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세금은 '법대로' 걷어주세요, 제발

김범주 기자 입력 2022. 12. 7. 09:00 수정 2022. 12. 7. 09:4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부 맘대로 달라지는 세금, 이제는 그만]


1. 기업들 인사철입니다. 옛날 언젠가 이맘때, 한 기업 회장이 측근을 불러서는 "요새 회사에서 돌아다니는 인사 소문 좀 이야기해봐"라고 묻더랍니다. 측근이 "아 그걸 그래도 어떻게 회장님께…" 하니까, "그래도 말해봐, 들은 게 있을 거 아냐"라고 또 채근에 채근이 이어졌습니다. 결국 어디는 누구, 저기는 누구, 풍문들을 쭉 읊을 수밖에 없었는데, 어떨 때는 회장이 끄덕끄덕, 어떨 때는 갸우뚱하다가 씩 웃기도 하고 이상했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인사가 났는데, 그때 말한 '썰'과는 뒤죽박죽으로, 거의 맞는 게 없게 나 있었습니다. 썰은 역시 썰이었던 것인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다시 만난 회장은 이런 말을 꺼냈습니다.

"그때 들은 것 중에 한 절반은 내 생각하고 같았어. 사람들 보는 눈은 비슷하더라고."
"아니 그런데 왜 그렇게 인사를 내셨어요?"
"그게 내 힘인데, 사람들 생각처럼 해주면 무슨 재미가 있어. 니들 생각대로 안 된다는 것도 보여줘야지."

2. 뭐 모든 권력자들이 이런 건 아니겠지만, 권력이란 게 그런 속성이 있긴 합니다. 한 번 쥐면, 휘둘러보고 싶은 것 말이죠. "사람의 인격을 시험하려면, 권력을 줘보면 안다"는 말이 있죠. 어떤 식으로든 힘이 나한테 있다는 걸 확인시켜줘야 사람들이 머리를 더 조아리고 조심하게 되긴 합니다. 그걸 한 번 두 번 하다 보면 또 중독이 되게 마련이고요.

재벌 회장이 자기 회사 인사 마음대로 내는 건 뭐 어쩔 수 없는 부분이죠. 원래는 이사회 같은 데서 견제를 해야 하지만, 우리나라 사정은 안 그러니까요. 그런데 사적 영역하고 다르게 공적 영역에선 권력을 쥐더라도 너무 도 넘게 휘두르지 말라고 견제하는 장치들을 여럿 만들어 둡니다. 수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끼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게 법과 규칙입니다. 특히 돈 문제, 세금 문제는 더더군다나 그렇습니다. 우리 헌법에도 세금에 대해서는 아주 짤막하지만 단호하게 59조에 명시를 해놨습니다.

"조세의 종목과 세율은 법률로 정한다."

그렇습니다. 누가 권력을 쥐든, 세금은 너 마음대로 하면 안 된다, 법대로 하라는 겁니다.

3. 그런데 우리나라엔 권력을 쥔 쪽 마음대로 늘였다 줄였다 하는 세금이 있습니다. 바로 부동산 관련 세금입니다. 물론 세금 종류와 세율은 법으로 정해져 있죠. 그런데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세금을 매기는 기준이 되는 집값, 땅값을 늘렸다 줄였다 합니다. 사람 키는 그대론데, 키 재는 자 눈금을 늘였다 줄였다 하면서 작년엔 160cm랬다가, 올해는 190cm랬다가, 마음대로 부르는 거랑 비슷합니다.

4. 비밀은 '공시가격'에 숨어 있습니다. 재산세, 종부세부터 건강보험료, 노령연금 등등 거의 60가지 행정에 쓰이는 중요한 기준입니다. 국민들 주머니 사정과 직결되는 것이니만큼 한없이 투명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정부 마음대로 때 타도록 주물럭주물럭해서 '원하는 금액'을 만들어 냅니다.

아파트, 그리고 많은 일반 주택들도 이제는 실제 거래가격을 대부분 그대로 신고합니다. 그러면 그 신고가격들을 바탕으로 한 지역 집값들을 감정평가사가 산출해내고 그걸로 계산을 끝내면 됩니다. 외국은 다 그렇게 합니다. 대신 그 금액 전체에 세금을 매길지 아니면 그중에 일부에만 세금을 매길지 법으로 비율을 정합니다. 예를 들면 미국 텍사스는 감정평가액의 100%를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고, 노스캐롤라이나주는 4.5%를 인정합니다. 그리고 주에서 정한 세액을 곱하는 식으로 재산세를 받습니다. 복잡하지 않습니다. 납득이 가능하니까요.

5. 우리 공시가격은 그런데, 레시피가 상당히 다릅니다. 시작은 감정평가사가 가격을 뽑긴 합니다. 그런데 그건 음식으로 치면 '육수 낸 정도'일 뿐입니다. 정부가 여기에 '특제 조미료'를 왕창 뿌려서 완전히 다른 금액을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이 조미료의 이름은 '현실화율'입니다. 실제 집값 평가액을 공시가격으로 인정하지 않고, 그중에 일부만 공시가격으로 정하는데, 그 비율을 그때 그때 권력을 쥔 정부가 마음대로 결정한다는 겁니다. 1989년에 이 공시가격이 만들어진 이후로, 대부분 기간 동안 시세의 50~60% 정도에서 왔다 갔다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정부가 이 조미료 쓰는 법을 확 바꿨습니다.

6. 이 현실화율을 2020년 70%에서 2030년에 90%로 올리겠다는 발표를 한 겁니다. 10년 사이에 20% 포인트 정도를 끌어올리게 됩니다. 특히 9억 원이 넘는 집들은 올리는 속도를 더 높였습니다. 계속 뛰는 집값을 잡기 위한 방법으로, "너네 이렇게 재산세, 종부세가 확 늘 건데, 그거 알고도 집 살 거야?"라는 카드를 꺼내 든 겁니다.

그 결과, 집값이 폭등한 것과 맞물려서 재산세, 종부세가 폭발적으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2019년에 재산세와 종부세를 합친 부동산 세금이 6조 3천억 원이었는데, 단 2년 만인 2021년엔 11조 9천억 원으로 90%가 늘었습니다. 대한민국에 자기 집을 가진 가구는 56%, 집 없는 가구는 44%입니다. "집값 많이 올랐는데 그 정도도 못 내느냐"고 누군가는 타박하겠지만, 결과적으론 세금을 더 걷는다는데 집 가진 56%는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죠. 그래서 세금 고지서를 받아본 사람들의 감정이, 지난 대선에서 큰 이슈가 됐던 겁니다.

7. 이어서 권력을 잡은 이번 정부는 지난주에 반대 발표를 내놨습니다.


[ https://premium.sbs.co.kr/article/gWFsmjbD30 ]
**'보러가기' 버튼이 눌리지 않으면 해당 주소를 주소창에 옮겨 붙여서 보세요.

김범주 기자news4u@sbs.co.kr

Copyright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