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돈에 ‘투표’를

이민 2022. 12. 7. 11: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북선관위 사무처장 장재영

장재영 경북선관위 사무처장

25년 전인 1997년, IBM의 슈퍼컴퓨터 딥블루가 인간 체스 챔피언을 꺾었을 당시 ‘기계는 계산능력이 탁월하지만, 인간의 ‘직관’과 ‘통찰’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기계가 인간의 판단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적었다.

하지만 AI 기술은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뤄냈고, 바둑 전용 인공지능인 알파고는 예전의 입력-계산 방식을 탈피하여 인간처럼 스스로 학습하고 판세를 통찰하기에 이르렀다.

마침내 2016년, 경기진행 경우의 수가 무한에 가까워 철학적이기까지 한 ‘바둑’ 게임에서 인간 최고수를 이겼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호사가들은 발달된 인공지능으로 인해 사라지게 될 직업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여러 의견 중에서도 흥미로웠던 것은 인공지능에 의한 정책결정이 가능해져 인간사회가 더욱 합리적이고 평화로워질 것이라는 미래예상이었다.

플라톤은 저서 ‘국가’에서 이상국가의 실현을 위해서는 선(善)의 이데아를 가진 철인(哲人)이 통치하는 것을 ‘이상국가’라고 보았으며 그러한 철인이 실존한다면 이보다 더 합리적인 정치제도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므로 ‘알파고’가 통치하는 미래상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민주주의는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때가 많고 비용도 많이 들며 또한 느리다.

만약 극도로 발달된 AI가 있다면 철인과도 같이 인간의 모든 가치를 반영하여 정확하고도 효율적인 정책판단을 내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인공지능에 의하여 합리적인 통치가 이뤄지는 세상이 오더라도, ‘나’의 결정이 배제된 통치체제를 사람들은 수용할 수 있을까?

아무리 옳은 지시라도 수동적으로 따라야 하는 세상이라면 이에 반기를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결정하지 않은 일을 수동적으로 따라 하기만 해서 풍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라면 마치 인간이 사육되는 세상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당사자의 의견수렴 없는 정책결정을 흔히 우리는 독재라 부르며 손가락질해왔다.

그런데 현재의 우리 중 일부는 놀랍게도 민주주의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알파고’ 아닌 ‘그들’의 지배를 아무런 생각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현상은 점점 조금씩 넓게 퍼지고 있다. 민의를 외면 한 체 완전하지도, 효율적이지도, 심지어 올바르지도 않은 결정을 따르기만 하면서 왜 자신의 목소리는 내지 않는지.

정치에 참여하여 내 목소리를 내는 방법은 다양하다. 직접 대표자가 되는 것 또는 대표자를 뽑는 것이 대표적이다. 가장 강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선거 시기가 아니면 행할 수 없는 방법이다.

정치에 참여하는 많은 방법 중 우리 국민이 낯설어하는 방법이지만 매해 참여할 수 있으면서도 품격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돈’에 투표를 하는 것이다.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정치에는 돈이 필요하고 정치주체의 대표주자인 정당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금을 조달한다. 정당에 주어지는 정치자금 대부분은 국가의 예산이다. 보조금이 대표적이다.

물론 이상적인 방법은 국민이 본인의 의사에 따라 당비를 내든 후원금을 내든, 직접 자신이 선호하는 정당을 후원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나 이렇게 조성되는 정치자금은 일부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또 국민 중에는 자신의 정치의사를 직접 밝히기 힘든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공무원, 교사 등이 대표적이다.

‘정치자금법’은 개인의 정치성향을 밝히지 않고도 국민의 의사를 반영해 투명하게 정치자금을 공급하기 위해 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서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있는 제도를 두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10만원까지는 기부한 금액을 연말정산을 통해 기부자에게 다시 돌려준다는 점이다.

즉, 예산에 나의 의지를 투영함으로써 돈에 투표한 것이다. 내가 투표한 돈은 일반적인 예산이 아닌 정치자금으로 확정된다. 이 제도가 정부의 ‘정당 보조금’과 다른 점은 나의 정치후원 의지가 담겨있다는 데 있다.

검색창에 ‘정치후원금센터’를 쳐보자. 요즘에는 신용카드의 포인트로도 정치자금을 후원할 수 있으니 연말정산 때 10만원까지 기부금이 환급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신용카드 포인트를 현금화할 방법이기도 하다.

돈에 투표하는 방법은 평소에도 정치에 참여할 방법이다. 구성원이 참여하지 않는 민주주의 사회는 차라리 ‘알파고’가 통치하는 사회보다 못함을 잊지 말자.

tktf@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이메일: jebo@tf.co.kr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Copyright © 더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