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20년 뒤 대통령 후보자 A의 하루

심영구 기자 2022. 12. 7.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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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들> 미래 민주주의와 선거

*<예언자들>은 각 분야에서 연구 중인 KAIST 교수들이 특정 시점을 전제로 미래를 예측해 쓰는 가상의 에세이입니다. 그저 공상 수준이 아니라 현재 연구 성과와 미래의 실현 가능성을 정교하게 조율하기에, <예언자들>은 스프 구독자들에게 짧게는 10년, 길게는 50년 이상 과학이 내다보는 미래를 미리 살펴볼 수 있게 할 것입니다.

[2042년 3월 5일 수요일. 24대 대통령 선거일 자정]


"후...." 한숨 소리가 차 안을 가득 메운다.
대통령 선거 자정을 기점으로 공식선거 운동이 종료되었다. 열세였던 선거 판세를 일거에 뒤집은, 선거 열흘 전 제3당과의 연정 선언은 유력한 야당 후보 A의 신의 한 수였다. 광화문에서의 마지막 유세를 마친 뒤 그는 곧바로 캠프 사무실로 돌아와 수행원들과 회포를 풀며 일정을 마무리한다. 당내 경선부터 정말 쉼 없이 달려왔다. 그나마 이 새벽이 쉴 수 있는 시간이다. 날이 밝으면 미디어들의 결과 예측 속에 인터뷰도 해야 한다. 훌륭한 레이스였다고 자평하며 그는 잠자리에 든다. 새벽 0시부터 공식 투표는 전자투표 플랫폼에서 막 시작되었다.
 

[2042년 3월 5일 01시 17분. 선거 개시 77분 후]

젊은 유권자들이 많이 찾는 메타버스 플랫폼 '유토피아'에서 하나의 홀로그램 영상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격한 언어로 연정을 파기하는 독고닥의 긴급 기자회견이었다. 거짓이다. 하지만 누가 봐도 감쪽같은 딥페이크 영상에 사람들은 차분히 진실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그저, 자극적이고, 가십거리가 된다면 일단 퍼 나르고 본다. 선거를 고작 2시간 30분 앞두고 100명이 넘는 인플루언서들이 A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선언을 영상으로 띄운다. 하지만 이 역시 해킹된 계정이다. 젊은 유권자층이 많은 제3지대의 유권자들은 동요하기 시작한다. 출처는 한 곳을 특정할 수도 없었다. 전 세계 각지에서 퍼져나갔으니까. 지난 선거에서 적국의 사이버 공격으로 선관위의 투표 집계 시스템이 해킹되면서 고도의 기술적 위협에 대비하는 적응형 방어 시스템을 구축하였다고 하였지만 민간 플랫폼에서 벌어진 일들까지는 예방을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03시 30분]

"후보님. 후보님!" 수행원이 독고닥을 깨웠다.

캠프에서는 긴급 성명을 내기로 이미 중지를 모았지만, 후보의 직접 인터뷰로 가짜 영상 확산의 거센 파고를 막기에는 이미 늦은 감이 있었다. 며칠이면 진실이 밝혀지겠지만 선거는 오늘 밤 종료가 되고 결과는 되돌릴 수 없다. 결국 최후의 수단, '라이프레코더'를 공개해 가짜 영상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로 한다. 극소형 카메라가 장착된 목걸이 형태인 라이프레코더는 사용자 시점의 모든 영상과 음성을 기록한다. 재작년 ITU-R(국제통신연합: 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 Union-Radio)에서 확정한 IMT-2040은 7세대 이동통신(7G) 기술의 시대를 열었다. 노이즈 필터링된 라이프레코더의 데이터는 6G보다 100배 빠른 속도로 클라우드로 저장되어 언제든 자연어 처리(Natural language processing) 과정을 거쳐 사용자의 모든 과거 대화를 언제든 키워드로 검색 추출할 수 있다. KPS(한국형위성항법시스템)를 이용해 위치정보 역시 기록되므로 데이터는 소송 과정에서 종종 증거로 제출되었다. 하지만 촬영 대상자 의사에 반하는 영상의 유포 및 사용은 법률로써 엄격히 제한되고 라이프레코더 사용자에 대한 도덕적 비난도 있어, 공인으로서 사용을 공개하는 것은 최후의 수단이었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의미였다.

[2042년의 선거 : 아바타와 전자투표]

투표가 시작되고 투표율은 실시간으로 집계된다. 지난 20년 사이에 선거의 모습은 많이 변했다. 유권자들은 더 이상 신분증을 들고 투표소를 찾지 않는다. 선거는 di-Korea (digital innovation) 플랫폼에서 이루어진다. 얼굴 인식과 모바일, 음성 인증 절차를 거친 뒤 투표를 진행할 수 있다. 세금 납부나 공공기관의 인공지능 면접도 di-Korea 플랫폼에서 이루어진다. 선거 공보물과 벽보는 디지털 전환에 소외될 수 있는 계층을 위해 최소한만큼만 제공된다. 선관위 플랫폼에서는 지난 20년간 후보자들의 공적 발언과 법안 발의, 사회활동 등의 활동을 시각화 자료와 함께 확인할 수 있다. 국회의 속기록 공공데이터가 공개되고, 발의된 법안의 유사도, 팩트체크가 실시간으로 분석이 되면서 국회에서의 막말, 법안 발의의 남발, 쓸데없는 정쟁이 줄어들었다는 평가도 있었다.
자연어 이해(Natural language understanding: NLU)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정치인, 선거 후보자들은 앞다투어 오픈 도메인 챗봇(open domain chatbot)을 만들기 시작했다. 정당이나 조직에서도 인간 대변인의 자리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대변인의 입에서 나온 말이 문제가 되면 대변인을 경질하고, 실수라 책임을 묻던 풍경은 아예 사라질 기세다. 중립적으로 보이는 각종 페르소나 음성 챗봇에 책임을 묻고 그 위기를 넘기기가 더 쉽기 때문이다. 기업의 알고리즘 책임성에 대한 법안이 20년간 시장 중심의 미국, 국가 중심의 중국, 규제 중심의 EU 규범 사이에서 여전히 갈팡질팡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직자의 윤리, 플랫폼의 책임성보다 24시간 소통이 가능하다는 접근성과 효율성이라는 논리가 점점 우세해지고 있다.
 

[자동화된 선택 : 냉정한 알고리즘과 식어가는 참여의 열정 사이]

정치적 의사 결정을 위한 수많은 인터페이스가 쏟아져 나왔다. 이는 업무에 학업에 육아에 분주한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일상에 치이는 유권자들은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 최근 논란이 된 뉴스에 대한 입장을 5분 정도의 설문을 거쳐 입력하면, 고도화된 지능형 소프트웨어 에이전트 '아바타'가 정치인을 추천해준다. 라이프레코더의 음성데이터나 웹서핑 기록에 대한 개인정보 제공을 동의하면 학습을 통해 보다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 '아바타'는 후보자의 페르소나 챗봇을 만나 대화하면서 학습을 하고, 정부 공공데이터 미디어에서 후보자들의 인터뷰, 영상, 국회 속기록 등 방대한 데이터에 대해 날로 발전하고 있는 기계독해 (MRC machine reading comprehension) 과정을 거치면 유권자에게 지역구 선거에서 표를 던질 만한 후보자를 확률분포로 추천해준다. 데이터의 편향성과 확증편향에 대한 지적이 있지만 효율성과 편리함이라는 달콤함에 대다수 유권자들은 크게 논란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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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구 기자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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