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honey] 함평만에서 한 해를 보내다

진성철 입력 2022. 12. 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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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포 한옥마을 전망대에서 바라본 함평만 낙조 [사진/진성철 기자]

(함평=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한 해가 또 저물어 가는 연말이다. 지는 해를 보며 상념을 날려 버리고 싶을 때다. 한적한 여행지에서 낙조가 보고 싶다면 전남 함평으로 가보자.

볼 빨간 해가 너른 갯벌과 한옥 기와지붕 너머로 사라지는 함평만 바다가 기다리고 있다.

허기진 배는 신선한 육회 비빔밥으로 채울 수 있고, 피곤한 몸은 뜨거운 바닷물로 찜질할 수 있다. 쉽게 보기 힘든 우(牛)시장에 들러보는 재미도 있다.

육회 비빔밥과 해수찜으로 시작한 함평 여행

함평의 육회 비빔밥 [사진/진성철 기자]

광주에서 차로 30여 분만에 도착한 함평 읍내는 장날이라 북적거렸다. 함평 장은 2일, 7일 선다. 길 가는 동네 사람을 잡고 맛집을 물으니, 한우 육회 비빔밥으로 이름난 두 곳을 알려주었다.

그중 함평 재래시장 골목 뒤의 한 식당에서 육회 비빔밥을 시켰다. 신선한 소고기 육회와 김, 콩나물, 상추가 담긴 비빔밥이 맑은 선짓국, 양념 볶음 고추장, 김치와 함께 나왔다.

맛있게 먹고 있는데 한 손님이 들어오며 "비빔 두 개 특 있지라"라며 주문을 했다. 들려오는 사투리가 비빔밥만큼이나 감칠맛 났다.

해수찜에 사용되는 유황 성분이 포함된 돌들 [사진/진성철 기자]

점심을 먹고 함평만에 있는 해수찜을 찾았다. 함평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해수찜 업소의 주인장 아저씨는 "일제시대 때 방조제를 쌓은 뒤 시작했다"며 "그때는 모래사장에 구덩이를 파고 거적으로 천막을 치고 해수찜을 했다"고 말했다.

이곳에는 찜질방이 18칸 있다. 찜질은 기본 2인용 방 한 칸당 가격을 치르고 추가 인원에 따라 더 요금을 지불하는 방식이다. 보통 1시간에서 1시간 반 찜질을 하게 되는데 주말에는 대기 인원이 제법 된다고 주인이 전했다.

불가마에서 달궈지는 유황 성분이 포함된 돌들 [사진/진성철 기자]

불가마도 있다. 불가마는 해수를 데우는 것보다 소나무 장작으로 돌을 달구는 게 주목적이다. 함평지역에서 난 유황 성분이 많은 돌을 뜨겁게 달군 뒤 해수탕에 넣으면 물 온도도 유지하고 빠져나온 유황 성분이 약효를 발휘한다고 한다.

수증기 가득한 함평 해수찜질방 [사진/진성철 기자]

찜질복으로 갈아입은 뒤 큰 수건 한 장을 쥐고 해수 찜질방에 들어갔다. 문을 여니 방안에 수증기가 가득했다. 탕의 해수는 80℃가 넘는다. 탕 위에는 볏짚 가마니, 양파망에 담긴 약쑥, 빨간색 파란색 목욕탕 바가지가 서너 개가 떠 있었다. 주인 할머니가 "뜨거우니께 발 담궈지 마쇼!"라며 주의를 주었다.

탕 옆의 나무 바닥에 앉았다. 따뜻한 바닷물의 수증기가 얼굴과 몸을 적셔 기분이 푸근했다. 목욕탕 사우나처럼 숨 막히는 느낌은 없었다. 벽에 기대어 앉아 해수 증기를 쬐다 아예 드러누웠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선 지라 금세 잠들어 버렸다.

함평 해수찜질방 [사진/진성철 기자]

1시간쯤 지난 뒤 눈을 떠보니 수증기가 여전히 찜질방 안을 채우고 있었고, 물도 뜨거웠다. 뜨거운 해수에 적신 수건으로 아픈 어깨와 목덜미를 찜질하고 바가지로 해수를 떠서 몸에 끼얹기도 했다. 세수했더니 짭짤한 바닷물 맛이 입가에 맴돌았다. 옆방에선 아주머니들의 수다가 오갔다.

