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own] 김을 뒤집었다, 김 시장을 흔들었다

장흥/조홍복 기자 2022. 12. 7.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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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산 안쓰는 ‘친환경 김’ 전남 장흥군의 도전
지난 4일 전남 장흥군 앞바다 ‘무산김’ 양식장의 모습. 어민들이 김이 자라고 있는 기다란 김발을 뒤집고 있다. 보통 김 양식장에서는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유기산을 쓰지만 장흥 무산김 양식장에선 사람이 수시로 김발을 뒤집어 햇볕을 쬐는 방식으로 김을 기른다. 그만큼 정성이 들어가지만 친환경 김으로 인정받아 해외에도 수출하고 있다. /김영근 기자

지난 4일 이른 아침 전남 장흥군 회진면 신상리 득량만(得粮灣) 김 양식장. 김을 키우는 양식 어구인 김발을 물 밖으로 노출하는 ‘김발 뒤집기 작업’이 한창이었다. 어민 백경만(47)씨 등 2명은 1.25t 소형 어선 앞부분에 갈고리로 김발을 건 뒤, 어선이 전진하는 힘으로 폭 1.9m, 길이 80m짜리 김발 1줄을 뒤집었다. 80m 길이 김발은 200줄에 달했다. 김발과 함께 물속에 잠겨 있던 까만 물김이 햇볕·공기와 맞닿았다. 작업이 2~3시간 이어지자 백씨 이마엔 구슬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백씨는 이날 해 질 무렵에 양식장을 찾아 김발을 다시 물속에 넣었다. 김발을 공기 중에 노출하는 일은 일주일에 두 차례쯤 한다. 장흥 대표 수산물 ‘무산(無酸)김’ 양식 방법이다.

스티로폼으로 양식 어구를 바다에 띄운 부유식 양식장에선 김이 물속에만 잠겨 있다. 이 때문에 파래·매생이 등 다른 해조류가 김발에 붙는 것을 방지하고, 김이 녹아 사라지는 ‘갯병’을 예방하기 위해 유기산(有機酸)을 사용한다. 김발을 수고스럽게 뒤집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유기산은 염산 10%와 영양제(일종의 비료) 90%를 섞어서 만든 것이다. 하지만 장흥의 부유식 김 양식장은 다르다. 자라는 물김을 자연광과 해풍에 노출하는 것만으로 유기산을 사용하는 효과를 낸다. 유기 화합물인 유기산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생산법이다. ‘무산김’ 양식 방법은 올해로 15년째 이어지고 있다. 백씨는“고되지만 무공해 청정 바다에서 친환경 무산김을 만든다는 자부심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일 전남 장흥군 회진면 신상리 득량만 앞바다 ‘무산김’ 양식장에서 한 어민이 김발을 물밖으로 노출시키는 '김발뒤집기' 작업을 하고있다./김영근 기자

◊친환경 김 생산 전국 1위 장흥

장흥군은 이달 초부터 무산김 수확에 본격적으로 들어갔다고 6일 밝혔다. 무산김 채취는 내년 4월 초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주성환 장흥군 수산자원팀장은 “김 양식장이 펼쳐진 득량만 수온이 7~12도로 김 양식에 알맞게 유지되고, 가뭄에도 수확 직전에 적절한 양의 단비가 내려 올해 김 작황이 좋다”고 말했다. 장흥 득량만에선 서울 여의도 12배 크기의 김 양식장(3587㏊)에서 146개 어가(漁家)가 물김을 양식한다.

장흥에선 모든 어가가 무산김만을 생산한다. 무산김 양식법으로 채취한 물김 생산량은 올해 기준 1만353t으로, 생산액은 166억원에 달했다. 유기산 등을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김 생산량은 전국 1위다. 수확한 물김은 가공 공장으로 옮겨 마른김으로 가공하고 나서 전국으로 유통한다. 특히 무산김은 1년 단위로 정부로부터 친환경 인증을 받아 전국의 학교 급식에 공급하고 있다. 장찬석 장흥군 홍보팀장은 “무산은 지명이 아니라 염산이나 유기산 같은 산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뜻”이라며 “산을 사용하지 않는 김만을 생산하는 고장은 장흥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무산김 양식 방법을 적용하면 김 특유의 향이 살지만 인건비와 어선의 기름 값이 더 든다. 양식 방법이 까다로워 오히려 생산량은 일반 김보다 30% 줄어든다. 정부는 이에 따라 2년 전부터 친환경 농수산물 수확 농어업인에게 소득 감소분과 생산비를 보전해 주는 ‘친환경 직불제’ 예산을 장흥에 투입하고 있다. 작년의 경우 장흥 146개 어가 중 친환경 인증을 받은 113개(77%) 어가가 24억원을 받았다. 장흥군은 종묘(김 씨앗)와 양식 기자재 구입 등에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어가당 연간 1억원 안팎의 소득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처음 베트남 수출도

올해는 처음으로 장흥 무산김이 베트남 수출길에 올랐다. 장흥의 가공 업체가 지난달 23일 2t 규모의 무산김을 베트남 람동성에 수출했다. 금액으로는 약 2800만원어치다. 장흥군 관계자는 “무산김의 동남아 진출 교두보를 마련한 것”이라고 했다. 장흥에선 미국·홍콩·일본·중국 등에 가공한 무산김을 연간 28억6700만원(220만2000달러)어치 수출하고 있다.

특히 장흥군은 오는 25일 친환경 해조류를 국제적으로 인증하는 ‘ASC(네덜란드 수산양식관리협의회)-MSC(영국 해양관리협의회)’ 인증 마크를 받을 예정이다. 김 양식 지자체로는 세계 최초다. 장흥의 110개 어가가 참여해 만든 장흥무산김㈜ 장용칠 대표이사는 “바다 생태계가 지속적으로 친환경 상태를 유지한다는 걸 국제적으로 인증받았다”고 말했다. 임용화 장흥군 수산가공유통팀장은 “2년 동안 준비해 모든 인증 절차를 통과했다”고 말했다.

장흥은 15년째 ‘바다의 반도체’라 불리는 김에 산을 사용하지 않고, ‘친환경 김 고장’ 명성을 지키고 있다. 군은 양식장 바다 8군데에 고성능 방범카메라(CCTV)를 설치해 실시간 감시를 한다. 산을 사용하면 양식 면허를 해지하고, 양식장 철거, 지원금 회수 등의 조치를 한다. 주성환 군 수산자원팀장은 “2008년 5월 무산김 양식 선포식 이후 산을 사용하다 적발된 어업인은 1명도 없다”고 말했다.

김성 장흥군수는 “무산김 양식법으로 바다가 깨끗해져 ‘바다의 숲’인 잘피(바닷속에서 자라는 식물) 군락지가 넓어졌고, 바지락과 키조개, 낙지 등 다른 수산물 생산량이 늘어나고 있다”며 “친환경 양식 자재 사용과 우량 종자 개발, 스마트 가공 공장 구축 등에 예산을 더 투입해 무산김 생산량을 늘리겠다”고 말했다.

/장흥=조홍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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