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월드컵의 흑역사,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가 그렇게 된 이유

최희진 기자 2022. 12. 7.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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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 조작' '담합 의혹'…치욕의 역사

이번 카타르 월드컵 우리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였던 포르투갈전을 보시고 모두들 환호하셨을 겁니다. 후반 추가시간 황희찬 선수의 극장골로 강호 포르투갈을 2대 1로 물리쳤죠. 그런데 경기가 끝난 후에도 우리 선수들은 마음을 졸여야 했습니다. 같은 시간대 열리고 있는 같은 조 우루과이-가나 경기가 아직 끝나기 않았기 때문이었죠. 우리 선수들은 그라운드 한가운데 빙 둘러 모여서 그 경기 상황을 휴대폰으로 보면서 이대로 끝나기만을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는 시시각각으로 전해지는 같은 조 다른 팀의 경기 상황에 모두들 촉각을 곤두세우고, 중계방송 화면에서 실시간 순위가 표로 나오죠. 이런 장면은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마지막 두 경기가 동시간대 열리기 때문에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과거 월드컵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도 앞선 경기들처럼 다른 시간대에 열렸습니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두 사건 때문에 지금의 방식으로 바뀌게 된 겁니다. 바로 승부조작, 담합 의혹을 받았던 경기 때문이었습니다.

[승부조작 의혹이 나왔던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아르헨티나 군사 독재자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가운데)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은 역사상 가장 추악한 월드컵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군사 독재 정권 시절이었습니다. 1976년 육군 총사령관이었던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이사벨 페론 대통령을 축출하고 집권했습니다. 그리고 반대 세력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했는데 그 과정에서 수만 명의 시민들이 살해되거나 실종됐습니다. 이른바 '더러운 전쟁'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군사 정권에 대한 불만도 가득했습니다. 아르헨티나 군사 정부는 국민들의 관심을 돌릴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고, 비델라 대통령은 자국에서 개최되는 1978년 월드컵을 그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아르헨티나의 우승이 절실했던 겁니다.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개회식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의 대회 방식은 지금과는 달랐습니다. 당시에는 16개국이 출전했는데, 4팀이 4개 조로 나뉘어 1차 리그를 치르고, 각 조 1, 2위 8개 팀이 2개 조로 나뉘어 2차 리그를 치렀습니다. 그리고 각 조의 1위를 차지한 두 팀이 결승에 진출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1차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이탈리아에 1대 0 패배. 2승 1패로 이탈리아(3승)에 이어 조 2위로 2차 8강 리그에 진출했습니다. 여기서 같은 남미에 있는 숙명의 라이벌 브라질, 폴란드, 페루와 같은 조가 됐습니다. 1차전에서 폴란드에 2대 0 승, 2차전 브라질과 0대 0 무. 이렇게 해서 2차전까지 1승 1무였습니다. 브라질은 1차전에서 페루에 3대 0 승, 2차전 아르헨티나와 0대 0 무. 역시 2차전까지 1승 1무였습니다. 아르헨티나는 페루, 브라질은 폴란드와 마지막 3차전을 남겨 놓고 있는 상황에서, 두 팀은 1승 1무 동률이었던 겁니다.

[문제의 8강 리그 마지막 경기…아르헨티나 vs 페루]



앞서 언급했듯이 당시에는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가 동시간대에 열리지 않았습니다. 브라질과 폴란드의 경기가 현지 시각으로 오후 4시 45분에 먼저 열렸습니다. 이 경기에서 브라질이 3대 1 승리. 브라질은 2승 1무에 6득점 1실점으로 골 득실이 +5가 됐습니다. 아르헨티나는 한 경기를 남겨 두고 1승 1무 2득점 무실점. 페루를 4골차 이상으로 이겨야만 브라질을 골득실로 제치고 결승 진출이 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대단히 어려웠고, 가능성이 매우 희박했습니다. 페루가 그리 만만한 팀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페루가 낳은 전설의 선수 테오필로 쿠비야스가 절정의 기량을 보일 때였고, 예선에서도 강호 네덜란드를 제치고 조 1위로 올라올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페루는 직전 남미 선수권이었던 1975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팀이기도 했습니다.

이 경기는 브라질-폴란드 경기가 끝난 후인 오후 7시 15분에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비델라 대통령이 경기 전 페루 대표팀의 라커룸을 방문했습니다. 명목상으로는 격려 차원의 방문이었지만 공포스러운 분위기에 페루 선수들은 경기 전부터 주눅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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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진 기자chnovel@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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