함평만에 있는 해수찜 업소 [사진/진성철 기자]

1시간 정도의 찜질을 마치고 나오니 개운했다. 함평만에는 바닷물이 밀려와 찰랑거렸고, 마당의 빨랫줄엔 짙은 남색의 찜질복과 노란 수건이, 방파제에는 가마니들이 햇살과 해풍에 말라가고 있었다.

이날 마주친 손님 두어 명은 10년 전에 왔던 기억에 다시 찾았다고 했다. 아픈 다리에 효과가 좋았다며 웃었다. 부모님과 함께 온 중년 부부, 수도권에서 내려온 아주머니들 일행도 있었다.

주인장은 찜질 뒤에 4~5시간 동안은 민물로 씻어내지 않는 게 좋다고 당부했다.

"음~메~" 소 울음 가득한 우시장

낙찰된 비육우의 뿔에 파란색 락커가 뿌려져 있다. [사진/진성철 기자]

전남의 대표적인 가축시장인 함평 우시장을 보러 갔다. 매주 화요일마다 열린다. 2017년 새로 단장한 이곳의 정식 명칭은 '함평가축전자경매장'이다.

함평가축전자경매장 [사진/진성철 기자]

아침 7시쯤 우시장에 도착하니 "음~메~, 음~메~" 소 울음소리가 가득했다. 경매는 8시부터지만 고기소인 비육우들의 계류는 7시 전까지였다. 소들은 5시부터 들어온다고 했다. 송아지와 번식우들은 계속 실려 왔다. 방금 트럭에서 내린 소들은 쉽게 끌려가지 않으려 버티기도 했고, 사람이 이끄는 대로 순순히 따라가기도 했다.

송아지 한 마리가 끌려가지 않으려 버티고 있다. [사진/진성철 기자]

귀에 숫자가 적힌 노란 표식을 단 소들이 쇠로 된 울타리에 묶여 있었다. 비육우, 번식우, 암송아지, 수송아지로 분류돼 있었다. '축산물이력제'에 따라 소마다 이력번호, 출생 연월, 구제역 예방 백신 및 가축 질병 검사 정보가 기록된 이력서가 계류시설 앞에 붙어 있었다. 그리고 경매장 건물 벽의 전자게시판엔 소의 출하주 이름과 희망 가격이 ㎏당 8천~1만 원 사이로 다양했다.

함평 우시장(함평가축전자경매장) [사진/진성철 기자]

'가격평가사'라고 적힌 조끼를 입은 아저씨에게 물으니 소 가격은 "살찜 모양에 따라 결정된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가격이 하락 추세여!"라고 덧붙였다. 이제 소를 키운 지 5년이 됐다고 한 출하주는 "잠시 빛을 봤지만, 지금은 사룟값이 비싸 키울수록 손해지"라며 푸념했다.

이날 경매에 나온 비육우는 암소들만 110여 두였다. 열심히 소를 살펴보던 한 사람에게 물어보니 "40개월에서 50개월 사이가 가장 고기 품질이 좋고 가격이 잘 나온다"며 "2산(출산)을 마치고 3산, 4산에 들어가는 소들이 등급도 가격도 잘 나온다"고 알려주었다. 장성 우시장에서 근무한다고 본인 소개를 한 가격평가사는 "경매를 잘못하면 소 1마리당 100만 원 이상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함평가축전자경매장의 경매정보 알림 게시판 [사진/진성철 기자]

8시부터 비육우 경매가 시작됐다. 1차 경매는 25분간 진행됐다. 경매 참가자들은 손에 수첩과 전자 단말기를 들고 있었다. 소 울음 사이로 참가자들이 누르는 전자단말기의 소리가 삑삑거렸다. 출하주들은 초조한 표정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이윽고 전자게시판에 낙찰가와 낙찰자 명단이 떴다. 1차에서 유찰된 소는 10여 마리였다. 낙찰된 가격은 대부분 희망 가격보다는 조금 높았다. 최고가는 1만1천 원 정도였다. 이날 3차까지 진행된 경매는 2마리가 유찰되며 끝났다.

