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미분양 공포 덮친 대구 가보니… “신축 옆에 또 신축”

최온정 기자 2022. 12. 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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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분양 물량이 넘쳐나요. 단지마다 1~2채씩 급매가 나오고 있습니다. 수성구 등 핵심 지역에도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라 앞으로 시장에 나올 신축 물량도 적지 않습니다.”(대구광역시 북구 공인중개사)

지난 5일 찾은 KTX 동대구역 일대에는 형형색색의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차있었다. 더샵·반도유보라·우방 아이유쉘 등 대형·중견 건설사 브랜드 아파트가 언뜻 봐도 수천가구는 넘어보였다. 신축 단지 사이로는 또 다른 공사가 한참 진행되고 있었다. 공급이 넘치는 대구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5일 KTX 동대구역 일대에 들어선 아파트 전경./최온정 기자.

7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동대구역 일대에는 6000여가구가 입주·분양을 마쳤다. 신암 1~10구역(6298가구) 등에서 재개발도 추진되고 있다. 인근 1㎞내에 1만2000여가구 규모의 주거단지가 새롭게 조성되는 셈이다.

수년째 공급이 수요를 상회하며 ‘미분양의 무덤’이라는 오명까지 얻은 대구 곳곳은 동대구역 일대처럼 신축 공사가 한창이었다. 동대구역에서 차로 20분을 걸려 도착한 북구도 한산한 분위기와는 다르게 공급 물량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북구는 지난 10월 기준 대구에서 준공후 미분양 아파트가 두 번째로 많은 지역이다.

지난 2021년 5월 준공된 북구 칠성동2가 대구역SD아이프라임(80가구)은 지난 10월 기준으로 75가구가 주인을 찾지 못했다. 이 단지는 대구역에서 2분 거리로 역세권에 있지만, 아직까지 남향·판상형 등 인기많은 가구가 남아있다. 2020년 8월 입주한 연경 대광로제비앙 더 퍼스트(580가구)도 입주 후 2년이 넘도록 일부 가구가 미분양 상태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대광로제비앙 더 퍼스트의 경우 위치가 좋지 않은 시행사 보유분이 일부 남아있는 상황”이라면서 “미분양이 소진되지 않으면서 이미 분양됐던 가구 중에는 현재 분양가와 비슷한 가격으로 나온 급매물이 단지마다 꽤 있다”고 했다.

지난 5일 대구 북구에 있는 한 아파트 전경. 2020년 8월 준공된 이 단지는 현재까지도 미분양 물량이 남아있다./최온정 기자

미분양 공포는 대구의 핵심지역인 수성구로도 번졌다. 현재 범어자이(399가구), 만촌자이르네(607가구), 수성 골드클래스(588가구) 등 공사가 진행 중인 단지에도 일부 미분양 물량이 남아있다. 만촌자이르네는 최근 미분양 물량을 털어내기 위해 할인분양을 했다가 최초 분양자들에게 뭇매를 맞기도 했다.

30년간 수성구에 거주했다는 인근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다른 지역에 비해 가격 하락폭이나 미분양 물량면에서 수성구가 선방하는 모습이지만, 예정된 분양 물량이 남아있어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분양가가 워낙 비싼 탓에 할인 분양에 들어간 단지도 있다”고 했다.

대구의 초과공급 상태는 상당 기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아실에 따르면 2023년부터 2026년까지 대구 전체에 공급되는 아파트는 7만792가구다. 연평균으로는 1만7698가구로, 적정수요 1만1828가구를 상회한다. 실제로 이날 방문한 대구 곳곳에는 아파트를 비롯해 오피스텔과 근린생활시설 등 다양한 공사현장이 눈에 들어왔다.

공급 과다 문제가 미분양과 맞물리면서 공사가 중단된 현장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중구 태평로2가 37-3번지 일대에서는 지난 5월 주택건설사업계획 승인을 받은 430가구 규모 아파트 건설 사업이 중단됐다. 이 현장은 지난 10월 공매로 나왔는데 지난달 10일까지 8차례 공매가 유찰되면서 여전히 사업이 멈춰있다.

5일 공사가 진행중인 대구 시내 전경./최온정 기자

전문가들은 정비사업 열풍이 공급 물량 과다로 이어졌다고 분석한다. 대구시가 올해 1월 고시한 ‘도시 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에 따르면 2030년까지 대구에는 247곳에서 재개발·재건축이 진행된다. 고시 당시 161곳에서 사업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대구시는 86곳을 정비예정구역으로 추가해 정비사업 규모를 키웠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대구시는 주택 공급을 제한하지 않고 민간 자율에 맡기는 편”이라면서 “서울에 비해 인허가도 까다롭지 않고 용적률도 높게 허용해 땅이 넓지 않은데도 공급 물량이 많다”고 했다. 그는 “민간에서 할인분양을 실시하거나 자체적으로 공급량을 조절하지 않으면 미분양 물량이 소진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대구는 오래된 도시인 만큼 정비사업 수요가 많다”면서 “최근 2년간 재건축·재개발 및 신규 분양 물량이 넘쳐나면서 공급이 수요를 상회했다”고 했다. 그는 “지금같은 부동산 침체기에서는 공급 물량이 소진되기 전까지 집값 하락세가 지속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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