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미식 품평…셰프의 오싹한 복수

김은형 2022. 12. 7.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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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레스토랑 가이드인 <미쉐린 가이드> 별 셋을 받은 고급 식당.

한끼에 30만~40만원짜리 비싼 메뉴에도 예약하기가 별 따기인 이곳에 '우선 예약' 특혜 제안이 온다고 가정해보자.

이런 손님들에게 신물 난, 영화 <더 메뉴> (7일 개봉)의 스타 셰프 슬로윅(레이프 파인스)은 복수를 준비한다.

화려한 파인다이닝(고급 정찬)이라고만 생각했던 메뉴는 코스를 밟아갈수록 이상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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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메뉴’ 7일 개봉
영화 <더 메뉴>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세계적인 레스토랑 가이드인 <미쉐린 가이드> 별 셋을 받은 고급 식당. 한끼에 30만~40만원짜리 비싼 메뉴에도 예약하기가 별 따기인 이곳에 ‘우선 예약’ 특혜 제안이 온다고 가정해보자. 단 조건이 있다.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는 물론 친구나 지인들에게도 입 닫고 마음으로만 이 경험을 간직해야 한다면? 손을 번쩍 들었던 지원자 중 절반, 아니 80%는 조용히 손을 내릴 것이다. 산업화 시대의 부르주아가 예술을 대했던 태도처럼 현대의 미식은 재력과 취향과 인맥을 과시하는 중요한 도구다. 한입 베어 물면 그저 웃음이 씩 나오는 만족감은 카메라 앵글과 현학적 비교와 시니컬한 품평 뒤로 밀려난 지 오래다.

이런 손님들에게 신물 난, 영화 <더 메뉴>(7일 개봉)의 스타 셰프 슬로윅(레이프 파인스)은 복수를 준비한다. 이것이 복수인 줄 모르는 다섯 테이블 11명의 손님이 1인당 1250달러를 흔쾌히 지불하고 레스토랑 ‘호손’이 있는 섬으로 향한다. 깐깐하게 예약자 명단을 체크하고 오로지 ‘더 메뉴’를 위해 관리되는 섬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손님들은 이런저런 호기심을 보이지만 책임 매니저인 엘사(홍 차우)에게 면박당하기 일쑤다.

영화 <더 메뉴>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테이블에 착석하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잘 훈련된 종업원들, 그리고 슬로윅의 카리스마 넘치는 설명과 함께 코스가 시작된다. 자칭 미식가인 타일러(니컬러스 홀트)는 금지된 사진을 몰래몰래 찍고, 퇴물 배우(존 레귀자모)는 셰프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잘난척하고, 주식 브로커인 세 남자는 이 정도는 대수롭지 않은 식사라는 듯 허세를 부린다. 한때 슬로윅을 띄웠던 음식평론가는 메뉴가 나올 때마다 깎아내리기 바쁘다.

화려한 파인다이닝(고급 정찬)이라고만 생각했던 메뉴는 코스를 밟아갈수록 이상해진다. 빵이 나오는 순서에 번지르르한 설명과 함께 빵 없이 소스만 주거나 타코 순서에 나온 토르티야에는 각자의 비밀스러운 치부가 그려져 있다. 하지만 이 상황을 불쾌하게 느끼는 사람은 타일러의 급조된 파트너로 미식에 관심 없는 마고(애니아 테일러조이)뿐이다.

영화 <더 메뉴>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그럼 잘못은 오로지 소비자에게만 있는 걸까? 날카로운 메스는 창작자이자 생산자인 셰프에게도 향한다. 권위 있는 품평에 기대어 주목을 받고, 유명인들을 이용해 명성을 올리는 건 수많은 셰프뿐 아니라 현대의 모든 창작자들이 가지고 있는 성공의 공식이다. 주목받기 위해, 유인하기 위해 더 화려하고 더 독특하고 때로는 이해불가의 생산물을 내놓는다. 슬로윅은 코스 막바지에 자신의 치부도 기꺼이 드러내고 스스로를 징벌하기 위해 죽음으로 장대하게 막을 내리려는 이 코스에 동참한다.

영화 <더 메뉴>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더 메뉴>를 보는 즐거움은 이중적이다. 코스가 이어질수록 숨을 조여오는 긴장감 속에 미식이 상징하는 현대인의 속물성이나 계급의식에 대한 신랄한 조롱을 보는 쾌감이 있는 반면, 파인다이닝이 주는 시각적인 즐거움도 적잖게 녹아 있다. 미국에서 유일하게 여성으로서 <미쉐린 가이드> 별 셋을 획득한 샌프란시스코의 ‘아틀리에 크렌’ 오너 셰프 도미니크 크렌이 직접 영화를 위한 요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빅쇼트> <바이스> <돈 룩 업> 등 차가운 농담에 능수능란한 애덤 매케이 감독이 제작했고, <왕좌의 게임> <석세션> 등 티브이(TV) 시리즈로 두각을 나타냈던 마크 밀로드가 연출했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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