이나 강도 같은 비윤리적인 행동을 하면 그룹 전체의 사기가 떨어지고 캐릭터의 정신 건강 상태가 나빠지며 심한 경우에는 게임의 패배 요인이 된다.

플레이어들은 <디스 워 오브 마인>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윤리적인 질문을 마주한다.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은 정당한 일인가?' 이처럼 단순하게 전쟁이 테마라거나 폭력적인 행위가 포함되었다고 다 폭력 게임이라고 할 수는 없다. 폭력을 어떻게 묘사하고 재현하는지를 살펴봐야 그 게임이 매체로서 플레이어에게 어떤 상호 작용을 의도하는지 파악할 수 있다.

물론 누가 보더라도 지나치게 폭력적이어서 최대한 하지 못하게 해야 하는 게임도 있다.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게임의 재미 요소로만 활용하거나 전쟁 범죄를 찬양하거나 미화하는 게임들이 그렇다. 하지만 명명백백한 경우가 아닌 이상 무엇이 혐오와 차별인지, 어느 정도가 용납할 수 없는 전쟁 범죄인지, 어떤 재현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는지와 같은 질문은 끝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영화나 소설 같은 다른 매체와 마찬가지로 게임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 뻔하디뻔한 그 방법이 가장 정확한 방법이다.

반공 교육을 받은 세대가 다 반공적인 정치의식을 갖지 않는 것처럼 폭력적인 게임을 한다고 다 폭력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폭력을 인식하고, 인지하고,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키운다면 아무리 나쁜 게임을 하더라도 폭력에 물들지 않고, 좋은 게임을 통해서는 폭력에 대한 비판적 사유를 키울 수도 있다.

평화주의자는 폭력 다룬 게임 하면 안 되나?

폭력 게임을 하면 폭력적인 사람이 되냐는 질문과 정반대로 게임과 플레이어 사이의 관계를 되묻는 질문도 있다. 병역거부자들이 한때 법정에서 받은 질문이 그렇다. 2018년 6월 헌법재판소가 대체복무제도가 없는 병역법은 헌법에 불합치한다는 결정을 내린 후, 검사들은 병역거부자들의 양심이 가짜임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재판에 임했다.

그 조치 중 하나가 재판을 받는 병역거부자들에게 게임 기록을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총을 쏠 수 없어서 병역거부를 하는 양심이라면 총싸움 하는 게임도 할 수 없어야 한다는 것이 검사의 논리였다. 얼핏 들으면 설득력 있는 논리지만 실제로는 중요한 허점들이 있다.

가장 큰 허점은 양심의 자유에 대한 몰이해다(이 지점에 대해서는 내가 쓴 책 <병역거부의 질문들>을 참고하길 추천한다). 그리고 게임이라는 매체의 특성에 대한 오해 혹은 무지다. 게임은 현실을 반영하고, 재현하고, 왜곡하지만 현실 그 자체는 아니다.

판타지 장르의 게임은 말할 것도 없고 현실적인 테마를 다루는 게임들조차도 현실 그 자체는 아니다. 게임에서의 욕망이 현실 세계의 욕망과 그대로 맞닿는 것은 아니며 당연하게도 게임에서 한 체험은 현실의 체험이 아니다. 트럭 운전 시뮬레이션 게임인 <유로 트럭>을 잘한다고 대형 차량 운전면허를 주지는 않는 것처럼 말이다.

현실 세계에서 평화주의자라도 게임에선 스나이퍼가 될 수도 있고, 현실 세계에서는 기후정의 운동가지만 게임의 세계에선 석유기업을 경영하는 경영자를 플레이할 수도 있다. 게임에서 하는 역할이 현실의 자아를 규정한다면 외딴 섬에서 서로를 죽이며 살아남아야 하는 <배틀 그라운드>를 즐기는 유저들은 모두 살인으로 쾌감을 얻는 사람이라는 말도 안 되는 규정도 가능해진다.

게임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매체나 문화, 스포츠 장르가 다 마찬가지다. 권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무하마드 알리는 베트남 전쟁 당시 병역거부를 해 챔피언 벨트도 박탈당했지만 결국 재판에서 승소해 병역거부자임을 인정받았다. 사람 때리는 게 직업인 권투선수였지만 사각의 링이라는 인간이 만든 인위적인 공간 안에서 정해진 규칙에 따라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는 것과 시민으로서 무하마드 알리의 양심과 선택은 별개이기 때문이다.

폭력에 대해, 우리가 게임에 던져야 하는 질문

게임은 게임일 뿐이지만, 다른 매체와 마찬가지로 현실을 재현하는 동시에 현실에 다양한 방식으로 개입한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과 폭력에 대해 우리는 허투루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다만 게임과 폭력에 대해, 혹은 게임과 전쟁에 대해 이야기할 때 게임이 구현하는 비주얼적인 이미지에만 치중해서는 안 된다. 전쟁과 폭력의 양상, 맥락, 구조가 게임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어 있고 플레이어의 체험은 어떤 경험이 되는지를 살펴보는 동시에, 현실 세계의 전쟁은 어떻게 게임에 개입하는지도 질문해야 한다.

영화 <탑건> 시리즈의 사례가 좋은 예다. <탑건> 시리즈는 잘 만든 오락 영화다. 미 국방부가 <탑건> 제작비보다 비싼 전투기와 항공모함 등 장비를 대여해주고 대본 수정까지 참여했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대중적인 영화를 통해 국방부에 대한 인식을 좋게 만들 수 있는 홍보 수단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영화 <탑건: 매버릭> 스틸 이미지.
ⓒ 롯데엔터테인먼트
 
이 때문에 <탑건>은 오락 영화로서 거둔 성취와 더불어 미군을 미화하는 영화로 실제 미군이 전 세계에서 전쟁을 수행하며 벌인 나쁜 행동들을 가린다는 비판도 받는다. 우리는 스크린에 재현되는 이미지뿐만 아니라 스크린 밖의 구조적인 폭력에도 질문을 던져야 한다. 게임을 둘러싼 폭력에 대한 논의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니터 바깥의 구조적 폭력이 게임에 어떻게 개입하고 플레이어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 파악할 수 있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폭력 게임을 하면 폭력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폭력 게임을 즐기지 않기도 하지만 즐기기도 한다. 폭력 게임을 무조건 규제하거나 플레이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게임에서 한 개인의 폭력 체험을 사회적인 언어로 끄집어 올려 이야기를 해야 한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폭력은 무엇인지, 그러한 폭력에 대해 게임 제작자는 어떤 의도로 어떻게 구현했는지 그리고 게임 안에서 폭력 체험은 과연 플레이어들에게 어떤 감각을 주며 어떤 생각을 불러일으키는지.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게임의 사회적인 영향력이 점차 확대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더 진지한 태도로 게임에서의 폭력을 바라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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