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회 단상[편집실에서]

2022. 12. 7.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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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달력이 한장 남았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영향으로 몇해째 미루고 미뤘던 크고 작은 송년회 초청장이 여기저기서 날아듭니다. 흥의 민족 한국인의 만남에 술이 빠질 수 없지요. 오랜만이라고 한잔, 반갑다고 한잔, 그리웠다고 한잔하다 보니 비용이 예산을 훌쩍 초과하기 일쑤입니다. 다음날, 비용청구서가 날아듭니다. 가장 무난한 ‘N분의 1’ 방식을 사용합니다. 한두 번은 그러려니 했는데 자꾸 반복되니까 비음주자의 눈에 점점 크게 다가오는 게 있습니다. 고주망태가 됐거나, 술을 입에도 대지 않았거나 관계없이 일단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내야 하는 금액이 동일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좀 억울합니다. 많이 마시고 즐긴 사람이 비용을 더 부담해야 공평하지 않나요? 물론 생각만 했지 입 밖에 꺼내지는 않았습니다. “기분 좋게 마셔놓고 그깟 돈 몇푼 때문에 쩨쩨하게 왜 이래?”라는 핀잔이 날아올 것 같아서요.

음주의 세계에 한창 빠져 살 때는 비음주자의 입장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몰라서 그냥 지나쳤을 뿐 아니라 제대로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술이란 게 참 묘해서 잘 못 마신다고 선배들의 눈치를 한몸에 받던 ‘입문’ 시절도 있었는데 어느 순간 보니 후배들에게 술잔을 ‘강권’하고 있더군요. 가랑비에 옷 젖듯이 대세에 동화돼버린 거지요. 그때부턴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고 비음주자를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적어도 속으로는 그랬습니다. ‘자기만 아는 사람’, ‘건강만 챙기는 사람’ 등의 딱지를 붙여가며 동료·후배를 함부로 재단했습니다. 회식하자 불러놓고 밥만 사주는 선배는 ‘인색한 사람’, ‘속 좁은 사람’으로 몰아갔습니다. 지금의 ‘곤경’은 어쩌면 과거 술을 즐겨 마시던 시절에 저지른 ‘악행’의 엄혹한 대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세상에는 무수한 ‘비주류’, ‘소수자’, ‘약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불편과 설움, 차별도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온전히 알기 어렵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주류와 다수자, 강자들은 아무런 어려움도 없나보다고 착각합니다. 문제를 공론장에 부치고 부조리를 끊임없이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며 응원하는 까닭입니다. 화물연대의 파업을 향해 여기저기서 돌팔매질합니다. 파업노동자들의 주장을 ‘생떼’로 몰아가고 무리한 요구라며 일축해버립니다. ‘불법행위 엄단’ 방침을 천명한 정부는 업무복귀명령을 발동했습니다. 강경 대응의 원천은 무엇일까요. 무엇을 요구하는지, 어떤 점을 힘들어하는지 진정 잘 아는 데서 나오는 자신감일까요.

“노조 파업으로 열차 운행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서울교통공사의 노사협상 타결 전날인 11월 30일 저녁 지하철에서 흘러나온 안내방송입니다. 시민 불편의 원인이 파업이라고 단정짓는 듯했습니다. 열차 운행 지연과 협상 타결 지연 중에서 뭐가 더 심각한 문제입니까. 적어도 “협상 결렬로 열차 운행이 지연되고 있습니다”라고는 안내해야 공평하지 않을까요.

권재현 편집장 jay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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