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농 열전 백년농부] “농부로 키워준 이웃들…함께 고향 지키고 싶어요”

지유리 2022. 12. 7.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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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농촌에 살기로 정한 이유는 사람 때문이에요. 옆집 숟가락이 몇개인지 알 만큼 살갑게 지내는 이웃과 어울려 살고 싶어서요."

"저까지 4대째 화천에서 밭을 일구며 살고 있어요. 함께 버텨온 이들이 없었다면 힘들지 않았을까요? 저 역시 작목반 삼촌들이 안 계셨다면 지금처럼 농사지으며 살지 못했을 거예요. 받은 만큼 돌려주며 이웃과 함께 고향을 지키고 싶습니다."

송씨가 화천에 온 지 내년이면 10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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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농 열전 백년 농부] (21) ‘너래안’ 송주희씨
취업전선서 고배 후 부모님 품으로
지친맘 위로받으며 ‘농부되자’ 결심
작목반 지원 힘입어 가공회사 운영
들깨 등 지역농산물 판로역할 ‘톡톡’
“청년들로 활기 넘치는 농촌 그려요”
 

농업회사법인 ‘너래안’의 송주희씨(가운데)와 부모님 송임수(왼쪽)·김순자씨. 이들은 강원 화천 농산물로 가공식품을 만들어 팔며 이웃 농가의 판로 확대에도 힘쓰고 있다.


“제가 농촌에 살기로 정한 이유는 사람 때문이에요. 옆집 숟가락이 몇개인지 알 만큼 살갑게 지내는 이웃과 어울려 살고 싶어서요.”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나고 자란 강원 화천을 떠나 상경한 송주희씨(33)는 스물다섯 나이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연거푸 취업에 실패하며 새로운 꿈을 찾던 그의 눈에 밭농사를 짓던 부모님이 보였고 가족과 함께한다면 농부로 성공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들었다. 결심을 더욱 북돋운 건 이웃사람들이다. 화천은 송씨네가 대대로 집성촌을 이루고 살던 곳이다. 한집 건너 한집이 친척이라 유달리 사이가 화목하다. 정이 넘치는 이웃은 삭막한 도시생활에 지친 그의 마음을 달래주기 충분했다.

농부가 되기로 마음먹었지만 경험도 지식도 없었던 송씨. 40년 넘게 농사를 지은 아버지는 스승이라기보단 표지판 같은 존재였다. 말로 하는 가르침 대신 몸소 농부로서 지녀야 할 삶의 태도를 보여줬다.

“지금껏 부모님에게 잔소리를 들은 적이 없어요. 1∼2년차에는 새벽에 일어난 아버지가 저를 깨우지도 않고 밭에 나가는 거예요. 늦잠 자고 일어났는데 집에 혼자 남아 있으면 등골이 오싹해요. 허둥지둥 밭으로 가죠. 아버지는 저를 흘긋 보곤 그냥 일만 하세요. 혼내는 것보다 더 무서워요. 이튿날 새벽에는 저절로 눈이 떠진다니까요.”

스승이 돼준 건 마을 작목반 삼촌들이다. 화천은 작목반 활동이 활발하다. 밭농사는 연작 피해가 있어 작물을 자주 바꿔야 한다. 매번 새로운 영농기술을 도입하다보니 서로 도우며 가르쳐주고 배우는 문화가 정착돼 있다. 또 농가별 생산량이 적어 경쟁력을 높이려고 대부분 여러 집이 함께 유통·판매한다.

그가 창업한 농산물 가공회사인 ‘너래안’도 작목반이 없었다면 출범할 수 없었다.

송씨가 착유기에서 기름을 짜고 남은 깻묵을 꺼내고 있다.


“2005년에 35농가가 모여서 정부 지원을 받아 번듯하게 가공창고를 지었더라고요. 기름을 짜는 착유기까지 마련하고요. 그런데 제대로 활용을 하지 못하고 계신 거예요. 놀리기 아까워서 제가 뭐라도 해보기로 했죠.”

마침 아버지가 작목반을 꾸려 들깨를 재배하고 있었으니 너래안은 금세 닻을 올렸다.

사업 첫해부터 지금껏 들기름은 부모님과 마을사람들이 재배한 들깨를 쓴다. 화천에서 난 것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들인다. 무리가 될 때도 있지만 이웃 농가에 안정적인 판로가 돼주고 싶은 마음이 커서다. 그렇게 구매한 화천산 들깨는 연간 20t에 달한다. 콩과 팥·조·수수 같은 잡곡류도 마찬가지다. 특히 너래안이 자리 잡은 간동면 오음리 산물은 주저하지 않고 구입한 후 직접 선별해 소포장해 판다.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을 땐 물량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구매를 거절한 적은 없다.

“저까지 4대째 화천에서 밭을 일구며 살고 있어요. 함께 버텨온 이들이 없었다면 힘들지 않았을까요? 저 역시 작목반 삼촌들이 안 계셨다면 지금처럼 농사지으며 살지 못했을 거예요. 받은 만큼 돌려주며 이웃과 함께 고향을 지키고 싶습니다.”

송씨가 화천에 온 지 내년이면 10년이 된다. 한때 농장 규모를 키우고 수익을 올려 성공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보다는 화천에 청년이 모여 활력이 돌았으면 한다. 바쁜 틈에도 부지런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일상을 공유하는 이유다. 농촌에서도 얼마든지 재밌게 일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도시민을 불러모으려고 봄과 여름엔 애플수박과 딸기를 길러 체험농장도 연다. 함께 가야 멀리 간다는 걸 깨달았다는 송씨. 청년농부로 열심히 일하며 좋은 본보기가 돼 지역과 농업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다.

화천=지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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