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의 AI시대의 전략] 30㎝ 반도체칩이 초고속 컴퓨터 85만개 기능… ‘초거대 반도체’ 시대 개막

김정호 KAIS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 입력 2022. 12. 7. 03:04 수정 2022. 12. 7.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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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초 초등학교 시절 고려대학교 건너편 동대문구 제기동에 있는 홍파초등학교를 다녔다. 2학년 때 홍천에서 전학 와서 제일 먼저 놀란 것은 엄청난 학생 수였다. 그때 학생이 한 반에 80명 가까이 있었고, 한 학년에는 15반까지 있었다. 콩나물 교실이라 불렀다. 월요 조회 시간에는 전교생이 운동장에 다 모였는데, 그 수가 무려 7000명이 넘었다. 운동장에 빽빽하게 모인 학생 수는 정말 ‘큰 숫자’였다. 그때 학교 앞을 달리던 시영(市營) 버스는 문을 닫지 못하고 곡예 운전으로 출발했다. 버스 차장이 문 끝에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겨울이 다가오면 경동시장 골목길에는 김장 배추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는데 그것도 아주 큰 숫자였다. 수십 년 흘러 디지털 혁명 시대인 2025년경에는 한 해 동안 지구 전체에서 생산되는 데이터의 숫자가 175ZB(제타바이트)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이때 제타(Z)는 10의 21제곱이라는 대단히 큰 숫자의 단위가 된다. 한편 최근 경북 봉화 광산에서 광부들이 무사히 구출되었다. 그 아연 광산 막장에 갇혔다가 구출된 광부들과 그 가족에게는 221시간은 셀 수 없는 무한(無限) 크기의 시간이다. 탄광 갱도 깊이 190m도 측정하기 불가능한 광년(光年)의 거리가 된다. 이렇게 ‘큰 숫자’와 이를 재는 ‘물리 단위’는 각 시대 상황에 따라 나타나는 ‘초거대(超巨大)’ 현상과 이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소외(疏外)’를 상징한다.

지금 디지털 혁명 시대에 가장 필수적인 인공지능의 학습과 판단에는 수많은 수학 행렬 계산이 수행된다. 인공지능은 수많은 행렬 계산을 통해서 최고의 이익 확률을 가진 결정을 ‘판단(Inference)’으로 출력한다. 그런데 여기에 수학 행렬 계산은 정의(定義) 자체가 병렬 과정이다. 다시 말해서 여러 계산기가 나누어 동시에 계산하고, 다음 단계에서 합치면 된다. 그래서 인공지능 반도체와 서버 컴퓨터는 극단적 병렬 구조를 갖는다. 이를 위해 GPU(Graphic Process Unit)에는 ‘수천 개’의 계산기 코어(Core)가 병렬로 내장된다. 그래야 가상 세계 속에서도 전세계 인간 숫자만큼 제각각 개별 인간을 닮은 인공지능을 생성할 수 있다. 최근에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인공지능 반도체 칩 하나에 ‘수십만 개’의 병렬 계산기 코어(Core)를 내장한 ‘초거대 인공지능 반도체’가 등장했다. 이제 반도체도 초거대 시대가 되었다.

반도체는 실리콘 웨이퍼(기판) 위에 극자외선을 이용한 연속적인 판화 인쇄 작업(Lithography)으로 완성된다. 그리고 웨이퍼 공정을 모두 마치고 나면 작은 실리콘 조각으로 잘라서 쓴다. 하지만 최근 미국 인공지능 반도체 기업인 세레브라스(Cerebras)는 12인치 웨이퍼 전체를 반도체 칩 하나로 개발했다. 12인치 웨이퍼는 그 지름이 무려 30.48cm다. 사람 얼굴만 한 세숫대야 크기의 반도체 하나가 수퍼컴퓨터급 인공지능 계산을 수행한다. TSMC 7㎚ 공정을 사용하는 이 반도체 칩 하나에는 무려 85만개의 계산기 코어가 내장되어 있다. 칩 내부에는 2조6000억개의 트랜지스터가 연결되어 있고 40기가바이트(GB)의 내장 메모리가 설치되어 있다. 이러한 혁신적이고 파격적인 프로세서와 메모리의 동시 복합 설계로 인공지능 계산이 더욱 빠르게 되었고 전력 소모가 대폭 감소했다. 이렇게 웨이퍼 크기의 초거대 반도체 하나가 인공지능 수퍼컴퓨터가 된다. 지금 반도체 세계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반도체 초격차 혁신의 모습이다.

이제는 인공지능 모델 자체도 초거대 크기로 확대되고 있다. 이를 초거대 모델(Giant Model) 또는 기초 모델(Foundation Model)이라고 부른다. 바로 여기 초거대 모델의 학습에 초거대 반도체가 사용된다. 그리고 이들이 집적되어 초거대(Hyperscale) 데이터 센터가 된다. 세레브라스 WSE-2 인공지능 반도체는 암 치료 연구, 코로나19 연구, 신약 개발 연구, 중력파 연구, 물질 탐색 연구, 유전자 연구, 트라우마 연구, 인지 능력 연구, 그리고 국방 인공지능 연구 등에 사용 중이다. 이들은 인간과 지구가 함께 갈망하고 기도하는 건강, 안전, 행복과 지속성을 실천하기 위한 희망의 도구가 되어가고 있다.

경북 봉화에서 국도를 타고 울진 방면으로 태백산을 넘다 보면 왼쪽 어깨 옆으로 작은 마을 소천면(小川面)이 나타난다. 그 이름처럼 낙동강 상류가 투명한 급류를 만들고 시원히 흘러 청량산(淸凉山) 앞으로 흐른다. 가을이 깊어지면 청량사(淸凉寺)에서는 산사 음악회가 열리고 음악 소리에 붉은 단풍은 시리도록 아름답다. 산을 내려와 봉화읍 시장에서는 친절한 상인에게서 봉화 한우와 향긋한 삶은 문어를 살 수 있다. 바로 그 소천면에 광부들이 구출된 아연 광산이 있다. 광부들은 어둠 속에서 아연(Zn)을 캐고 그 아연은 산소와 결합하여 산화아연(ZnO) 반도체가 된다. 까만색 땀으로 초거대 디지털 사회를 앞당기는 것이다. 그럴수록 인간은 가상 세계와 휴대폰 유리판을 통해서만 서로 연결된다. 그 연결조차도 인공지능의 지배를 받는다. 초거대 반도체, 초거대 인공지능, 초거대 데이터 센터를 소유한 소수에게 초거대 권력이 집중된다. 그럴수록 인간은 소외되고 고독과 단절은 깊어진다. 눈빛을 마주하고 체온을 나눌 기회는 사라진다. 깊어지는 초거대 디지털 혁명 시대에 소외된 인간 사회에서도 희망을 꿈꿀 화약 발파 소리와 커피믹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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