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바꾼 과학…미국 여성 과학자가 조명한 발명품 이야기

송광호 2022. 12. 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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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만든 물질 물질이 만든 인간' 출간
그리니치천문대 앞에 선 루스 벨빌 [김영사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1908년 어느 날 루스 벨빌은 그리니치 왕립 천문대를 찾았다. 정확한 시간을 알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자신의 시계 '아놀드'의 초침을 천문대 시계에 맞춰 조정했다. 그런 후 런던에 있는 고객들을 만나러 갔다. 기차역, 은행, 신문사, 주점 등에 있는 그녀의 고객들은 정확한 시간을 알아야 영업을 할 수 있었다. 벨빌은 그렇게 시각을 배달하며 하루를 보냈다. 사람들은 그녀를 '그리니치 타임 레이디'라고 불렀다.

미국 여성 과학자 아이니사 라미레즈가 쓴 '인간이 만든 물질 물질이 만든 인간'(원제: THE ALCHEMY OF US)은 신재료로 만들어진 현대의 물건들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변화시켰는지를 조명한 책이다. 책은 새로운 인공물질부터 의도치 않았던 신기술과 편향까지 다양한 내용을 소개한다.

책에 따르면 산업혁명 이전 적어도 2천 년간 인간은 분할 수면에 익숙했다. 가령 옛사람들은 밤 9시쯤 잠자리에 들고 자정이 지나면 잠에서 깬 후 한 시간 정도 빈둥거리다가 다시 피곤해지면 잠에 빠져들었다.

1차 수면과 2차 수면 사이에 그들은 글을 쓰고, 먹고 마셨으며, 바느질과 기도를 했다. 그들의 인생은 시간에 속박된 현대인의 삶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삶이 바뀌기 시작한 건 그리니치 표준시가 1883년 탄생하면서부터였다. 사람들은 동기화된 시간 망에 연결됐고, 그때부터 타임라인에 맞춰 살아갔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시간은 돈"이라는 말은 차츰 사람들의 '정언명법'으로 자리 잡았다.

표준시 이전에 사람들은 맘껏 잠을 잤다. 1차와 2차로 나눠서 잤고, 낮잠도 즐겼다. 유럽의 '시에스타', '집 밖에서의 쪽잠' 등은 여전히 남아 있는 그런 시대의 유산이다. '발명왕' 에디슨도, 정치인 처칠도, 과학자 아인슈타인도 낮잠을 즐겼다. 그러나 시간이 돈인 노동자들은 눈을 비비며 카페인을 섭취하는 쪽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크리스마스에 소포를 배달하는 우체국원 [김영사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시계가 사람들을 쉼 없는 노동으로 견인했다면 철도는 그들을 소비의 세계로 이끌었다. 철과 탄소의 혼합물로 만들어진 강철은 미국의 산업화를 앞당겼다. 강철로 만든 기차 레일은 미국 곳곳에 건설됐고, 이는 미국 경제의 동맥으로 작용했다. 예컨대 미국 문화의 일부가 된 쇼핑이 활발해진 것도 강철 레일 덕분이었다. 열차는 상품을 실어 오는 동시에 이 상품을 소비할 사람들을 상점으로 데려옴으로써 자본주의의 순환고리를 만들었다. 여기에 크리스마스는 상품 소비를 한껏 부추겼다. 19세기 후반, 크리스마스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선물 주는 날'로 변모했다. 그리고 각종 크리스마스 제품을 운송하기에 강철 레일만 한 것이 없었다. 1880년 뉴욕타임스는 "(크리스마스 때 선물하는) 유행은 거의 무분별한 과소비처럼 보인다.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경쟁하듯 선물에 돈을 쓰고 있다"며 당대 상황을 비판적으로 보도했다. 이런 도덕적 지탄에도 수많은 열차가 크리스마스트리, 카드, 선물을 가득 싣고 강철 레일 위를 달렸다.

즉석 사진이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악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힌 캐롤라인 헌터 [김영사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19세기 말에 발명된 사진도 사회적 변화에 한몫했다. 당대 미국 신문에는 흑인의 특징을 과장한 캐리커처가 주로 사용됐다. 검은 피부에 커다란 눈만 유독 하얗게 표현된 웃는 얼굴의 캐리커처가 지면을 장식했다. 연설가인 프레데릭 더글러스와 역사학자 W.E.B 듀보이스는 사진을 이용해 이런 정형화된 이미지를 없애고자 노력했다. 사진이 현실을 그대로 포착할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현실 재현의 힘은 때로 악용되기도 했다. 폴라로이드사는 1966년 즉석 사진을 개발했는데, 이 기계를 이용하면 1분 안에 즉석 사진을 출력할 수 있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폴라로이드사의 즉석 사진을 활용해 통행증용 사진 1장과 정부 보관용 사진을 찍어 1천500만 명의 흑인을 관리했다. 이에 폴라로이드사에 근무하던 캐롤라인 헌터는 "폴라로이드사는 60초 안에 흑인을 가둔다"라고 주장하며 회사를 비판하고 흑인 인권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이 밖에도 저자는 한때 진공을 유지하는 데 최고의 재료였던 유리, 인간에게 교만을 싹트게 한 전구,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골든 레코드, 원거리 통신을 가능케 했던 전신 등 8가지 다양한 발명품을 통해 인류 삶의 변화상을 포착한다.

책에는 전문적인 과학 설명도 간간이 나오지만, 이야기의 결을 해치는 수준은 아니다. 과학서임에도 스토리텔링이 돋보이는 인문학적 향취가 느껴지는 책이다. 저자는 "읽고 싶은 책이 있는데 아직 쓰이지 않았다면 당신이 그것을 써야 한다"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토니 모리슨의 말에 영감을 받아 책을 썼다고 한다.

저자는 이 책으로 2021 브라운대학도서상을 포함해 다양한 상을 받았다.

김영사. 김명주 옮김. 464쪽.

책 표지 이미지 [김영사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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