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비만의 시대… “더 살찌면 나중엔 이 옷 입어야 할지도”
초대형 티셔츠, 녹은 포르셰 車…
사물 비틀어 물신주의 비판
“인간도 사회도 계속 커질순 없어”
거듭된 성장은 비만을 낳는다. 질환이 발생한다.
오스트리아 조각가 겸 개념미술가인 에르빈 부름(68)은 미래의 옷 한 벌을 최근 제작했다. 천으로 된 높이 11m, 무게 610㎏짜리 거대한 스웨터다. “세상이 지속적으로 커진다. 아이들은 뚱뚱해진다. 과거 조상은 왜소했지만 훗날 인류는 이 정도 크기의 옷을 입어야 할 것이다.” 절제와 금식을 행하는 천주교 사순절(四旬節)의 상징 보라색 천을 사용해 빅 사이즈 의상을 지은 이유다. “모든 게 커지고 있다. 경제·산업·문화…. 그러나 영원히 커질 수는 없다. 그건 암(癌)이다.”
작금의 사회적 비만을 고찰하는 브룸의 국내 최대 개인전이 수원시립미술관에서 내년 3월 19일까지 열린다. 기존 사물의 무게와 성질을 비틀어 조각의 경계를 넓히며 2017년 베네치아비엔날레 대표 작가로도 명성을 떨쳤다. 패딩 점퍼처럼 살이 뒤룩뒤룩한 ‘Fat Car’ ‘Fat House’ 연작, 실제 포르셰 자동차를 녹아내리는 것처럼 가공한 ‘UFO’ 연작 등으로 물신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드러낸다. 눈을 잡아 끄는 작업 스타일 덕에 패션 브랜드 발렌시아가와 협업을 진행할 정도로 대중적 인기 역시 높다. “겉보기엔 유머러스하지만, 그건 관람객을 가까이 다가오게 하는 수단일 뿐이다. 중요한 건 성찰이다.”
조각은 형상을 바꾸는 작업이기에, 사람도 조각이 될 수 있다. 6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살이 찌고 빠지는 과정은 우리가 살면서 가장 먼저 겪는 조각적 경험”이라고 말했다. 일례로, 작품 ‘8일 만에 L에서 XXL 되는 법’(1993)은 작가가 직접 수행했던 매일의 고열량 식단을 적어둔 책이다. 신체 변화가 곧 조각임을 몸소 증명한 것이다. 그 옆에는 웬 남자가 노숙자처럼 스웨터 18벌을 껴입는 영상 ‘18 Pullovers’(1992)가 상영되고 있다. “과잉과 가난의 양극단이 상반되도록 두 작품을 한 공간에 뒀다”고 설명했다.
조각이 그저 멈춰 있는 덩어리가 아니라는 사실은 트레이드마크 ‘1분 조각’에서도 드러난다. 1분 정도 관람객이 몸을 움직여 직접 조각이 되는 참여형 작품이다. 의자, 세제통, 냉장고 따위가 전시장에 놓여있는데 사물마다 지시문이 따로 있다. 이를테면 냉장고에는 큰 구멍이 뚫려 있고, 관람객이 이 구멍 속으로 머리를 집어넣을 때 비로소 조각 ‘아이스 헤드’(2003)가 완성되는 식이다. “동작은 우스꽝스럽고 그래서 실패할 확률도 높다. 그것이 인생을 닮아 있다.” 7일에는 찰흙으로 빚은 건물 조각 위를 작가와 관람객이 함께 걸어다니는 퍼포먼스도 펼쳐진다.
10점의 회화 연작도 선보인다. 추상화 같지만, 자세히 보면 부풀어오른 알파벳이다. 이 시대는 글자마저 살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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