비육우 경매가 마무리되자 사람들이 락커를 들고 다니며 낙찰받은 소의 뿔과 엉덩이에 뿌렸다. 파란색 뿔을 가진 소 한 마리가 커다란 눈을 껌벅였다.

함평 우시장 [사진/진성철 기자]

낙찰된 소들은 계근대에서 무게를 쟀다. 전자저울 숫자가 750㎏에서 850㎏을 오갔다. 그리곤 새 주인에게 이끌려 트럭으로 이동했다.

소고기 가격이야 부위별로 다르겠지만 집으로 돌아온 뒤 밥상에 올라온 소고기는 100g에 1만 원이 넘었다. 축산업자에게서 밥상까지 이동하면서 소 가격이 10배 이상 비싸지는 셈이었다.

한옥마을 언덕에서 바라보는 함평만 낙조

주포 한옥마을 전망대에서 바라본 함평만 일몰 [사진/진성철 기자]

함평만의 돌머리해수욕장은 그리 크지 않은 모래 해수욕장과 넓은 갯벌이 있는 바다다. 갯벌 위에는 나무 데크로 만든 탐방로가 바다로 405m나 길게 뻗어 있다. 여름이었다면 조개, 보리새우, 낙지 등을 잡는 관광객이 갯벌에 붐볐겠지만, 탐방로 끝에는 청둥오리들만이 바닷물 위에서 놀고 있었다.

돌머리해수욕장 전망대에서 바라본 갯벌 탐방로 [사진/진성철 기자]
돌머리해수욕장 전망대 [사진/진성철 기자]

해수욕장 주변에는 소나무 숲 아래 원두막들이 있고, 팔각정과 돌탑이 기념비와 함께 서 있다. 파란색으로 칠해진 횃불 모양의 전망대는 2층에 올라 바다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기기에 좋았다.

주포 한옥전원마을과 함평만 [사진/진성철 기자]

주포 한옥마을은 함평군에서 함평만의 주포항에 조성한 전원마을 단지다. 개인 주택들도 있지만 30여 곳의 한옥 민박으로 인기 있는 곳이다. 평일에 찾은 한옥마을엔 사람이 적었지만, 주말에는 예약이 꽉 찬다고 민박집 주인이 말했다. 숙소에서 만났던 한옥 수리를 전문으로 하는 아저씨는 "바닷가에 자리 잡은 한옥마을이라 공기 흐름이 좋고 짠내도 적게 나는 곳"이라고 귀띔했다. 천천히 마을을 둘러보니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한옥들과 마당을 구경할 수 있었다.

저녁노을 질 무렵의 한옥마을 풍경 [사진/진성철 기자]

함평만의 낙조를 감상하기에 좋은 곳은 돌머리해수욕장 갯벌 탐방로와 주포 한옥마을 전망대다.

해 질 무렵 주포 한옥마을 전망대에 앉았다. 전망대는 한옥마을의 그리 높지 않은 언덕바지에 있다. 전날은 갯벌 탐방로에서 기다렸는데 구름이 짙어 일몰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이날은 맑았지만, 해무가 짙었다.

저녁노을 질 무렵의 한옥마을 풍경 [사진/진성철 기자]

함평만으로 안으로 삐져 들어간 돌머리해수욕장 가까이 해가 내려왔다. 서쪽 하늘과 갯벌, 바다가 붉어졌다. 한옥 마당에 있던 장독들도, 기와지붕 처마도, 유리 창문도 연한 붉은 색을 띠었다. 상기된 볼처럼 볼 빨간 해가 기와지붕과 갯벌 너머로 금세 자취를 감추었다. 아쉬움에 올 한 해는 어떻게 보냈나 생각하며 언덕 전망대에 한참 머물렀다.

주포 한옥전원마을 전망대에서 바라본 함평만 야경 [사진/진성철 기자]

사위가 너무 어두워 발길을 돌릴 때쯤 갯벌 위에 난 물길로 어선 한 척이 바다로 나아갔다. 검은 회색빛이었던 서쪽 하늘과 바다에는 오묘한 붉은 빛 여운이 조금 남아 있었다. 그리고 동쪽 하늘의 둥근 달에는 개기월식이 시작되고 있었다.

한옥마을 가로등 옆으로 보이는 달. 개기월식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진성철 기자]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2년 12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z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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